일상의 기록
요즘은 ’그냥 일만 하고 산다‘는 기분이 들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도대체 뭐가 좋은 인생일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간간이 던져보게 된다.
좋은 삶의 조건을 보면 객관적 조건과 주관적 조건이 있을 것 같다.
객관적 조건이란 누가 봐도 ’그 정도면 그리 나쁜 삶은 아니다‘라고 인정해 줄 수 있는 사회적 기준 정도일 것 같고, 주관적 조건은 ’나는 지금 행복해. 괜찮아‘라는 현재의 주관적, 감정적 만족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종종 중장년 중에 객관적 기준은 어느 정도 맞춰진 것 같은데 주관적 삶의 만족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를 본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이 경계선 어디쯤일 것 같다.
예전 어떤 지인이 한 말이 있었다. “왜 중장년들이 일을 열심히 하는지 아느냐?”고...
그러고 보니 나도 최근 일이 없는 날조차 일하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명확한 답을 내기가 힘들었다.
그는 “일만 뜻대로 되기 때문에”라고 웃지 못할 얘기를 해줬다.
요즘은 새삼 이 말이 기억에 떠오른다. 삶은 그다지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가끔 마음 한구석이 비어버린 느낌을 받는다. 뭔가가 빠졌는데 도대체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치 않은 느낌이랄까...드라마에 나오는 중요한 기억을 잃어버린 주인공의 심정도 이해될 것 같은 기분이다.
나는 삶을 상대적으로 다채롭게 산다고 얘기할 수 있을 만큼 일반적이지 않은 삶을 산다.
조직과 시간에 덜 구애를 받는 1인기업으로 살고 있으니까. 누군가는 시간과 조직에 얽매이지 않는(실제로는 ’얽매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내 삶을 부러워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삶이란 의외로 그리 다르지 않다. 나는 수년간 대기업 임원들의 퇴직 컨설팅도 진행해 봤지만, 굉장히 다를 것 같은 그런 성공했다는 분들의 삶도 본론으로 들어가면 다른 이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 소유한 부(富)의 수준만 차이가 클 뿐이다. 한편으론 나만의 문제는 아님을 확인한 것 같아서 위로가 되기도 했다.
아무리 봐도 주관적 만족은 익숙함에 대한 삶의 태도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아
꽤 오랜 시간을 고민하는 중이다.
우리는 익숙해진 것에는 어떤 것도 고마워하거나 설레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지금 TV에 나오는 저 미남미녀들과 연인이 되어 결혼했다고 해보자. 그렇게 1년만 살면 아마도 그들의 외모에 감사함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 돈도 마찬가지고 사회적 명예도 비슷하다. 자신이 가진 것에 이성이 아니라 감성적으로 지속적인 감사를 보내기는 어렵다.(연인의 아름다운 외모를 보고 평생을 설렌다고 생각해보라. 아마도 사랑보단 심장 이상이 더 현실적 진단이 아닐까?)
이런 ’지극히 인간적인 취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삶의 경험에도 부딪혀 보고, 책도 읽으며 무엇이 좀 더 마음을 채워줄지 열심히 탐색하고 있다. 그렇지만 역시나 쉽지 않다. 나 역시 이번 생은 처음이라..(솔직히 2회차 인생을 산다고 해도 이 부분은 극복이 안 될 것 같다)
내 경우엔 일이 잘 맞는 편이라 그나마 상대적으로 덜 지루하고 더 재미있는데, 실은 이것도 일상의 삶에 그다지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들은 살면서 일상(혹은 현재)을 느끼고 즐기고 집중하는 법을 자꾸만 잃어가는 듯하다.
어쩌면 삶은 늘 일상의 연속일 뿐인데, 막연하게도 삶이 즐거운 이벤트의 연속이길 기대하며 사는 인간의 과도한 욕심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