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에이징
얼마 전 중2라는 무서운 시기(?)에 들어서 있는 아들과 함께 둘만의 여행을 다녀왔다.
아마도 큰딸 아이도 이 정도쯤에 ‘아빠와의 둘만 여행’이라는 것을 다녀왔던 것 같은데, 아들도 “곧 함께 가자” 하면서 미뤄진 것을 이제야 한번 가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역시 나는 날을 잘 잡는다. 하필이면 힌남노가 북상하기 하루 전....숙소 예약을 할 때야 누가 알았겠나. 여름도 다 갔으니 날씨는 좋을 줄 알았지.
흐릿한 날씨 속에 안면도 민박을 하루 다녀왔다.
역시나 시작은 조금 ‘어색’했다. 그 무섭다는 질풍노도의 사춘기, 중2와 사내아이와의 단 둘 만의 여행이니 오죽했을까. 다행히도 아들은 좀 순한(?) 편이지만 애매한 분위기가 없었다고는 차마 말 못하겠다.
늦은 오후엔 비도 오고, 숙소도 좀 애매했고, 다음 날 역시 본격적인 태풍 상륙으로 힘들었지만 어찌어찌 아들과의 나름 재미있는 추억을 만들 수는 있었다.
그 녀석 입장에서야 “다시는 아빠랑 안가~”라고 할지 모르지만...^^;;
대체로 아빠들은 딸들과 좀 친한 듯 하다. 실은 나도 마찬가지였고...그런데 언젠가 내가 ‘아들과 좀 소원한 상태가 아닐까’란 생각을 인지한 이후부터 나는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대로 더 가다가는 꽤 밋밋한 부자관계가 될 것이고, 더 늦으면 위험하다는 신호가 보였기 때문이다.
아마 그때부터 말도 좀 가려서 할려고 했고, 아들의 입장에서 “아빠가 언제 그랬는데?”라고 정색할 수 있지만 ‘더 늦으면 위험하다’를 속으로 되새기며 내 행동도 좀 순화시켰던 것 같다.
1년 정도 과도기는 있었던 것 같은데...지금은 좀 편해졌다. 추측컨대 더 늦었다면 잘해야 ‘닭 소 보듯’하는 관계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이런 부자관계가 과연 드문 일일까?)
노후생애설계에서 관계는 매우 중요한 영역이다.
이 관계 중에서도 가족관계는 매우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다.
바로 ‘노력한다고 한 번에 어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아버지들이 은퇴에 즈음해서 이미 ‘돌이키기 힘들 만큼 악화된’ 자식과의 관계에 힘들어 한다. 바쁜 삶과 생업에 지쳐 중요한 줄은 알지만 개선을 미뤄놓은 탓이다. 어쩌면 방법을 몰랐던 후유증일 수도 있고.
시간을 많이 쓰지는 못하지만, 부모, 특히 아버지에게 자식이란 존재는 그 관계의 가치가 부정될 때 너무나 힘든 고민거리를 제공한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았던가’란 자책이 절로 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대개 인간의 깨달음은 한발 늦은 경우가 많다.
그러니 혹여라도 지금 돌아볼 수 있으면 잘 살펴볼 일이다. 더 늦기 전에 연습하고 애정이라는 것을 투입해 더 나빠지기 전에 관계의 질을 회복해야 한다. 너무 성급하지 않게 꾸준하게 말이다.
관계는 시간이 날 때 마음을 쓰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없을 때도 우리는 그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더구나 내게 소중한 가족이라면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