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열심히 살지 않는다고 스스로에게 화를 내는 C에게

스마트에이징


열심히 살지 않는다고 스스로에게 화를 내는 C에게




3~4년 전쯤까지 기억이지만 너는 열심히 살았다.

늘 새벽 5시쯤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며 일에 대한 준비와 글쓰기 등을 병행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너는 가능하면 웃음을 잃지 않으려 했고 열심히 하루를 쪼개 살았다.

그러던 네가 이제 스스로 통제가 안 된다고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너도 이제 나이가 드는 건가?


하지만 이건 내가 기억하는 너의 모습이고,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너는 그때도 수시로 자신과의 약속을 어겼고, 평균적으로는 열심히 살았지만 수시로 게을러졌었다.

뜻대로 일이 되지 않는다고 불평과 징징댐 사이의 어디쯤에서 늘 왔다 갔다 했었고, 그때도 지금처럼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렇다. 그때도 지금도 너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보면 지금이 좀 더 힘들고 게을러지는 시기일 수도 있지만, 너도 나이 들었고 더구나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이니 좀 더 힘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너의 스스로에 대한 높은 기대치는 어쩌면 네가 스스로 만든 장애물이고, 필요 이상으로 짊어진 짐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내가 보기에 너는 좀 더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누구보다 너에게 말이다.

우리는 누구나 내면의 비판자를 두고 있다. 그러나 무엇이든 그러하듯 과하면 나를 망칠 뿐이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화를 많이 낸다. 불평도 끝없이 한다. 그게 어찌 너만의 문제일까.

하지만 그런 자책감이 좋은 변화를 위한 에너지로 쓰인다면 다행이지만 그것이 너 스스로를 힘들게만 하고, 점점 더 스트레스를 받아 망가지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면 그건 너무 슬픈 일이다. 자기에게 인색한 사람이 타인에게 덕을 베풀기는 힘든 일이니 일에서도 관계에서도 너는 더 힘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누구보다 너를 위해서 스스로에게 좀 관대해지면 좋겠다.
스스로 괴롭히지 않아도 수많은 어려움이 널린 시대가 아니냐?
너마저 너를 괴롭히면 너는 누구에게 위로받을까?


아마도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이 순간조차 좋은 기억으로만 남을 가능성이 크다. 그것이 인간의 기억이고 삶의 방식이니까. 그럼 지금 이 순간의 너를 인정하고, 약간의 게으름도 허하고, 다시 너를 붙잡아 일으키기 위해 스스로 응원도 하려무나. 조금 둘러 간다고 누가 뭐라고 하겠느냐. 대부분 그렇게 살아간다.


마지막으로 먼저 너에게 좋은 말을 해주기 바란다. 네가 다른 사람에게 위안이 되려고 노력하듯이 네 스스로에게 먼저 위로가 되는 존재가 되기를 진심으로 나는 소망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족 간의 사랑에도 골든타임이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