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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고 명쾌한 것이
좋은 건 알지만...

세상만사

시원하고 명쾌한 것이 좋은 건 알지만...


내가 쓴 브런치 글을 읽던 아내가 내게 어떤 글이 좋다며 추천을 했다.

직업분야, 그중에서 주로 청년층 대상의 취업강의를 많이 하시는 분인 것 같은데 글이 자못 설득력도 있고 힘차다.

그런데 나는 왜 몰랐을까? 아, 읽다 보니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내가 싫어하는, 혹은 내가 잘 못 쓰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뭐냐고? 굉장히 이분법적인 쾌도난마형 글이다. 이런저런 미사여구 빼면 ‘이렇게만 따르면 모든 것이 해결되니 나를 따르라’ 뭐 이쯤 되시겠다.  시원은 한데 현장을 아는 입장에선 좀 찜찜한 구석이 있다.

    

“이런 글이 좀 위험한 것 알아?” 아내에게 물었다.

“음...알아....그런데 이런 글이 읽기는 시원한 것 같아. 사람들은 이런 글을 좋아해” 라는 아내의 답이 인상적이다.     

문득 강의장에서 느꼈던 ‘카리스마’에 대한 생각이 떠오른다.

강의와 글쓰기는 비슷한 점이 있다. 이론의 여지가 없는 명쾌한 논지와 주장이 선호된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모든 것을 통합하는 하나의 진리’라는 건 말이 안 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에 열광하고 싶어 한다. 좀 더 쉽고, 확실한 것을 달라는 셈이다.


마치 천재의 탄생이 실은 재능보다는 후천적 노력의 뒷받침이 더 결정적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 재능에만 열광하고 싶어 하듯이 조금만 생각해보면 위험한 줄 알면서도 단호한 강의와 글을 선호한다.

하기야...“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습니다”라고 표현한다면 듣고 보는 이들의 맥이 빠질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종종 '압도적 카리스마'를 원한다. 알면서도 속고 싶은 마음들이 있다. 특정분야의 전문가는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TV 등에서 충실히 반영되곤 한다.

그런 ‘카리스마’들이 가끔 사고를 치면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우리는 경악을 한다. ‘설마 그런 사람이...’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 사람이 연기를 잘했거나, 정치를 잘했거나 특정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지는 것은 도덕성과 연관이 별로 없다. 그건 그대로 별개의 영역인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방송에서, 혹은 온라인에서 포장된 이미지나 홍보성 이미지를 보며 그의 다른 측면까지 뛰어나리라는 착각을 한다.

이른바 사람들이 곧잘 속는 ‘후광효과’(한 대상의 어떤 분야에서의 두드러진 특성이 그 대상의 다른 특성을 평가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치는 현상)다. 글이 주는 후광효과 역시 수많은 ‘교주’를 생성하는데 한몫을 한다.  

   

가끔씩은 나도 없는 카리스마를 끌어내는 경우도 있다. 강사의 필요악 같은 것이 아닐까?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양심적인 사람이니 그런 것 안 한다’고 할 수 있을까?

사실 나도 가끔 강의나 글에서 그런 짓을 한다. 다만, 그런 과정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편일 뿐이다. 문제는 ‘대중 앞에 나서는 이의 속성’엔 그런 보여지는 카리스마란 측면도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늘 고민이 된다. 어느 것이 중용이고 적당한 선인 것인지...

모든 일엔 숨은 그늘이 존재한다. 어쩌면 이것도 강사라는 직업이 가진 이면의 숨은 그늘들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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