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전문가라는 타이틀에 숨은 불안

나는 전문가일까?

전문가라는 타이틀에 숨은 불안          


세상에 전문가들이 넘쳐 난다. 이런 전문가, 저런 전문가....뭐 이런 것도 필요한가 싶기도 하고, 저 사람이 정말 전문가인가 의심스럽기도 하다.

하기야 이런 말을 하는 나 자신조차도 전직지원 전문가, 생애설계 전문가, 노후준비 전문가, 직업전문가에 면접전문가까지...온갖 타이틀을 종종 다 갖다 붙이곤 하니 나 역시 이런 의심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내 주변에도 각종 전문가들이 많다. 나도 그런 호칭을 붙이는 사람이기도 하고,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 보니 전문가와 관련해 이런 저런 얘기들을 많이 듣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기억나는 것이 ‘전문가들이 자기 회의’다. 내가 보기엔 정말로 전문가처럼 보이는 이들 중에 스스로는 “내가 정말 전문가가 맞는지 의심스럽다”라며 회의감에 젖는 것이다.


나 역시도 이런 마음을 느낄 때가 있다. 이 경우는 겸손이라기보다는 ‘이 정도는 누구나 알지 않을까’라는 지나치게 자신의 상식(?)기준에 기반한 기대의 확장인 경우가 많다. 아니면 ‘실제로 사람이나 현상을 자신이 아는 지식으로 변화시키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자각할 때 느끼는 무력감에도 일부 원인이 있는 것 같다.      

예컨대 나는 취업전문가로 활동하지만 개인의 성격이나 행동 문제로 도무지 답이 안 나오는 경우조차 ‘내가 가진 노하우로 취업을 잘 시킬 수는 없다’. 취업은 당사자가 가장 관건이고,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옆에서 측면지원을 해줄 수 있을 뿐이다. 대체로 취업이 될 만한 이를 조금 더 빨리 취업시키거나, 조금 더 나은 자리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정도랄까.

이른바 ‘깜’이 안 되는 이를 귀신같은 노하우로 취업을 시키는 재주는 별로 없다. 이런 방향으로 별로 노력도 안하는 것은 억지로 들어가 봐야 결국 직업현장에서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분란만 일으킨 채 나오게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전문가라는 이름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공허감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자기회의감을 가진 전문가들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들이 정말 ‘전문가도 아닌 사람들’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 분야만 파는 사람들이, 10년 이상 나름의 최선을 다해 일에 임했다면 비전문가로 남는 것이 더 신기한 경우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는 반대의 경우도 종종 보는데 내가 보기엔 이런 이들이 더 위험해 보인다.

“왜 안 되느냐?”며 스스로를 마이다스의 손으로 포장하는 케이스다. 솔직히 말하자면 손대는 것마다 해결하는 전문가라는 존재가 TV나 영화 밖에서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인간에게 일어나는 문제는 너무나 복잡하고 변수가 많다. 그런 것들을 일일이 통제할 수 없기에 수많은 전문가들이 예측하고 준비해도 세상에는 숱한 위기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전문가일까?'라는 고민이야말로 누군가를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아닐까


그래서일까? 나는 조금쯤 자기회의감을 가지고 임하는 전문가들을 만날 때 반갑고 응원을 하게 된다. 

자신에 대한 회의가 스스로를 더 노력하게 만들고, 부단히 전진하게 만든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 다이어리 앞면에 적어놓은 비행사 발레리 치칼로프의 금언으로 이 글을 마무리해본다.

“결함이 내 출발의 바탕이고, 무능이 나의 근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직장 트라우마, 그리고 자신을 대하는 예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