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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트라우마,
그리고 자신을 대하는 예의

직업의 이면

직장 트라우마, 그리고 자신을 대하는 예의          


얼마 전 올해 초 경력상담을 진행했던 A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젊은 친구였고 역동적이라 기억에 남았던 여성 구직자였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원하는 분야의 회사에 들어가 흔쾌히 상담을 마무리했던 기억이 있는 이였다.

그런데 전화의 내용은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다니던 회사에서 채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퇴사를 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회사 상사 중 한 명의 이해할 수 없는 적의로 인해 더 다닐 수 없었다는 것이었는데 더 심각한 것은 그 짧은 시간의 경험이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어 어딘가에 지원할 때마다 그녀를 힘들게 한다는 것이었다.     


짧은 전화통화로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당신의 잘못이 아니고, 그런 곳은 차라리 빨리 나오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응원했지만, 트라우마라는 것이 그리 쉽게 오는 것도, 그리 쉽게 사라지는 것도 아니기에 걱정이 됐다. 비록 ‘극복해 보겠다’며 전화를 끊었지만 그녀는 꽤 힘든 과정을 이겨내야 할지도 모른다.     


트라우마란 쉽게 정리하면 ‘상처’라는 의미다.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최근 정신적 트라우마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인간의 모든 활동이 그렇겠지만 직장생활 역시 개인에게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다. 나 역시 개인적으로는 이상한 회사를 경험하기도 했고, 또 어떤 직장에서는 어느 정도 마음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 내 고객들 역시 다양한 형태로 직장생활을 통해 얻은 트라우마를 호소했었다.

도무지 납득하기 힘든 캐릭터의 상사로 인한 트라우마, 여성이 너무 많은 조직에서 겪은 뒷담화 트라우마, 혹은 군대식 문화에서 겪은 트라우마, 또는 성희롱 문제나 아주 가까운 예로 장기간 임금체불까지(당해보면 안다. 없는 사람에게 이게 얼마나 큰일인지)...많은 직장인들은 여러 가지 형태로 직장을 통해 트라우마를 남기곤 한다.      

이런 일을 당한 수많은 사람들이 논리적으로는 이게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트라우마란 그런 것이 아닌가. 알면서도 어찌하지 못하고 끌려가는 느낌 같은...이성보다 본능에 화인처럼 새겨져 논리적인 회로로 통제되지 않는 반응을 보이는 것.     


누구나 크고 작은 자신만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예전에 법륜스님이 트라우마를 겪는 개인에게 자신의 즉문즉답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누가 당신에게 쓰레기 더미를 휙 던지고 지나갔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스님은 그냥 빠르게 쓰레기를 버려야 함이 맞을 텐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 쓰레기를 끌어안고 살아간다는 얘기를 하며 트라우마의 후유증을 어떻게 버릴 것인지를 들려주셨었다. 

실제로 그런 경우를 많이 본다. 누군가가 별 고민 없이 던진 쓰레기를 꾸준히 안고 살아가면서 정작 당한 사람이 그 쓰레기 냄새에 지속적으로 고통받는 경우를 말이다.

더 열 받는 것은 정작 ‘쓰레기 더미를 던진 인간’은 피해자의 고통은커녕 그에 대한 기억조차 잘 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이다.   

일단 벌어진 일이라면 자신에게 던진 쓰레기 더미를 빨리 떨쳐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힘든 건 알지만, 어떤 이유로든 스스로 이 상황을 인지하고 빨리 버리지 않으면 계속 고통을 겪을 뿐이다.     


개인적으로 나 역시 몇 번의 트라우마를 겪었다. 그런데 가장 화가 나는 것은 그 트라우마로 인해 정작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스스로를 자책하게 되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람이 당황하면 ‘아무 것도 못하고 당하는’ 경우는 생길 수 있다. 그런데 아무 것도 하지 못한 경우와 어떻게라도 나를 지키기 위해 대항한 경우는 차이가 난다. 

내 경우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첫 직장 때 직속상사와의 관계였다. 그런데 그 시기가 그렇게 힘들게 기억되지 않는 것은 결국 그 상사와의 나이 차, 직급 차에도 불구하고, ‘대판’ 싸움을 벌였던 기억 때문이었다. 잠자코 있지 않고 대응을 했다는 마음. 그것이 옳았든 틀렸든, 부당하다고 느낀 상대에게 당당했음이 그 기억을 훨씬 편한 감각으로 대할 수 있게 만들었다.     


지나간 것은 버려야 할 쓰레기 더미지만
누군가 내게 그걸 던질 때는 항의도 하고 싸워도 보자.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만큼 나를 지키는 노력도 필요하다


트라우마의 단골손님은 ‘참고 또 참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결국에 비난하게 되는 것은 ‘그렇게 참기만 했던 바보 같던 자신’인 경우가 많다.

자신을 해하는 것에 당당히 맞서는 것, 직장을 넘어서, 살아가면서 어쩌면 우리가 가져야 할 ‘자신을 위한 예의’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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