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잠수하다
아마도 인상적인 첫 문장이 이 책의 주제를 대변해준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작가는 이 책에서 사랑은 거부할 수 없는 일종의 환상적인 생명체처럼 묘사하고 있다. 마술처럼 누군가에게 깃들고 사랑할 자격을 부여하고 그 속에서 숨 쉬며 각각의 모습을 지내다 어느 날 또 사라지거나 영원히 머문다는 것이다.
학창시절 사랑했던 선배 형배에게 “나는 사랑할 자격이 없어”라는 거절 아닌 거절을 듣고 실의에 빠졌으나 2년 10개월 만에 겨우 정리가 된 이제 뜬금없이 그 선배에게 사랑 고백을 듣는 선희, 그러나 그녀는 이미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던 과정에서 문학관의 관리담당인 영석과 사귀고 있는 중이다. 영석은 어린 시절 일찍 부모를 여의고 자신의 단단한 틀 안에 자신을 가두어 버린 남자, 그래서 사랑을 받아 본 적도 주어본 적도 없는 서툰 남자다.
남들이 보기에 모자란, 그러나 어쩌면 기묘하게 잘 어울리는 이 사랑을 우습게 본 형배는 자신의 사랑을 위해 영석에게 연민으로 인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며 핍박하지만, 결국 자신의 아픈 과거, 어머니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통해 자신이 사랑에 대해 전혀 잘못 알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는 줄거리다.
이 속에서 작가는 거듭 거듭
그리고 저마다의 사랑은 모두 다른 모습이라는 것까지...
반복적으로 그러나 묘하게 운율을 타듯이 읽혀지게 만드는 문장력은 오랜 시간 쌓아온 작가의 내공만큼이나 힘이 있다. 그 속의 묘사들도 탁월하다. 사랑에 대해 나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를 돌아보는 계기도 됐다. 아마도 누군가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면 그런 이유들 때문일 것이다. 다만, 사랑이 무조건 피동적이어야 하느냐는 부분은 약간 생각이 다르다. 사랑에 여러 형태가 존재하듯이 능동적 사랑이라는 것도 세상에는 존재한다고 본다. 책에서 작가가 얘기했듯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도 일정 부분 사랑의 능동성과 맥락이 닿아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책을 읽으며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떠올렸다. 철학적 기반의 심리적 묘사를 다룬 그의 책과 함께 다시 읽어본다면 재미있는 대비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사랑에 대한 고민을 하다 갑자기 든 생각 하나, ‘이건 마치 교통사고 같은 거군.....’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숙주이다. 사랑은 누군가에게 홀려서 사랑하기로 작정한 사람의 내부에서 생을 시작한다.(p.8) - 책의 첫 문장
-사람이 사랑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사람이 빠질 사랑의 웅덩이가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사랑이 사람 속으로 들어온다. 사랑이 들어와 사는 것이다. 숙주가 기생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기생체가 숙주를 선택하는 이치이다.(p.10)
-사랑은 덮친다. 덮치는 것이 사건의 속성이다. 사랑하는 자는 자기 속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하는(물론 허락을 구하지 않고) 어떤 사람, 즉 사랑을 속수무책으로 겪어야 한다(p.36)
-(자신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암시는, 이성을 끌어들이는 데 있어, 그 사람을 둘러싼 외적 조건들 못지않은, 아니 그보다 훨씬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외적 조건들은 이 조건을 이길 수 없다(p.111)
-사람들을 사랑하게 하는 것, ‘사랑하기’라는 기적을 만들어내는 것은 사랑이다. 이 기적의 주체는 사랑이다. 연인들은 사랑이 기적을 행하는 장소이다. 사랑이 사랑하게 한다(p.166)
--> 사랑은 하는 걸까? 느끼는 걸까?
-사랑 자체인 이 사랑이 두 사람 사이로 들어와 자기 생애를 시작한다. 그 생애가 연애의 기간이다. 어떤 생애는 짧고 어떤 생애는 길다. 어떤 생애는 죽음 후에 부활하고, 어떤 생애는 영원하다(p.167)
-나이, 용모, 경제력, 건강, 사회적 위치와 평판 같은 조건들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사실을 의식할 때 이런 사람을 질투 속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먹이는 것만큼이나 쉽다는 사실을 ‘오셀로’는 알려준다.(중략)
질투는 사랑의 크기가 아니라 그가 느끼는 약점의 크기를 나타내 보인다. 사랑해서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약점이 있어서 질투하는 것이다(p.228)
-사람이 사랑을 이기지 못한다(p.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