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여름향기
문득
산악부 동기인 수경언니와 여자 후배
이렇게 셋이서 지리산에 갔다가
혼자 뒤처져서
비바람 속에서
어려운 길도 아닌데
공황상태에 빠진 일이 기억난다.
전화기는 안 터지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많이 없던 더운 평일
혼자서 뭐든 잘하고,
객지 생활이던
특수한 환경에서의 텃새이든,
꿈쩍 안 하던 나였는데,
혼자서 산행할 때와는 달리
언니들하고 떨어져서 산행하게 되니,
덜컥 겁이 나면서 불안해지기 시작했었다.
별 걱정 안 하던 언니들은
꽤나 늦어지는 나를 걱정하며
중청대피소에서 저녁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고,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해서
언니들을 만나고서야,
목구멍까지 차오르던 불안감을
꺄르륵대면서 해소했다.
꽤나 의존적이던 중꼬맹이 시절.
5월은 용기 선배 기일
7월은 소연 선배 기일
7월 어느 더웠던 날,
선인봉 대슬랩에서
그날따라 왜 그렇게 미끄러지는지,
선등 연습은 힘들고,
그날따라 밸런스도 안 나오고,
슬립은 계속되고,
양팔은 심하게 긁히고,
선배들은 화만 내대고,
다들 무언가 모를 불안함과 예민함에
화창한 날씨와는 다르게
뭔지 모르게 이상하고 괴상하고 안 좋은 분위기였다.
구조대!!!
도봉산 옆 북한산에 구조대 헬기가 떴다.
등반 끝내고,
늦은 점심을 먹고
정리.
그리고 우리는 배낭을 꾸려서
OB 선배가 운영하는 호프집으로 갔는데,
앉자마자 우린 일어나서 병원으로 이동했다.
그 헬기가,
북한산 노적봉에서
다른 팀과 등반하던 소연 선배를 실어 나른 것이었다.
급작스럽게
선배가 떠나기 전,
3주를 정성스럽게 전화해서
운동하러 나오라고,
그 정성에
우리는 실내암장에서 이틀 정도 함께 운동했고,
선배들이 아끼는 후배들에게 해주는 전통이 있다면서
예쁜 초크 주머니를 선물해 주셨다.
그것도 주말에 등반 간다고, 빨리 달라고 해서 금요일에 선물 받고
일요일에 영영 이별을 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작고 아담한 체구에
노적봉에서 찾아낸 230 암벽화 한 짝.
악착같이 턱걸이 12개를 하던
바로 윗기수 유일한 여자 선배였는데.
생체를 땄을 때에도,
청주 암장에서 선수 제의받았을 때에도
선배가 많이 생각났었다.
그 한 달 후에는
대학로에서 우연히 용기 선배를 만났었는데,
내 전화번호도 모르던 선배가
한 시간 만에 전화를 줘서 다시 만났고,
갑자기 장비점으로 데려가서
퀵도르 세 세트를 선물해 주었다.
이후로 학교 중퇴하고 산악부 떠날 때까지
여자 선배들이 얼마나 질투할 정도로 챙겨주셨는지.
설악 캠프에선 퍼져 있다고 걷어차기도 했지만.
소연 선배와 영혼결혼식을 하기 전까지는,
예민한 꼭 꼬맹이가
세상살이에 힘들어 징징 울다가 잠들 때마다
꿈에 찾아왔던 선배.
그로부터 3년 후,
설악에서 일찌감치 굴러 떨어진 나는 아웃.
설산에 가겠다던 다른 선배들은.
어렵게 회사를 그만두거나 휴직을 하고 시간을 내서 출발했다.
남미에 설산이라니.
베이스캠프 차려놓고 도착 첫날 볼더링 중에.... 용기 선배는 떠났다고 한다.
한동안은 툭하면
꿈에 나오던 선배,
꼬맹이는 울면서 나도 데려가~라고 징징댔다고 한다.
그러면,
선배는 항상 보던 등산복 차림으로
애처롭게 꼬맹이를 바라보다가 갔다고 한다.
출발 전날 체해서 비행기 타면서도 불편해했다고 하는데,
나중에
두개골을 흔들었던 이야기는
국내 빙벽에 먼저 떠난 대선배의 와이프였던 언니가
원정대 출발 전날 꿈을 꾸었는데,
남편이 안 좋은 표정으로 뒤에 기다란 나무로 된 무언가를 두고 서 있었다고.
근데
차마 어렵게 원정 떠나는 날 아침에
말을 꺼낼 수도 없이
걱정만 한 아름 안고 배웅했다고....
원정대 가기 전년도에
산악부 그만두기 전,
설악 하계캠프 갔을 때
적십자길 암벽등반하러 가던 팀이
가는 길에 길을 잃었었는데,
어떤 어르신이 내려오시면서
" 음, 오늘 자네들 가지 마시게, 내 어제 꿈에 느낌이 안 좋아서 적십자길 사고 날 것 같소."
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선배들은 뒤돌아 내려왔다고 했는데.
그날 헬기가 떴다고..
암벽 부가 아니었으면 난 덜 힘들었을까.
애착 선배들과 헤어진 게 덜 맘 아팠을까.
오리엔티어링으로 이름을 날리던 선배들.
경기랑 자격증 교육을 갔다가
괜히 나로 인해 산악부 선배들 욕 먹일까,
감추려 했던 것이
어쩔 수 없이 협회 교육 트레이너님 때문에
선배들이 알게 되었고
하....
그렇게 나는 오리엔티어링 지도자가 되긴 했다.
똑똑하고 민첩해야 잘할 수 있는지라.
염소 물에 젖은 뇌와
꼬북이 걸음으로는
스마트한 경기를 치를 수가 없었지.
언젠가 회복하면
재미있게 달려서 마커 찍고,
날렵하게 경기를 뛰어 봐야지.
충남 입사동기 끼록샘과 함께 우당탕탕~
서울경기 연합 경기참석.
담번엔 침착하게 완주를 목표로 해보자.
번호대로 가는 거잖아.
우당탕탕 허둥지둥 헐레벌떡
귀여운 꼬북이 시절이여,
이젠 안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