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밍

timing

by 깨작희작

"열차가 곧 출발합니다. 안전하게 승차해 주세요."


출발이다. 그것도 ‘곧‘ 출발이다. '곧'이라는 여지의 희망을 잡고 곧장 뛰어간다. 열차를 놓치지 말아야 하기에 필사적으로 달려갔으나 하철이는 매정하게 떠난다. 딱 3초면 됐는데, 딱 3초면 다리를 쭉 뻗을 수 있었다. 심호흡 한 번만 해도 5초는 걸리는데 하철이는 뭐가 그리 마음에 걸리는지, 3초의 호흡도 없이 반짝 위로하듯 내 머릿결을 쓸며 휭 떠나갔다.


다음 열차는 10분 뒤 도착이다. 600초를 더 기다려야 한다. 분명 조금 전 3초 만에 다리 찢기가 가능했던 다리는 600초 동안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 그대로 서있는다. 방금 지나간 열차를 아쉬워하며.


다음날도 잽싸게 뛰었지만 역시 열차는 냉정하게 날 건너뛴다. 어제의 데자뷔를 다시 반복하기에는 내 헝클어진 머리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오늘은 다음 열차까지의 600초 동안 지하철 끝과 끝을 왕복해 본다. 그리고 잠시 하늘을 보니 아침 태양이 열찻길 위에 펼쳐진 삭막한 검은 전선을 수평선삼아 주홍빛으로 죽여주게 떠오른다. 차갑게 떠난 열차는 놓쳤지만 마음 뜨겁게 달군 명장면은 덕분에 놓치지 않았다.

놓쳤을 때 놓치지 않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이 부동의 다리가 유동함으로써 얻은 것!


"사랑은 타이밍이야."

그렇다 사랑은 타이밍이다. 그러나 그 '시간'이 돼서 사랑을 잡은 게 아니라 그 '시간'을 내가 잡았기 때문에 사랑이 된 것이다. 시간은 딱 3초도 쉼 없이 무호흡으로 흘러간다. 아무런 감정도 아쉬움도 없이 자기 갈 길만 우직하게 걷는다. 그 흐름에 '찰나'라는 시간적 특수 구간은 없다. 특별한 그 찰나의 순간은 자신이 캐치하는 것.


순간의 time은 없다.
timing, 즉 ing 흘러가는 것이다.


"언젠가는 그날이 올 거야."

사실 '그날'은 지금은 보장할 수 없다. 그날이 온다 해도 오롯이 느낀 적이 있었는가 묻는다면 솔직히 단 한 번도 '그날'의 도래에 참 맛을 느끼지 못했다. 느끼지 않았다고 하는 게 맞겠다.


그 사랑이 오는 그날,

그 직업을 갖는 그날,

그 멋진 곳에 가는 그날이 왔어도 진정 그날의 농도와 달콤함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마치 그날이 와도 '또 다른 그날'을 허황되게 꿈꾸며 시간이라는 물살에 브레이크 없이 밀려만 갔다.


타이밍은 지금도 밍기적 없이 ming 중이다.
나도 역시 ing 중이다.


무탈하게 숨 쉬는 ing,

사랑하는 이와 미소 짓는 ing,

전쟁 없는 평화가 ing,

성장을 향해 ing..

시간과 내가 같이 손잡고 뒤돌아 보지 않고 아쉬움 없이 흘러가고 싶다. 놓친 게 있어도 이왕이면 또 다른 새로움을 설렘으로 맞이한다면 이 또한 기가 막힌 타이밍이 되지 않겠나.


오늘도 어제와 다름없이 다가오는 열차를 향해 달려간다. 몸도 마음도 가뿐하게.



"다음 열차가 곧 도착합니다. 출발선에서
안전하게 승차해 주시기 바랍니다."


작가의 이전글걸린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