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요리를 했다. 라볶이, 닭볶음탕, 라면, 계란 프라이.. 맞벌이 부모님이 비운 공허한 집에 공허한 뱃속 허기를 채우려는 본능이었을까? 요리는 어느순간 취미가 됐고 즐거움이 됐다. 이것저것 볶아보고 찌고, 말아 보고 다양한 요리 행위(?)를 흉내 내는 자신이 좋았다. 집이 생기면 가장 중요한 공간은 주방이요, 중요한 도구는 냄비와 그릇이 됐다. 어떤 결핍은 그 자리를 채울 또 다른 ‘재능’의 탄생이 되기도 하듯, 이렇게 생긴 내 재능이 퍽 마음에 든다.
요리는 단순하지 않다. 이것저것 따져보며 좋은 재료를 선별하고, 깨끗하게 손질하고 칼질하고, 적당한 열기의 불로 볶고 찐다. 다양한 조미료를 이용해 간을 함으로써 요리의 끝을 장식한다. 이 정성의 결과물을 선물꾸러미 풀 듯 바로 먹는 행위까지 끝낸 후, 어지럽게 펼쳐진 그릇과 음식물을 정리하는 것까지. 요리는 이렇듯 단순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련의 과정을 사랑하는 이유는 정성을 쏟아붓는 시간만큼은 누구보다 나를 사랑해 주고 살아있는 느낌이다. 재료를 손질할 때 느끼는 다정함, 중간중간 간을 보며 느끼는 혀의 감각과 살아있는 기분까지 사랑받는 기분이랄까.
요리의 또 다른 매력은 ‘대접’이다. 평소 혼자 쓰는 작은 접시가 아니라 넓고 큰 접시에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한 음식을 담아내기에 ‘대접’인 것일까. 그 누구보다 좋은 것, 더 큰 것을 주고 싶은 요리사의 마음. 맛있게 요리하고 좋은 사람과 ‘나의 음식’으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온 시간을 함께 누리는 기분이다. 먹는 순간뿐 아니라 장을 보고, 요리하고, 이야기하며 식사하고, 상대가 떠나간 자리를 정리하는 모든 순간 전체가 여운이 감도는 시간이다. 마음을 담아낸 따뜻한 ‘대접’ 한 그릇은 이렇듯 나와 너, 우리의 모두를 위한 대접이다.
최근 흑백요리사 프로그램을 보면서 요리사들의 뜨거운 열정을 보았다. 그들의 목적은 ‘경쟁’이 아닌 ‘진심’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각자 뜨거운 열기 앞에서 땀을 흘리는 모습은 음식 자체를 대하는 열정이고, 요리를 맛보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며, 요리에 대한 처절한 진심이다. 마지막 회 최강록 요리사가 승리한 것은 승리 그 이상의 것이다. 자신의 요리에 대한 진심과 열정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요리사들의 진심에 대한 존중이 빛났다. 이 프로그램의 이름인 흑백 요리사는 마치 각각의 고유한 색을 가진 재료들이 섞여 최상의 맛을 발휘하는 것처럼 흑과 백으로 나뉜 요리사들 자체가 각각의 재료가 된 ‘환상의 요리’ 그 자체였다.
매일 손님이 된 기분으로 대접받고,
매일 요리사가 된 기분으로 대접하는,
사랑, 이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