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위한 응원가 3 : <말하는 대로>
[시와 연결하기]
<서동요>는 신라 진평왕 때 백제의 서동이 지어 부른 민요 형식의 노래로 한국 최초의 4구체 향가이다. 서동은 백제 무왕의 어린 시절 이름인데, 향가의 원문과 함께 그 배경 설화가《삼국유사(三國遺事)》권 2 <무 왕조(武王條)>에 실려 전한다.
聞新羅真平王第三公主善花 (一作善化) 羙艶無雙, 剃髮來京師. 以薯蕷餉閭里羣童, 羣童親附之. 乃作謡誘羣童而唱之云.
"善化公主主隠, 他密只嫁良置古, 薯童房乙夜矣卵[1]乙抱遣去如."
童謡滿京逹扵宫禁, 百官極諌竄流公主扵逺方
해석 : 신라 진평왕의 셋째 공주 선화가 아름답기 짝이 없다는 말을 듣고 머리를 깎고 수도로 갔다. 마를 동네 아이들에게 먹이니 아이들이 친해져 그를 따르게 되었다. 이에 노래를 지어 여러 아이들을 꾀어서 부르게 하니 그것은 이러하다.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사귀어 두고 서동방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동요가 도성에 가득 퍼져서 대궐 안에까지 들리자 백관들이 임금에게 극력 간하여 공주를 먼 곳으로 귀양 보내게 했다.
서동은 원래 백제의 사람으로 '마'를 캐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는데('서동'자체가 직업을 의미한다), 선화공주를 남몰래 흠모하여 '서동요'를 지었고, 이 노래를 동네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며 온 나라에 이 노래가 퍼지게 만들었다. 이런 불경스러운 가사의 노래가 신라 진평왕의 귀에까지 들어가자, 진평왕은 자신의 딸 선화공주를 궁궐에서 내쫓는다. 이에 서동은 쫓겨난 선화공주가 귀양 가는 길목에서 기다렸다가 부부의 인연을 맺었고, 선화공주가 쫓겨날 때 가져온 금덩어리를 기반으로 하여 백제의 왕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으로 치면 아니 뗀 굴뚝에 연기를 만들어서 어떤 여자의 신세를 망친 것이나 다름없으니,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죄로 철컹철컹 수갑을 찼어야 할 일이다. 물론, 서동이 잘생기고 똑똑하고 인품까지 있었으면 로맨스 소설이 따로 없다.
[시와 연결하기]
시에서는 화자의 인식이나 태도, 감정 등이 크게 달라지는 것을 '시상 전환'이 라고 한다. 시상(詩想), 즉 시의 분위기나 흐름이 크게 변화된다는 것이다. 시상 전환이 잘 나타나는 시는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이 있다.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새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중에서
작품 해설 :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woorima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