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릿해도 흥미롭게

꿈을 위한 응원가 2 : <R.P.G.>

by 가하

나를 천하무적 로봇으로 만들어줄 꿈을 위한 응원가, 그 두 번째는 'W&Whale'의 'R.P.G.'이다. 2008년 발표된 이 곡은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의 OST이자, SK 브로드밴드의 광고의 음악으로 사용되어 더욱 유명해진 곡이다. 그룹 '코나'의 배영준이 결성한 그룹 'W'가 보컬 '웨일'을 영입하고 'W&Whale'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며 만든 곡이다. 작사는 배영준과 웨일의 공동 작사이지만, '결국 뱃머리 돌리는 건 바로 나 캡틴 웨일'이라는 가사를 통해 웨일의 시각에 초점을 맞추어 풀어낸 가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잠시 노래와 가사를 음미해 보도록 하자.


(**가사의 해석은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일 뿐입니다. 다르게 해석할 여지도 있는 노랫말이므로 열린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s://youtu.be/G4FnnLk3W7w

제목 : R.P.G.(Rocket Punch Generation)

작사 : 배영준, 웨일(Whale)


1.

건조한 눈빛 쓰디쓴 그대의 혀

항상 말만 앞서고 행동하진 못해

는 좀처럼 스스로 판단할 수 없어

필요한 건 Rocket punch

때론 나 대신 싸워주는 Robot

그건 말도 안 되는 만화 속 이야기

의 어깨가 부서져라 부딪혀야 해

1 & 2 & 3 & 4

걱정하는 것을 걱정하지 마

Rocket Punch Generation

지루하게 선명하기보다는

흐릿해도 흥미롭게

You have to cha cha cha change yourself


2.

대체 왜 그래 뭐가 부끄럽다고

딱딱해지는 몸짓 빨개지는 얼굴

삶은 언제나 그렇듯 오르막 내리막

Tricky Freaky Break it my heart

누가 뭐래도 무거운 신념 하나

의 가슴속 깊이 못을 박아 두고

결국 뱃머리 돌리는 건 바로 나 캡틴 Whale

5 & 6 & 7 & 8

걱정하는 것을 걱정하지 마

Rocket Punch Generation

지루하게 선명하기보다는

흐릿해도 흥미롭게

You have to cha cha cha change yourself


3.

Oh Love me & love you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으니

Hold me & I'll hold you

또 이보다 더 나빠진다 해도 우리

이미 지난 일은 후회하지 마

Rocket Punch Generation

불안할 것 없어 다가올 일도

중요한 건 바로 지금

I have to cha cha cha change my

You have to cha cha cha change your

We have to cha cha cha change ourselves



우선 이 노래의 제목은 R.P.G.인데 'Rocket Punch Generation'의 약자이다. X세대, MZ세대도 아니고 '로켓 펀치 세대'라니, 무슨 의미일까? 어린 시절 TV 만화영화 '로봇 태권 V'나 '건담', '마징가 Z'등을 보며 자라온 세대를 말하는 걸까? 아니면 로켓 펀치를 가진 강력한 세대라는 의미일까? 제목의 의미는 전체 가사를 먼저 살펴본 후 생각해보자.


이 가사는 내용 면에서 크게 3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편의상 각 연마다 숫자를 붙였다. 1연에서 화자인 '나'는 현재 '그대'를 관찰하고 있다. '그(대)'는 건조한 눈빛과 쓰디쓴 혀를 갖고 있는데, 아마도 사회생활에 찌들어 있는 현대인의 표상일 것이다. 그는 무언가 변화를 원하지만, 항상 말만 앞서고 행동하지 못한다. 그냥 혼자 한숨을 내쉴 뿐이다. '나는 좀처럼 스스로 판단할 수가 없어. 내겐 지금 로켓 펀치가 필요해'


하지만 화자인 '나'는 충고한다. '나 대신 싸워주는 강철 로봇은 만화 속 이야기일 뿐이야, 너 스스로 부딪혀서 이겨내야 해'. 그러면서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도 잊지 않는다. 걱정하는 것을 걱정하지 말라고, 인생은 당연히 살기 힘든 것이므로 걱정되는 일이 있다고 해서 움츠러들거나 위축되지 말라고. 그리고 인생의 불확실성이 주는 흥미로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 모두 미래를 불안해하며 안정적인 미래와 확고한 지위를 얻고 싶어 하지만, 막상 미래가 어느 쪽으로든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절망하거나, 혹은 매너리즘에 빠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화자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서의 지금이 조금 초라할지라도 안개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를 기대하며 미래를 흥미롭게 맞이하자고 이야기한다. '지루하게 선명 하기보다는 흐릿해도 흥미롭게'


이어지는 2연에서는 1연과 똑같은 전개가 한 번 더 되풀이된다. '그'의 부정적인 상황과 그에 대한 '나'의 조언이 이어진다. 그는 이번에는 부끄러워서 얼굴이 빨개지고, 어색함에 몸이 뻣뻣해져 있다. 무언가 남들 앞에서 실수를 한 모양이다. 그런 그에게 '나'는 이번에도 현명한 조언을 건넨다. '언제나 잘해야 하는 것은 아니야. 잘할 때도 있고 실수할 때도 있는 거지.' 화자는 이번에도 별 거 아니라는 듯이 그의 어깨를 툭 치며 힘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누가 비판을 하든, 손가락질을 하든 무거운 신념 하나, 즉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 하나를 마음에 새기고 네 갈 길을 걸어가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어지는 구절이 조금 이상하다. '결국 뱃머리 돌리는 건 바로 나 캡틴 웨일'이란 부분이다. 지금까지 '나'는 '그'에게 위로를 해주고 있었는데, 그런 그의 뱃머리를 돌리는 게 '나' 라니? 그것도 그냥 '나'가 아니라 '캡틴'이다. 우리는 여기서 이 노랫말의 화자인 '나'와 '그'가 결국 동일인물이고, 약해져 있는 자기 자신을 '그'라고 객관화시켜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스스로에게 "야, 인마 너 잘할 수 있어!"와 같이 말하는 것과 같은 상황인 것이다. 따라서 이 노래는 결국 약해져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응원가인 셈이다. 현실적 자아는 비록 보잘것없지만, 나의 내면적 자아는 천하무적 '캡틴(선장)'이므로, 세상의 평판에 굴하지 않고 내 길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살펴본 1연과 2연의 내용을 종합해 보았을 때 제목 '로켓펀치 제너레이션(세대)'의 의미는 무엇일까? 적어도 1연 5, 6행을 참고했을 때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 것은 아닌 듯하다. 로켓 펀치를 마구 날려대고, 악과 싸워 결국엔 뻔한 승리를 쟁취해내는 천하무적 로봇을 보며 자라온 세대인 우리들은, 현실에서도 비현실적인 기대감을 품고 살아가지만, 막상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어린 시절 동심은 살아남아야 하는 냉혹한 현실 앞에서 시니컬해졌다. 그러므로 결국 '로켓펀치 세대'는 파괴된 동심을 안고 팍팍한 현실을 버텨내는 모든 어른들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천하무적 로봇이 아니면 어떠랴. 언제나 이기기만 하는 게임은 오히려 재미없고, 그리고 사실 인생은 게임도 아니다. 그냥 하루를 성실히 살아내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고, 행복과 불행, 평온과 나태는 언제나 오르락내리락할 뿐이다. 따라서 화자는 3연에서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의 완전한 충족감에 대해서 노래하며, 상황이 더 나빠진다고 해도 '너와 나'는 '우리'라는 완전체이므로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불안은 날려버리고 '바로 지금'이라는 '현재'를 붙잡자고 이야기한다.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가 이야기했던 '카르페디엠 Carpe Diem'의 정신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심각하던 마음이 한없이 가벼워진다. 그래서 오히려 로켓펀치라도 슉슉 휘두를 수 있을 것만 같은 힘이 솟는다.


지쳐있는 주인공에게 희망과 용기의 메시지를 전한다는 점에서 지난 시간에 살펴본 <해에게서 소년에게>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만, <해에게서 소년에게>의 화자가 '해'라는 절대자인 반면, <R.P.G.>에서의 화자는 평범한 인간 '나'이다. 따라서 '어조'에 있어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데 전자가 강렬하고 비장하다면 후자는 경쾌하고 밝다. 이러한 어조의 차이는 음악적 요소와도 관련이 있다. 전자가 1997년의 세기말적 장중함을 담고 있는 정통 메탈이라면, 후자는 뉴밀레니엄 시대에 걸맞은 산뜻하고 가벼운 일렉트로니카 음악이기 때문이다.

요즘엔 '꿈을 크게 가져라, 포기하지 마라' 등의 조언이나 응원의 말조차 쉽게 꺼낼 수 없는 분위기이다. 나이 많은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하면 꼰대라서 그렇다느니 젊은 세대가 꿈을 가지기엔 사회 구조적으로 문제가 많다느니 등의 이야기를 한다. '꿈이 꼭 있어야 하나? 포기하면 편하다'등으로 기존에 중시하던 가치들을 뒤엎으려는 시도들도 있다. 너무 큰 목표나 원대한 꿈은 자기 자신을 오히려 초라하게 만들 뿐이므로 그냥 오늘의 자신에 만족하며 애쓰지 말자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엔 현실에 머물러 있을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현실이 너무 시궁창이라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 자체를 꿈으로 가진 사람도 있다. 그러니까 꿈은 반짝반짝 빛나는 별 같은 것이 아니라, 나를 진창에서 꺼내 줄 동아줄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여전히 꿈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꿈은 응원받아야만 한다. 때로는 신해철의 진지한 목소리로, 때로는 웨일의 경쾌한 목소리로 말이다.


[시와 연결하기]

가끔 시에는 이렇게 '현실적 자아'와 '내면적 자아'의 대화를 다루고 있는 작품들이 있는데,
이상의 <거울>과 윤동주의 <자화상>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예) 윤동주의 <자화상> 중에서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 '그 사나이'는 현실적 자아, 그 사나이를 미워하는 존재인 '나'는 내면적 자아.


[시와 연결하기]

시에서 어조(語調, Tone)란 말의 가락, 즉 말의 분위기를 이야기한다. 사용되는 어휘 자체가 주는 뉘앙스나 종결어미의 특색, 메시지의 내용에 따라 정해진다. 시의 어조는 특히 음악적 요소와 바로 직결되기 때문에 노래 가사를 통해 '어조'파악 연습을 쉽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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