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소식을 접하고, 내 작품이 실린 책이 나오고, 주변 사람들과 기쁨을 나누면서도 나는 어쩐지 조금 우울했다. 등단을 하지 못한 문우들이 들으면 배부른 소리라고 한 소리 할 테지만, 그게 솔직한 나의 감정이었다. 어떤 날은 집에서 설거지를 하다가 갑자기 엉엉 울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는데, 나도 내가 왜 우는지 몰라 난감했지만 어쨌든 터져 나오는 눈물을 억지로 막을 수는 없었다. 기쁨의 눈물이자 안도의 눈물인 걸까? 그동안 고생한 나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인 걸까? 혹은 습작 기간이 짧다는 것에 대한 불안인 걸까? 이런 모든 마음이 뒤섞인 눈물인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 더 큰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허무의 표정과 닮아있었다.
내가 소설가에 대한 꿈을 처음으로 품은 것은 사범대학교를 졸업하고 난 이후다. 처음부터 흥미가 없었던 학과였기 때문에 나는 과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고, 선생님이 되고 싶은 마음도 없으면서 어영부영 사범대학을 졸업했다. 그렇게 아무것도 할 일 없는 백수가 되고 보니 슬그머니 마음속에 '소설가'라는 꿈이 움트기 시작했다. 그래서 작가 지망생 카페에 가입을 하고, 거기서 알게 된 사람들과 습작 스터디를 하며 3개월 정도 소설을 썼다. 하지만 나는 단 한 편도 완성하지 못한 채 취업 전선으로 뛰어들었다. 제대로 문학을 배우지도 않은 내가 이런 식으로 글을 써서 언제 소설가가 되고, 언제 돈을 벌겠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뒤로 나는 국어 임용고시에 남은 20대의 시간을 다 투자했고 겨우겨우 국어교사가 되었다. 그리고 험난한 교직생활을 하며 접어버린 꿈을 다시 펼쳐 들어 보았다. 그리고 코로나19가 막 유행하기 시작하던 2020년 3월에 10년 전 쓰다만 소설을 처음으로 완성하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소설 한 편을 쓰는데 10년이나 걸린 셈이다. 그렇게 나는 35살에 첫 소설을 완성했고, 더 이상 꿈을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퇴직을 했다. 그리고 퇴직 후 처음으로 완성한 소설로 등단을 했다.
그런데 이 믿기지 않는 꿈같은 일을 당하고(?) 나니까 나는 오히려 삶이 허무해졌다. 소설가가 너무 쉽게 되어서 허무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어린 시절 내게 있어 소설가는 꿈꾼다고 해서 아무나 될 수 있는 그런 직업이 아니었고, 머나먼 꿈이자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내가 바로 그 '소설가'가 되었다. 그리고 그 말은 앞으로 더욱더 처절하게 글을 써야 하고, 스스로의 한계로 인해 괴로워해야 하며, 삶을 더 넓고 깊게 조망할 수 있는, 그리고 그것을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해내야만 하는 그런 어마 무시한 일들을 해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완전히 압도되었다. 그리고 다시 무언가가 시작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소설가 그룹에 이제 막 입사한 신입사원이나 마찬가지였고, 이 세계에서 인정받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다음 단계의 임무가 내려졌다. 도태되어서는 안 되고, 무명의 소설가로 남아서도 안 된다. 소설가로 먹고살기 위해서는 출판사가 요구하는 일정 판매 부수를 넘겨야 하고, 유명세를 얻어 특강 한 자리라도 얻어야 한다. 그리고 각종 문학상과 창작기금을 받아야 전업작가로 살 수 있다. 그토록 원하던 소설가의 세계에 진입했으니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본능적인 강박이 내 마음속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마음이 들자 나는 문득 사는 것이 서러워지고 허무해졌다. 어째서 삶은 이렇게 끝도 없는 전쟁인 건가. 어렵게 한 계단을 올라도 다음에는 더 높은 계단이 기다리고 있다니. 임용고시를 준비했을 때도 다른 사람을 제쳐야만 합격할 수 있었는데, 꿈의 세계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었다. 어디에도 끝은 없었고, 계속 경쟁하며 살아야 하는 삶 앞에서 허망함과 무상감을 느껴야만 했다. 그리고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만 가져야 한다는 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정말 너무 사랑하는 일을 잘 해내지 못했을 때의 자괴감은 어쩌면 나를 쓰러트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나 나는 지금 이 길에 있는 것이 좋다. ('하지만'이라는 단어가 없다면 세상은 절망일 뿐이겠지?)
언젠가 쓰러지더라도 '내 길'에서 쓰러지는 것은 실패가 아닐 것이다. 그런 순간이 오면, 그냥 나는 여기까지 인가보다 생각하며 또 다른 길을 찾아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나는 어떤 순간에도 실패하지 않았던 것 같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대입에 실패했지만 재수를 해서 원하던 사범대에 갔다. 국어 임용 4수에 실패했지만 마지막으로 한번 더 도전해 합격을 했다. 그리고 신춘문예에 2년 연속 떨어졌지만 다음 해에 문예지로 등단을 했다. 내가 지금까지 이룬 모든 것은 실패에서 멈추지 않고 또다시 도전해낸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지닌 성격 중 유일하게 쓸모 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미련함'인 것 같다. 아마 이번 해에 등단하지 못했다고 해도 나는 5년이고 10년이고 계속 도전했을 것이다. 그래서 행운의 여신이 더 이상은 미련하게 살지 말라고 나를 일찍 등단시켜 준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가끔은, 내 성격적 결함인 조급함이 모든 것을 망칠 때-지금처럼 이렇게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걱정하며 우울해하는-도 있지만 글쓰는 일도, 살아내는 일도 앞으로 십 년 정도 더 하다 보면, '여유'란 것을 조금쯤 갖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 이제 겨우 시작이니까. 신발끈을 단단히 묶되 준비, 요이, 땅 - 총소리에 너무 겁먹지는 말자.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의 길을 제대로 음미하며 걸어가자! 그렇게 계속 가다보면 언젠가황홀한 꽃밭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