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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하 Apr 04. 2023

꿈을 이루고 싶다면, 은당크 은당크

 나는 최근에 다시 월급 노동자 신세가 되었다. 다만 예전과 같은 전일제 직장은 아니고 주 4일 하루 6시간, 일주일에 24시간만 근무하면 되는 일자리를 얻었다. 월급은 180만 원. 정말로 다시는, 일로 느껴지는 것들을 하며 살고 싶지 않았지만 소설만 써서는 밥벌이를 할 수 없다는 것이 등단 1년 차 소설가인 나의 결론이었다.


 작년 10월에 등단한 후로 지금까지 내가 소설을 써서 벌어들인 돈은 80만 원이 전부다. 단편 소설 한 작품의 원고료는 문예지의 사정에 따라 다르지만 70만 원을 주는 곳도 있고, 150만 원을 주는 곳도 있다. 하지만 나는 등단 작품에 대해 80만 원의 고료를 받았고, 다음 소설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는 1년 후로 미뤄지게 됐다. 고은의 시집 '무의 노래' 출간 사태로 인해 실천문학 계간지가 1년간 휴간되었기 때문이다.(계간지 휴간에 나도 찬성하긴 했지만;)

 

 물론 실천문학이 아닌 곳에 소설을 발표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제 막 등단한 신인에게 원고 청탁을 보내오는 곳은 없었다. 경영난으로 인해 문예지의 지면이 많이 줄어든 상태라 기존 소설가의 작품도 많이 밀려있다고 한다. 그리고 문예지에도 급이 있어서 군소 문예지(?) 출신인 나에겐 원고 청탁이 안 들어오는 건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유일한 소설가 선배는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1~2년 동안 원고 청탁 없어도 나중에 잘 되는 작가도 있다며 나를 위로해 줬지만 그러기엔 상황여의치 않았다. 퇴직금은 1년 6개월 만에 다 써버렸고, 나는 당장의 생활비를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설령 여기저기에서 원고 청탁이 온다고 해도 소설만 써서 생계를 해결하기는 구조적으로 어렵다. 단편 소설 하나 쓰는데 적어도 두 달은 걸린다. 구상하고, 자료조사 하고, 글로 풀어내고, 수차례 퇴고하기 까지. 그렇게 해서 받는 돈이 150만 원 내외라면? 직장인처럼 꼬박꼬박 월급을 받는다고 해도 한 달에 75만 원 수준인 셈이니, 최저시급에도 한참 못 미치는 액수다.


 나중에는 이슬아 작가처럼 돈을 받고 소설 구독서비스를 해볼까? 독립출판을 해볼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돈도 돈이지만 애써 쓴 소설이 독자들과 만나지 못하고 있으니 소설을 써야겠다는 동기부여가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글이라는 게 내가 쓰고 싶어서 쓰는 것이지만, 소설가가 되겠다고 직장까지 관둔 마당이라 그런지 소설을 발표할 기회조차 없는 이 상황이 손발이 꽁꽁 묶인 것처럼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이렇게 문예지에 간탁(청탁+간택) 당하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느니 차라리 셀프로 소설을 발표하며 수입을 벌어들이는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해볼까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그 유일한 소설가 선배의 말이, 그러면 오히려 영영 청탁이 안 올 것이란다. 말 그대로 '독립' 출판을 했으니 문단과는 인연이 끊긴 채로 어정쩡한 아웃사이더가 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문단 권력의 인정을 받아야 나중에 문학상도 받고 창작기금도 받고 할 텐데 말이다. 그리고 독립출판을 한다고 해도 제작과 판매, 홍보를 내가 혼자 다 해야 하니 거기에 드는 수고도 상당할 거고 홍보 효과도 그리 크지 않을 테니 잘 돼도 절반의 성공뿐이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포기해 버렸다.    


 임용고시에 합격하면 세상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거라고 믿었던 순진한 취준생처럼, 소설가로 등단하기만 하면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거라는 백일몽 속에 헤매던 나는 또 한 번 차디찬 현실과 마주해야만 했다. 세상에, 어떻게 그렇게 결정적인 실수를 두 번이나 반복할 수있는 거지? 나란 인간ㅎㅎ


 어쨌든 그래서 결론은 소설만 써서 먹고살 수 없으니 전업작가의 꿈은 또 잠시 미뤄두고 생활전선에 뛰어들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내가 다니는 소설 학원(?)을 통해 알게 된 소설가 몇몇은 거의 다 직장인이었다. 기자, 출판사, 마케터, IT분야 등등 직업도 다양했다. 소설이란 어차피 삶에 대한 이야기고, 그런 소설을 써야 하는 소설가도 삶에 든든히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그래야만 핍진한 소설이 나오고, 조앤 롤링처럼 절박한 상상력을 발휘하게 되는 건지도?

 하지만 아르바이트도 접고 노상 글만 쓰던 지난 1~2월이, 나에겐 더없는 힐링과 행복의 시간이었던걸 생각하면, 소설가에겐 역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확실하다ㅠㅠ 읽어야 할 책도 많고, 생각하고 상상할 시간도 필요하고,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하루에 5~6시간씩 소설을 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하나의 작품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집중과 몰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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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로 나는 독서/글쓰기 학원에서 학생들의 독서지도와 글쓰기 첨삭 업무를 맡고 있다. 원생은 주로 초등학생들인데 아직 때 묻지 않은 순수하고 착한 모습이 귀엽다. 그리고 학교에서 하지 못했던 본질적인 국어교육을 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 만족감도 상당하다. 물론 과외가 아니니 심도 있는 1:1 지도는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글로 소통하는 시간이 의미 있게 느껴져서 다행이다. 소설 쓰기와 병행하기에 이만한 일이 없다는 생각도 든다. 아이들이 읽는 동화책이 내게 깊은 울림을 줄 때도 많다.

은당크 은당크
<비닐봉지 하나가>, 길벗어린이


 아프리카 감비아의 소녀 '아이사투'는 마을을 더럽히는 비닐봉지를 치우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비닐을 재활용하여 지갑을 만든다. 하지만 비닐은 치우고 치워도 끝이 없고, 그런 아이사투를 사람들은 비웃는다. 하지만 아이사투가 만든 재활용 지갑은 소득을 창출해 냈고, 나중에는 '나우 재활용 소득 증가 단체(NRIGG)'까지 설립되며 마을은 깨끗해지고 부유해진다. 아이사투는 2012년 국제 여성 연맹에서 세계를 변화시킨 100인에 선정되기도 한다.

( 출처 : '바람'님 브런치 09화 비닐봉지 하나로 지구를 지킬 수도 (brunch.co.kr))


더러운 비닐봉지를 씻고, 자르고, 뜨게 바늘로 지갑을 뜨며 나누는 할머니와 아이사투의 대화가 가슴 찡하게 다가온다.


"나카 리게이 비?" (이 일이 어떻게 될까?)

"은당크 은당크" (아주 느리게 될 거예요)


 환경을 위한 작은 노력이 아주 느리게라도 결실을 맺을 거라고 믿는 아이사투의 마음처럼, 꿈에도 그런 마음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이건 환경을 위한 일도 아니고 고작 나를 위한 일이니까, 겸허한 마음으로 앞으로의 시간들을 보내야겠다. 그래도 주 4일에 2시까지만 출근하면 되니, 이렇게 오전에 글도 쓸 수 있고 좋다.(나는 정말 주 4일제 만이 한국의 미래라고 생각해!!!) 그리고 사실 그동안에도 이런저런 살 궁리를 하느라 마음이 불안해 소설에만 올인하지도 못했다. 차라리 착실하게 출퇴근하며 남는 시간에 소설을 쓰는 게 가장 안정적인 방법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이 직장은 퇴근하면 끝-이기 때문이다. (학교는 막중한 책임감이...)

 

 어쨌든 소설 쓸 시간도 모자라 브런치를 놓은 지 오래됐지만, 그래도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하시는 다정한 독자님들이 계셔서 가끔이라도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월 2회 정도?ㅋㅋㅠ)

앞으로는 작가 지망생들을 위한 초짜 소설가의 생존 분투기, 소설 리뷰, 가끔 에세이, 그런 글들을 쓰게 될 것 같다. 그리고 글의 퀄리티에 대한 우려는 아주 그냥 내려놓으려고 한다; 시간이 없으니!


 그럼, 오늘도 당신만의 하루를 사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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