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 Oct 20. 2020

비닐봉지 하나로 지구를 지킬 수도

기후변화에 대한 경고, 그림책 '비닐봉지 하나가'에서 그 해답을 찾다

요즘 기후변화의 경고를 많이 접한다. 플라스틱에 의한 거북이나 고래 등 바다생물들의 수난은 다양한 채널로 접할 수 있다. 일회용품이나 플라스틱 제품을 사용하지 않거나 자제하자는 움직임과 세심한 분리수거를 강조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환경단체와 환경운동가들의 단호한 경고도 부쩍 많아진 느낌이다.  


일반 시민들도 비닐 포장 없이 장보기 등을 실천하는 사례를 개인 블로그나 SNS를 통해 보여주는 것을 종종 본다. 거기에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가까운 거리는 걸어서 이동하고, 욕심껏 채우는 삶이 아닌 덜어내는 삶의 필요성을 말하고 실천 사례를 공유하기도 한다.


그런 경향이 정말 늘어난 것인지, 아니면 나의 관심이 그런 소식을 찾아다니고 접하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사람들의 인식의 방향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더 분명한 것은 나 자신도 예전보다 기후 변화의 경고나 환경오염의 심각성에 대해 걱정스러운 마음이 많아진 것이 사실이고, 작은 것부터 생활 속에서 더 철저하게 실천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요즈음의 MZ 세대(밀레니얼+Z세대)는 식물성 고기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먹고, 환경친화적인 방식으로 만든 옷을 입고, 비건 화장품을 바른다고 한다. 젊은 세대의 신념과 가치소비가 만나 기업의 변화를 이끌어내기까지 하는 양상이다. 나도 요즘은 이중 포장된 제품은 구매하지 않는다. 플라스틱 용기보다는 종이로 포장된 제품을 선택한다. 생활용품 같은 것들도 친환경 제품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선택한다.


덜어내는 삶도 마찬가지다. 최근 들어 무분별하게 사들였던 홈쇼핑의 세트로 파는 의류의 구매를 거의 안 하고 있다. 모두 입지도 않으면서 가격이 싸다고 해서 충동구매하던 것을 중지하고 있고, 언젠간 입겠지 생각하며 장롱에 고이 모셔 두었던 안 입는 옷들도 재활용으로 내보내는 중이다. 자랑처럼 쌓고 살았던 책들도 이미 본 것들은 나눔을 주저하지 않고 있다.


집안 구석구석에 쌓여있던 물건들을 조금씩 비워내니 집은 넓어지고 마음은 가벼워진다. 자잘한 것들이 사라지니 깨끗해지는 느낌이 들고, 그렇게 덜어내는 삶의 맛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명절이 되면 방송사마다 특선 영화를 엄선해서 보여주고 그것을 보곤 했다. 이번엔 우리가 선택했다. 딸과 함께 오래된 영화 <투모로우>를 다시 봤다. 나온 지 무려 16년이 지난 영화다. 추석 연휴에 우리가 선택한 영화가 왜 <투모로우>였는지는 모르겠다. 내내 더웠다가 갑작스럽게 추워진 날씨를 얘기했고, 기후가 심상치 않다는 말을 나누며 자연스럽게 기후로 인한 재난 상황을 떠올렸던 것 같다.


아직은 보일러를 틀지 않아 찬 바닥에 도톰한 이부자리를 깔고 두 모녀가 120분 러닝 타임의 영화를 앉은자리에서 재미있게 보았다. 그동안 TV를 통해 봤던 것까지 대여섯 번은 충분히 더 봤을 영화를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집중해서 봤다.


급격한 지구 온난화로 인해 남극 북극의 빙하가 녹고 바닷물이 차가워지면서 해류의 흐름이 바뀌어 결국 지구 전체가 빙하기로 접어드는 재앙을 맞이한다는 것이 영화의 큰 줄거리다. 그간의 재난 영화들을 보면 결정적인 순간에 인간이 위협을 느끼고 되돌리려고 노력하는 과정이나 위기를 극복해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는 달리, 이 영화는 끝장을 본다. 빙하기가 찾아오고 미국이라는 나라는 멕시코로 건너가 다시 삶의 기반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을 맞는다.


원제는 <The day after Tomorrow(모레)>지만 우리나라에서 상영된 제목은 <투모로우(내일)>가 되었다. 퀴즈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뉴욕으로 떠났다가 고립된 아들, 그 아들을 찾아 빙하기에 접어든 뉴욕으로 떠나는 아버지의 부성애도 보여준다. 데니스 퀘이드가 뉴욕으로 아들을 찾아 떠나는 아버지 역을 맡았고, 제이크 질렌할이 아들 역으로 출연해 열연을 보여주었다.


고립된 세 명의 과학자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대피하기에는 이미 늦은 것을 아는 셋이 위스키를 꺼내 건배하는 장면은 다시 봐도 인상적이다.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고 스피노자는 희망을 얘기한 것일지 모르겠지만, 내일의 운명을 알고 있는 과학자들의 위스키 건배는, 비록 내일 자신들이 죽음을 맞더라도 오늘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그 이어짐을 얘기하는 것 같았다.


처음 영화관에서 보았을 때나 이번의 경우에나 영화를 보고 난 후의 충격적인 인상은 다르지 않다. 인간이 환경에 대해 무감각할 정도로 자연을 아무렇게나 사용했을 때의 결과를, 자연이 인간에게 내리는 재앙이자 최후의 경고를 생생히 접할 수 있다.


영화에서는 극적인 해결방법이나 합리적 대안이 제시되지는 않는다. 뉴욕의 도서관에 있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가는 것. 기후학자인 아버지가 뉴욕에서 아들을 찾음으로써 아들에게 했던 아버지의 약속이 지켜지는 것과, 극한의 상황에서도 인간의 생존을 위한 치열한 분투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전부다.


환경이라는 커다란 문제를 떠올리면 너무 거창하고 막연해서 일상에서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래야 환경친화적인 면제품일지라도 쉽게 입고 쉽게 버리는 것을 자제하는 것, 한 번에 5장이나 8장을 준다고 해서 마구 사지 않는 것, 내가 가진 것을 조금씩 비우는 것, 비우더라도 환경을 해치지 않도록 제대로 버리는 것일 뿐이다.


작고 소소해서 아무 소용이 없을 것 같은 일을 나 같은 사람들 몇이 한다고 변화가 있을까 싶은데, 우연히 들른 도서관에서 만난 환경에 관한 그림책이 깨달음을 준다. '지구를 살린 감비아의 여인들'이라는 부제로, 지구 상에 가장 큰 문제인 비닐봉지 재활용에 관한 이야기다. <비닐봉지 하나가>(미란다 폴 지음)에서는 비닐봉지 등의 쓰레기 더미로 쌓인 서아프리카의 나라 감비아를 변화시킨 아이사투 씨세라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아이사투의 비닐봉지 재활용 프로젝트로 인해 나우는 깨끗해졌고 염소들은 건강해졌고 농작물은 잘 자라게 되었다는 기적을 보여준 이야기다. 아이사투와 평화봉사단원, 감비아 여성 4명이 함께 '나우 재활용 소득 증가 단체(NRIGG)'를 시작하며 더러운 비닐봉지를 씻고 자르고 뜨게 바늘로 엮어 만든 재활용 지갑이 소득이 되기까지의 느리고 긴 과정들이 그림책에 기록되어 있다. 더러웠던 도시를 깨끗하게 만든 아이사투는 2012년 국제 여성 연맹에서 세계를 변화시킨 100인에 선정되었다고 한다.


<비닐봉지 하나가>에서는 변화는 아주 작은 시작으로 아주 느리게 진행된다고 알려준다. 함께 비닐봉지로 재활용 지갑을 만들며 할머니와 아이사투는 묻고 답한다.

                                      

"나카 리게이 비?" (이 일이 어떻게 될까)

"은당크 은당크" (아주 느리게 될 거예요)


어떤 비웃음에도 옳은 일을 한다는 믿음은 사람들을 변하게 하고, 마을을 변화시키고 도시를 변화시킨다. 어쩌면 기후변화에 예민해지는 나의 감각이, 사람들의 작은 실천이, 제주의 바다에서 쓰레기를 건지는 몇몇 사람들의 작은 시도가 변화의 시작일 수 있을 것 같다.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느리지만 일상적으로 이어진다면, 영화를 보고 난 오늘의 충격적인 느낌은 조금 가라앉혀도 되지 않을까.





이전 08화 오로라를 볼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