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 Sep 10. 2020

오로라를 볼 수 있을까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로 인해 피트니스가 문을 열지 않는다. 덕분에 집에서 말 그대로 푹 쉰다. 어느 날 만보 앱을 열면 백 보도 걷지 않은 날이 많다. 집안에서 휴대폰을 들고 다니며 잠깐 왔다 갔다 한 것이 그나마 걸음 수로 측정된 숫자의 전부다. 휴대폰 들고 실내에서 오간 걸음이 전부인 나.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집콕 생활을 훌륭히 잘하고 있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랜선 여행을 즐긴다. 랜선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국내 여행지도 아직 못 가본 곳이 많다는 것을 확인한다. 코로나로 해외여행이 불가능해지고부터는 당일 여행이 가능한 거리는 차로 돌아보곤 한다. 관람시설은 대부분 문을 닫았지만 마을의 풍경을 둘러보거나 한적한 자연에 빠지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물론 그렇게 다니는 것도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의 상황에서는 참고 있는 중이다. 완전한 통행 규제가 아닌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테이크 아웃 커피나 찬거리를 사러 잠깐씩 집 밖을 나갈 뿐이다.


해외여행은 다시 갈 수 있는 날이 올까 싶다. 조금만 지나면 사라질 것 같던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고 하니, 코로나 이전에 몇 번 다녀온 것이 그나마 잘한 짓이었다고 생각을 한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TV나 인터넷을 통해 눈으로 하는 여행을 할 수밖에 없다. 내가 없는 여행지를 눈으로만 보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사전 탐사 정도로 가볍게 보고는 했는데, 지금은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마치 내가 그곳에 있는 것처럼 즐기려고 노력한다.


지난해까지 각종 여행 통계를 통해 보이는 것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의 해외여행에 대한 요구와 갈증은 특별한 것 같다. 나 역시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그렇다. 여행이 불가능한 요즘은 여행을 가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렬해진다.


TV 화면에 우리가 갔던 곳이 나온다. 모두 같아 보이지만 지나다 눈여겨봤던 곳이나 사진을 찍은 곳이 나오면 지난 여행의 추억을 더듬게 된다. 사진을 찍기 위해 삼각대를 설치하고 포즈를 취했던 곳, 유명한 사람의 동상, 어느 작가의 집, 쇼핑을 위해 들어갔던 건물과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있었던 장소까지 새록새록 새롭다.


가고 싶은 곳이 나오면 채널 고정이다. 코스도 생각한다. 어느 곳을 거쳐 저곳으로 들어가서 삼사일의 일정을 보내면 되겠구나 생각하며 빠져든다. 모두 같아 보이는 유럽의 풍경이지만 묘하게 갔던 곳과 비슷한 곳도 있고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곳도 있다. "저기도 갔어야 하는데..." 아쉬운 마음을 표현하며 끝을 맺는다.


많이 다니지는 않았지만 일곱 개의 나라, 스무 곳 정도의 도시를 다녔다. 운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두 곳에서 소매치기를 만났고 한 곳에서 가방을 털렸다. 또 한 곳에서는 초보 여행자의 티를 팍팍 내며 벌금도 물었다.


소매치기당한 기억은 걸었던 거리의 풍경이나 사람들의 걸음걸이,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와 벽에 붙은 포스터까지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당시의 정황을 상세히 기억하고 있다. 벌금을 물게 되었을 때, 상대의 말은 이해를 못 했지만 빈정거림의 목소리와 표정까지 기억에 남을 정도로 생생하다. 철도 공무원의 빈정거림,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인 여행자에게 그럴까 싶다.


그다음으로 기억하는 것이 먹는 것과 관련된 기억이다. 다른 끼니에서 절약하면서 계획된 근사한 레스토랑에 갔지만 사진 촬영을 위해 준비된 것 같은 음식은 맛에는 실망을 안겨줬던 기억이 있다. 실내의 이곳저곳을 사진을 찍는 동안 오래 기다려서 나온 음식은 들뜬 여행자의 눈은 충족했으나 배고픈 여행자의 입은 충족시키지 못했다. 물론 만족했던 식사도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남아 있는 기억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곳에서의 기억이 더 진하다.


첫 여행에서, 일정의 절반 정도는 한인 민박에서 묵었다. 중간에 한인 민박을 끼워 넣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우리말이 통한다는 편안함과 집에서 먹는 것과 같은 종류의 음식은 무엇이든 다 맛있어서 생애 마지막 끼니인 것처럼 참 열심히 먹었었다. 그밖에도 우리나라에도 있는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은 참새가 방앗간 찾듯 했다. 때가 아니어도 눈에 띄는 익숙한 곳이 나타나면 지나치지 않고 들어가 작은 것 하나라도 사 먹었다. 세계 어디서나 통할 수 있는 음식이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여행을 갈 때 짐의 절반은 먹는 걸로 채워 간다. 각 나라마다의 음식에서 나는 독특한 향에도 적응이 안 되고 고기와 빵이 주식인 식단도 내겐 힘들다. 양념과 각종 캔을 가져가서 그곳의 것과 혼합해서 먹는 방법으로 식사를 해결하곤 했다. 허겁지겁 허기만을 달래주는 식사는 음식에 대한 향수를 불러온다. 거기에 한식이 주는 포만감과 비교하면 먹기 위한 여행은 포기해야 마땅하고 실제로도 대부분 그랬던 것 같다.


오늘도 TV 화면에 우리가 가고 싶은 곳이 나온다. 북유럽의 도시들이다. 오로라를 만날 수 있는 곳이나 피오르드 해안을 따라 형성된 노르웨이의 도시들. 그곳에 갈 수 있는 날을 손꼽으며 오늘도 여행을 계획해본다.


살아가면서 지구가 좁다는 사실은 확인하지 못할 것 같다. 대한민국이 좁은 것도 모르겠는데 하물며 지구일까. 모든 세상을 다 볼 수는 없을지라도 구석구석 좋은 곳을 보고 마음에도 눈에도 담고 싶다는 생각은 아직 가지고 있다. 기운이 남아있을 때, 걸을 수 있을 때, 두 발로 세계의 곳곳을 딛고 싶다. 빨리 코로나 백신이 나오길, 코로나를 정복하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그때까지는 집콕 생활에 랜선으로 떠나는 여행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이전 07화 에어컨 커버가 그대로인 여름, 기후변화의 경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