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3년이 지난 학교 다닐 때의 일이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수업도 급식도 정상적인 진행이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당시 4교시 수업에 들어가면 아이들은 점심시간에 대한 기대 때문에 4교시 내내 졸던 아이도 수업 종료시간 10분을 남기고는 귀신 같이 잠에서 깼다. 신경을 써서 수업을 시간 내에 마무리하려고 노력했지만 그게 안 되는 경우에도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종료 5분 전까지가 한계였다.
그 시간을 지키지 못하고 수업의 흐름이 이어지면 아이들은 나의 질문에 영혼이 없는 '예'나 '아니오'로 대답을 빠르게 하거나, 그 시간 잘 참여했던 학생이 대표로 지기를 발휘해 점검하는 내용을 빠르게 척척 대답했다. 어떻게 하든 빨리 마무리하려고 했던 아이들 나름대로의 노력이었다. 수업시간 배운 내용에 대한 확인이 끝나고 수업이 마무리하며 교실을 한 바퀴 돌아 앞으로 오면 정면에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급식 시간표였다.
매월 말이면 급식실에서 급식 시간표가 뿌려졌다. 가정통신문으로 나가기도 하지만, 학급 담임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급식 시간표를 학급에 게시하는 것이었다. 급식표가 붙으면 한 학생이 형광펜을 준비해 좋아하는 식단에 특별한 표시를 해 놓았다. 누구도 빼놓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그날의 메뉴를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을 담아서.
학급에 따라 또는 아이들의 특성에 따라 급식 시간표는 다양한 형태로 채색이 되었다. 공통적인 것은 모두가 가장 잘 볼 수 있는 위치에 붙어 있었고, 특별히 주목하는 메뉴는 멀리서도 눈에 띄게 채색이 되었고, 선택을 받은 메뉴는 학급마다 대개 비슷했다. 오늘의 기대되는 음식이 뭐냐고 물으면 아이들은 급식표를 보지 않고도 메뉴를 줄줄 외었다.
아이들의 메뉴 선택에 의아했던 것이 순댓국, 우거지탕, 감자탕 등의 메뉴였다. 별 다섯 개를 표시할 만큼 아이들은 그것들을 좋아했다. 적어도 내가 물었던 아이들 중에 그 음식을 싫어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른인 나도 싫어하는 메뉴를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아 거듭 물었지만 아이들의 원픽은 단연 순댓국과 순대볶음이었다. 왜 좋아하냐고 물으면 "맛있잖아요", "급식에서 제일 기다리는 메뉴예요."라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교사들은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배식 지도를 했다. 배식 지도를 할 때가 마침 순댓국이 나오는 날이면, 평소 먹는 것에 욕심이 없던 아이들도 순대를 더 가져가겠다고 기다리며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순대를 나눠주는 적당한 개수가 있었지만 아이들은 식판이 넘칠 때까지 '하나 더'를 외쳤다. "내 것 쟤한테 주세요."라고 말하며 쿨하게 지나치는 아이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의 ‘하나 더’에 식판을 키워서라도 더 담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아이들이 순댓국과 감자탕에 열광하는 것과는 반대로 나는 그것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 메뉴가 나오는 날은 김치나 반찬 몇 가지 만으로 점심 급식을 해결했다. 어른이 돼서 아이들처럼 음식을 가리는 것이 민망하여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그런 어른은 나만이 아니었다. 나는 그래도 표 내지 않으려고 국물을 한 국자 뜨기는 했는데, 아예 국을 담지도 않는 이도 있었다. 나와 같은 취향은 반가웠지만 음식을 가리는 어른이라는 민망함을 나누며 아이 입맛을 가진 어른 둘이 시원찮은 식사를 마무리하곤 했다.
이런 우리와는 달리 아이들은 적극적인 의사표현을 했다. 빈 식판을 제자리로 가져가며 영양교사를 향해 감사 인사를 했고, 우리 학교의 급식 맛이 '짱!'이라며 엄지 척을 내세우기도 했다.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순댓국 급식 횟수를 늘려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이어졌다. 나에게는 너무 진하게 나는 돼지 냄새가 아이들에게는 구수한 냄새로 바뀐다는 것이 신기했고, 아이들의 바람대로 순댓국과 감자탕 메뉴가 늘면 어떡하나 걱정도 했다.
지금은 할머니 입맛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의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소개되지만, 당시에는 어릴 때부터 음식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먹을 수 있도록 부모님들이 잘 키웠구나, 생각을 했다. 다양한 음식을 먹어 보거나 음식을 먹는 환경을 많이 접하면 모든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을 수 있을 거라는 것이, 나이 들어서도 가리는 것이 많은 어른의 생각이었다.
“미각은 타고날 수도 있지만 대부분 교육을 통해서 익혀지고, 혀를 통해 직접 느낀 맛은 냄새와 함께 뇌에 남겨지는데, 바로 기억이다. 맛도 아는 만큼 느낀다."
과학칼럼을 쓰는 박태진의 말에 나는 공감했다. 또 아이의 입맛은 부모의 입맛을 따라가는 유전적 요인도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집의 경우는 다행스럽게도 내가 싫어하는 그 음식들을 남편은 좋아한다. 남편의 입맛을 물려받은 덕인지, 우리 아이들은 순댓국이나 감자탕 등의 음식을 거리낌 없이 먹기 시작했고 먹을 수 있는 기회가 많기도 했다. 때문에 순댓국과 감자탕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친구들과도 자주 찾는 것을 알고 있다.
딸의 순댓국과 감자탕 사랑은 각별하다. 학교 기숙사에서 4년을 생활하면서 혼자 먹는 것에 익숙하기도 했고 메뉴 선택에서도 어떤 음식보다 토속적인 음식을 즐겼다. 심지어 일주일에 한두 번 먹지 않으면 음식이 머리에서 어른거리는지 지금은 집에 함께 사는데도 불구하고 혼자서 조용히 나가서 먹고 오는 일도 종종 있다.
순댓국이나 감자탕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맛있어서가 가장 중요한 이유이겠지만, 고기를 좋아하는 딸은 다른 이유도 말했다. 우선 국에 고기가 많고 삼겹살 같은 고기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게다가 1인분 포장도 잘 돼서 혼자 먹기에도 부담이 없다고. 그런 이유로 기숙사에서 지내며 고기가 먹고 싶을 때마다 자주 사서 먹었다고 했다. 사연을 알고 나서는 짠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딸이 혼자 조용히 먹고 오는 것을 우리 부부는 재미있게 바라보는 편이다. 엄마로서는 직접 끓여주지 못하는 미안함을 사서 먹이는 것으로 해결한다. 우리 지역의 이름을 딴 유명한 감자탕 전문점은 우리 가족의 단골집이다. 군대 갔던 아들이 동기들과 휴가를 나와 집에서 함께 자고 갔을 때에도 나는 아침 일찍 그 감자탕을 사 와서 먹였고, 아들과 동기들은 그것을 먹고 부대로 복귀했다.
나이가 들며 그동안 먹지 않았던 음식도 어쩔 수 없이 자주 접하게 되고 또 먹게 된 음식들이 있다. 감자탕이 그렇고 순댓국도 그런 경우다. 감자탕은 아직까지는 주로 감자만 먹거나 뼈 사이의 살코기 만을 젓가락으로 집어 먹는 정도다.
순댓국의 진한 국물은 여전히 적응이 안 되지만 순대와 채소를 듬뿍 넣은 순대볶음은 잘 먹는다. 순대도 찹쌀을 넣은 명품 순대보다는 당면으로 속을 채운 보통의 순대가 더 끌린다. 시장에서 장을 보다 분식집에서 가볍게 한 접시 먹기도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배달앱으로 주문하는 매콤 순대볶음은 매콤한 맛이 특유의 냄새를 가려줘서 이제는 망설임 없이 주문하는 메뉴다.
매콤 순대볶음의 후식으로 함께하면 좋은 것이 요즘 새로 발견한 것이 단호박 크로켓이다. 찹쌀 반죽에 단호박으로 속을 꽉 채워 막 튀겨낸 단호박 크로켓의 씹히는 맛은 기름에 튀긴 음식인데도 담백하게 느껴진다. 단호박의 단맛과 찹쌀 도우의 쫄깃함과 빵가루의 바삭함의 조화가 일품이다.
동네에 가게가 새로 생기고 나서 사람들이 줄어 서서 사는 것을 보고 '어떤 맛이길래...'하는 궁금증으로 맛이라도 보자고 줄을 섰던 것이 시작이었다. 지금은 매콤 순대볶음으로 얼얼해진 입안을 부드러운 달달함으로 한방에 중화시켜 주는 단짝이다.
오늘도 변함없이 뼈해장국 전문점은 사람이 많다. 이미 홀은 자리가 거의 찼고 요즘은 코로나로 인해 포장을 해서 가져가는 손님들도 꽤 많다고 한다. 증명이라도 하듯 기다리는 동안에도 포장 손님이 계속 이어진다. 이것 하나만 있으면 다른 반찬이 없어도 푸짐하고 만족스러운 한 끼 식사가 된다. 나는 오늘도 다른 이의 투박한 손맛을 빌려 가족의 저녁 밥상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