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유럽여행을 간 적이 있다. 피렌체에서 유명한 명품 아웃렛 매장을 여행 코스에 넣었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명품 쇼핑을 위해 피렌체를 코스에 넣었다. 그곳에서 명품백도 사고 유명 연예인이 쓴다는 화장품도 사고 명품은 아니어도 가죽 제품도 사자고 했다. 브랜드가 없어도 '메이드 인 이태리',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명품이 아닌가 얘기하며 웃음꽃을 피웠다.
피렌체 일정은 2박 3일이었다. 오가는 날을 제외하고 만 하루를 통째로 쇼핑만을 위해 계획했지만 쇼핑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아웃렛 매장에서는 효용을 따지며 망설였고, 가죽 시장에서는 바가지 쓰는 것은 아닐까 염려하며 망설였다. 정찰제로 되어 있는, 한국에서는 비싸지만 현지에서는 우리나라의 제품 가격과 다름없는 화장품만 꼭 필요한 것으로 몇 개 샀을 뿐이다. 야심 찼던 계획과는 달랐지만 명품에 목매는 사람은 아니었다.
직장을 다닐 때, 어찌 된 이유인지 날마다 입을 옷이 없었다. 옷에 대한 고민을 덜기 위해 주말이면 인터넷 쇼핑, 홈쇼핑을 열심히 했다. 명품은 아니지만 편한 것, 재질과 색감이 좋은 것, 가장 중요한 것은 흔하지 않은 것을 신중하게 골랐다.
교사들을 일반화해서 과목별로 복장을 특정 지어 장난처럼 소개한 이미지가 인터넷에 떠돌았다. 국어과였던 나는 인터넷에 소개된 그 스타일의 옷을 선호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역시 통계는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구나, 했고 그런 틀에서 벗어나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다.
딸의 스카프 때문에...
학교에 가면 여전히 아기 티가 줄줄 흐르는 아이들도 교사들의 옷차림에 관심이 많았다. 등 하굣길에 만나는 교사들의 옷차림은 아이들의 구설에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했던 것 같다. 어느 날 직접 목격하기 전까지는 들려오는 아이들의 말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었다.
새 옷을 입고 간 날은 새 옷임을 알아보고 아는 체를 했다. 특별한 날 선물 받은 가방을 들고 학교에 가면, 아이들은 이전에 들지 않았던 새것임을 알아챘고 겉으로 보이는 로고로 브랜드까지 알아보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명확히 제품명이 드러나는 가방에 아이들은 흘끗거리며 쑥덕이기도 했고, 대놓고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선생님, 가방 새로 사셨네요. 올~ 명품!"
말하는 것이 직업이다 보니 목을 보호하기 위해 스카프는 꽤 여러 개 갖고 있었고 수업시간에도 그것을 두르고 수업을 했다. 어느 날, 딸의 스카프를 두르고 갔다. 수업 중 아이들은 손짓을 하며 자기들끼리 소곤소곤 얘기하고 있었다. 이유를 물어 확인해 보니, 스카프의 문양으로 제품의 브랜드를 알게 된 것이었다. 무심한 척 수업을 진행하고 집에 돌아와서 딸에게 물었다. 아이들의 반응 때문에 나도 궁금했던 것이다.
"이거 니가 산 거야? 얼만데?"
딸은 피식 웃었다. 엄마가 알아보지 못하는, 색상과 문양으로 명품임이 은근히 드러나는 것을 고른 자신의 안목에 뿌듯해했다. 명품을 보는 눈은 나보다 아이들이 더 밝았던 것이었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내 안의 허영기가 아이들처럼 철없이 부풀어 올랐다. 아이들이 명품에 반응하는 것도 이런 기분을 알아서일까 싶어 재미있던 경험이었다.
고백하건대, 나는 명품을 잘 모른다. 편하면서도 세련된 것을 좋아하고, 신선하지만 파격적인 것은 피한다. 이런 내게 아이들의 명품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나를 명품에 눈을 뜨게 해 주었다. 이미 아이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던 한 교사를 향해서는 몸에 두른 것의 절반은 명품이라고 누군가가 얘기해 주었고,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숨겨진 명품 액세서리를 좋아하는 교사도 있다는 것을 아이들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교무실 책상에 명품 향수를 올려놓은 교사에게는 지날 때마다 그 향기가 난다고 굳이 제품명을 내세우며 아이들은 말했다. 나도 하나쯤 사서 책상 위에 올려두어야 하나 생각하게 만들었다.
신발을 사기 위해 한 달을 알바하는 아이들
고등학교에서는 좀 달랐다. 부천의 한 고등학교에 다닐 때, 수준별 학급을 맡은 적이 있었다. 각 교실에서 수업을 힘들게 하는 아이들 두세 명을 따로 빼서 새로 학급을 구성한 것이었다. 가르치는 것이 주가 아니라 아이들을 달래며 수업에 참여만 하도록 이끄는 것이 주였다.
평일에도 정상적인 수업이 불가능했지만, 주말이 지나면 아이들은 녹초가 되어 수업시간에 픽픽 쓰러졌다. 천천히 수업을 시작하며 왜 이렇게 피곤해하냐고 물으면 아이들은 지난 주말의 일을 신이 나서 말했다.
산발적으로 흩어지는 말들을 모으면, 토요일이 돌아오면 옷을 쫙 빼입고 미장원에 들러 머리도 손질하고 홍대로 간다는 것이었다. 홍대에서 밤새 클럽을 전전하다 일요일에 돌아오는 것이 주말의 코스라고 했다. 고등학교 1학년, 우리 나이로 17살 아이들이었다.
월요일은 그렇다 치고 평일엔 또 왜 그러냐고 물었다. 그 질문에도 역시 아이들은 서로 말하기 시작했다. 얘는 방과 후에 오토바이로 배달한다, 쟤는 편의점 알바를 한다, 누구는 주유소에서 또 다른 아이는 미용실에서 보조로 일한다, 등등이었다. 그 돈을 모아 모아 평소 사고 싶었던 신발도 사고 머리도 하고 옷도 산다고 하며, 한 달 일해서 산 신발이라며 자랑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러다 주말에 홍대 주변의 클럽에 갈 때면 그것들을 풀 장착하고 나선다고 했다. 주말을 위해 모든 날을 고되게 사는 것이었다.
너무 충격적이었다. 옆자리의 선생님께 이야기를 했더니, 여기 아이들의 절반 이상이 방과 후에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가정형편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유흥으로 쓰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야간 자율학습 감독으로 남은 날, 음식을 시키면 학교의 아이들이 배달 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어느 날은 미용실에서 만나기도 하고 어느 날은 주유소에서도 아이들을 만난다고 했다.
공부에 관심 없는 아이들에게 보이는 건 돈이 필요한 세상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위험도 감수하고 손님으로 오는 많은 사람들의 온갖 요구와 냉대도 참고 견딘다고 했다. 일이 힘들다고 말했고, 위험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힘들게 일을 해서 물건 하나를 내 손에 넣으면 그다음 목표가 또 생긴다고 했다. 이미 갖고 싶은 품목을 여러 개 생각해 둔 아이도 있었다.
신발에서 시계로, 시계에서 백으로, 그사이에 소소한 멋 내기를 위해 필요한 온갖 것들까지 모두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너무나도 솔직한 돈에 관한 아이들의 직설에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날은 수업 내내 돈에 관한 아이들의 생존 철학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니었다. 수줍게 명품을 알아보고 아는 척을 했던 중학교 아이들과는 또 다른, 고등학교 아이들의 세계였다.
아이들의 노동을 가지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또, 그렇게 어렵게 번 돈으로 주말을 즐기는 것을 책망할 수 없었다. 이른 나이에 스스로 돈을 벌고 이루고 싶은 것을 쟁취하고자 하는 치열한 삶을 아이들은 살고 있었다. 공부는 못해도, 때로 수업을 방해해도 그 아이들은 이미 세상을 살아가는 준비를 나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소확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에 나오는 말로 일상의 자잘한 것에서 느끼는 행복한 감정을 말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는 참고 참으며 열심히 산 자신에게 주는 확실한 선물로 바꿔서 사용한다. 그렇게 기분에 따른 소비가 '욜로(You Only Live Once)'와 만난 것은 아닐까. 나를 위해 값비싼 명품도 한두 개 정도는 선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소비를, 그 아이들은 즐기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10대였던 그 아이들은 지금은 20대 후반이 되었을 것이다. 일찍부터 명품을 알아봤던 중학생 꼬맹이들도 지금은 어엿한 대학생이 되었을 것이다. 그 아이들은 지금 '소확행'을 즐기고 있을까. '욜로'를 외치고 있을까. 또는 '파이어족(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이 되어 만족스러운 중년 이후의 삶을 계획하며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