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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Jul 30. 2020

행복을 부르는 말, “해브 어 나이스 데이”

<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민음사, 2015

시누이 가족은 십 년 전 호주로 이민을 떠났다. 이민을 위한 인터뷰 심사를 두 부부가 여러 차례 했고, 사전 답사로 두 번쯤 그곳에 가서 숙소와 살 집 등을 마련해 둔 뒤에 돌아와서 짐을 배로 부쳤다. 짐을 꾸리던 날, 남편과 나는 시누이 집으로 갔다. 커다란 이부자리가 조그만 박스에 폭신한 숨을 구기며 들어가는 모습을 신기하게 보았고, 온갖 가전과 잡다한 살림살이 등을 이민 가방에 테트리스 쌓듯 넣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넣고도 부족한 것들의 목록을 길게 적었고, 남겨진 사람들에게 부쳐달라는 당부까지 여러 번 하며 그 밤을 보냈다.


<한국이 싫어서>의 주인공 계나가 이민 가는 나라도 시누이 가족이 정착한 호주다. 혼자 떠나니 자잘하고 복잡하고 자질구레한 살림살이는 챙기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11시간을 날아 낯선 나라에 한 사람이 둥지를 튼다는 것은 결코 가벼울 수 없다. 그 이유가 '한국이 싫어서'라든가 '여기서는 더 못 살겠어서'라면 짐이 아니라 마음 만으로도 한 짐일 것 같다.


작가는 이 책을 출간하고 이듬해 <5년 만의 신혼여행>에서 <한국이 싫어서>가 작가 부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글을 썼다고 고백한다. 그런 사실 때문인지 작품은 이민 초반의 세밀한 묘사가 돋보인다. 셰어하우스에서 살아가는 모습이라든지, 유학원에서 처음 만난 친구와의 소소한 일들과 가난한 유학생과 이민자의 실상을 환상이 아닌 생활로 보여준다.


주인공 계나가 한국을 떠나는 구체적 이유가 나에게는 어떤지 질문을 던져 보았다. '한국에서는 경쟁력 없는 인간', '멸종해야 할 동물 같아', '그런 주제에 까다롭기'까지 하다고 말하며 계나는 한국을 떠난다. 생각해 보니 나도 딱히 경쟁력 충만하지는 않고, 멸종까지는 아니라도 언젠가 흔적 없이 사라질 것이고, 까다롭기로 말하면 지지 않을 자신도 있다.


내가 여기서는 못 살겠다고 생각하는 건......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 추위도 너무 잘 타고, 뭘 치열하게 목숨 걸고 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것도 개뿔 없고. 그런 주제에 까다롭기는 또 더럽게 까다로워요. 직장은 통근 거리가 중요하다느니, 사는 곳 주변에 문화시설이 많으면 좋겠다느니, 하는 일은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거면 좋겠다느니, 막 그런 걸 따져.(11)


다행인지 그녀가 직장을 다니며 경험했던 '지옥철' 대신, 30년 전의 나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통근버스를 타기 위해 이른 시간 버스가 서는 곳까지 헐떡거리며 뛰어다녔던 기억은 있다. 계나처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다. 몸이 부서질 것 같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만 인생이 피곤하다고는 느꼈었다. 피곤해도 견뎌내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한 세대가 차이가 나는 계나는 감정표현이 거침없다.


인간의 존엄성이고 뭐고 생존의 문제 앞에서는 다 장식품 같은 거라는 사실을 몸으로 알게 돼. 신도림에서 사당까지는 몸이 끼이다 못해 쇄골이 다 아플 지경이야. (16)


나와는 세대가 다른 계나는 존엄성이고 뭐고 다 장식품이라고 자조적으로 말하는 지경까지 와 버렸다. 이민 갈 수 있을 때 떠나야 한다는 말을 10년 전부터 들었다. 시누이 가족이 떠날 때에도 남편과 나는 모든 과정에 귀를 기울였다. 그럼에도 떠나지 못했고, 바로 작년까지도 거의 날마다 '헬조선'을 들으며 살았다.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나라에서 필요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소통할 수 있는 언어 문제도 해결될 수 없는 상황이라 듣기 싫은 '헬조선'을 들으며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올해 갑자기 우리나라가 꽤 좋은 나라가 되었다. 선진국보다 더 시스템 면에서 잘 갖춰진 나라.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나라. 첨단 방역 시스템을 갖춘 나라. 그러한 상황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나라. 모범적인 국가의 사례라고 세계 유수의 언론에서 찬사를 보냈고 덕분에 나라의 위상뿐만 아니라 나라에 속한 나의 위상도 올라간 것처럼 생각되었다. 귀가 따갑게 듣던 헬조선의 사례들은 까맣게 지워졌다.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국가를 바라보는 계나의 불만의 목소리는 계속된다. 지난 2002년 월드컵과 2018년 동계 올림픽에서 나라의 위상을 드러내는 인물들의 활약을 보며 나라의 영광이 나의 영광인 것처럼 생각했었다. 그런데, 국위선양을 바라보는 계나의 지적은 나를 때렸다. 우리나라는 대한민국 그 자체를 드러내는 구성원을 아낀다는 말. "사람 도리를 못하게 되면 나라가 나를 도와주는 게 아닌 내가 국가의 명예를 걱정해야 한다는" 말. 미처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그 말이 적합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대한민국은 나라 그 자체를, 그래서 자기의 영광을 드러낼 줄 아는 구성원을 아꼈지. 김연아라든가, 삼성전자라든가. 그리고 못난 사람에게는 주로 '나라 망신'이라는 딱지를 붙여 줬어. 내가 형편이 어려워서 사람 도리를 못하게 되면 나라가 나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내가 국가의 명예를 걱정해야 한다는 식이지.(170)


그래서였을까, 경기도에서 재난 지원금을 줄 때, 국가에서 재난지원금이 지급될 때, 마음이 벅찼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댓글에서 60 평생, 70 평생 나라에서 나를 생각해서 주는 돈은 처음 받아본다는 그 말이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그 한 번의 경험은 내가 나라 걱정을 하는 것이 아닌 나라가 내 걱정을 해 준다는, 보호받는 느낌을 몸과 마음으로 흠뻑 느끼게 해 주었던 것 같다.


행복도 돈과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 행복에도 '자산성 행복'과 '현금 흐름성 행복'이 있는 거야. 어떤 행복은 뭔가를 성취하는 데서 오는 거야. 그러면 그걸 성취했다는 기억이 계속 남아서 오랫동안 조금 행복하게 만들어 줘. 그게 자산성 행복이야.
어떤 사람은 그런 행복 자산의 이자가 되게 높아. 지명이가 그런 애야. '내가 난관을 뚫고 기자가 되었다.'는 기억에서 매일 행복감이 조금씩 흘러나와. 그래서 늦게까지 일하고 몸이 녹초가 되어도 남들보다 잘 버틸 수 있는 거야. 어떤 사람은 정반대지. 이런 사람들은 행복의 금리가 낮아서 행복 자산에서 이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아. 이런 사람은 현금 흐름성 행복을 많이 창출해야 돼. 그게 엘리야. 걔는 정말 순간순간을 살았지.(184-185)


명사들이 얘기하는 행복론을 가져오지 않아도 결국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며 살고 싶어 한다. 계나도 그렇다. 다행인 건, 그녀는 두 번째 한국을 떠나며 '한국이 싫어서'가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서' 떠난다고 말한다. 남자 친구의 극진한 구애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생각하는 행복의 가치는 다른 것에 있는 것 같다.


호주행 비행기 안에서 그녀는 행복에 대해 생각한다. '자산성 행복'과 '현금 흐름성 행복'. 계나와 비교할 상황은 되지 않으나 나는 난관을 뚫고 무언가를 성취한 기쁨, 그 뿌듯함을 조금씩 이자처럼 꺼내 쓸 수 있는 행복인 '자산성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인 것 같다. 그때그때의 본능이 시키는 대로, 행위의 결과로 얻어지는 '현금 흐름성 행복'을 만들며 살기에는 지나치게 두려움이 많다. 순간순간을 즐길 배포와 배짱도 없다.


나의 성향이 그럼에도 지금의 삶이 자산성 행복의 이자로 사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우리 아이들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아이들의 성향도 부모인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자산성 행복'을 취득하기에는 세상이 만만치 않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아이들도 계나만큼 절망적일까. 생존의 문제 앞에 존엄성 따위는 장식품 정도로 여기고 있을까.


나라는 많이 좋아지고 있는 듯 보여도 젊은이들은 여전히, 대놓고 소리 내서 외치지는 못하지만 '헬조선'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럽다. 계나처럼 어떤 결론에 이르고 있을까. 지금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수준의 행복 현금은 어느 정도일까. 우리 아이들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한 것이 생긴다.


나한테는 자산성 행복도 중요하고, 현금흐름성 행복도 중요해. 그런데 나는 한국에서 나한테 필요한 만큼 현금흐름성 행복을 창출하기가 어려웠어. 나도 본능적으로 알았던 거지. 나는 이 나라 사람들 평균 수준의 행복 현금흐름으로는 살기 어렵다. 매일 한 끼만 먹고살라는 거나 마찬가지다, 하는 걸.(185)


낙관론으로 이야기를 끝내고 싶지만 어려울 것 같다. 삶은 결국 행복의 문제다.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 것이라면, '자산성 행복'을 위해 분투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오늘 하루 자유를 줘야 할까. 행복해질 권리를 얘기해야 할까. 계나처럼 행복한 기운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해브 어 나이스 데이"를 외쳐볼까. 우리 엄마가 왜 저러지? 오히려 엄마를 걱정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염려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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