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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하 Sep 25. 2022

정말로 좋아하는 일로 먹고살려면

내 안의 두려움과 마주해야 한다

 좋아하는 일로 먹고살겠다는 말을, 나는 정말로 책임질 수 있는가?

결실의 계절인 가을의 문턱에 서서, 나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나 자신과 마주해야만 했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인생은 B와 D사이의  C이다.'라는 재치 있는 명언을 남겼다.

인생은 birth(탄생)과 death(죽음) 사이의 choice(선택)이라는 것이다. 자기가 한 선택의 총합이 자신의 인생이며,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은 선택을 통해 인생을 바꿔나갈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선택'이란 것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선택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타고난 기질이 반영되기도 하고 어릴 때의 환경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 또 의미 있고 중요한 타인인 가족의 욕망이 반영되기도 하고, 삶에서 만난 멘토에게 영향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문제건 간에 결국 선택의 접시 위에 올려지는 가치는 둘 중 하나이다. 저울의 한쪽엔 '양', 그리고 다른 한쪽엔 '질'이 있다. 겨울 코트 하나를 살 때도 싼 거 여러 벌을 살 지, 좋은 거 한 벌을 살지 결정해야 한다. 인간관계를 맺을 때도 얕은 깊이로 두루 사귈 것인지, 소수의 사람과 깊이 있게 만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인생의 '양'이란 타인에게 객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외적인 요소로 월급, 아파트 평수, 자녀의 학교 등수 같은 것들이다. 인생의 '질'이란 성취감, 친밀감, 행복감 등 오로지 자기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주관적인 요소들이다.


 그런 측면에서 20대의 나는 양을 선택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남들에게 자랑이 될 만한 직업을 갖는 일, 잘 살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행위들, 적어도 나는 실패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부단한 노력들. 하지만 나는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인생은 보여주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주변 사람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교직을 그만두었다. 가족들은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았기에 비밀로 했다. 나는 더 이상 부모님이나 언니들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어린아이가 아니니까, 그 선택의 결과 또한 모두 내가 감당할 거니까, 이건 내 인생이니까, 아무도 나를 말릴 수는 없었다. 퇴사는 온전히 나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었으며, 오로지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선택이었다.


 물론 그런 큰 일을 저질러버리고 한동안은 두려움에 벌벌 떨기도 했다. 이 선택을 나중에 후회하면 어쩌지? 소설가가 되겠다고 교직을 때려치워놓고, 꿈 이루지 못하고 변변한 직업도 없이 살게 되면 어쩌지? 가족과 지인들에게 무시당하며 평생 외로움 속에 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부정적인 상상의 끝엔 언제나 가족 하나 없이 행려병자가 되어 거리에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내가 보였다;

 하지만 그런 걱정잠시뿐이었다. 매일 아침, 러시아워를 뚫고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현실 속의 나는 하루 종일 웃음이 났고, 24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사용하는 기쁨을 만끽하게 되었다. 그제야 나는 온전히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기계 시스템 속 썩어가는 부품이 아닌,  호흡하고, 생각하고, 마음이 끌리는 쪽으로 움직이는 진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홀가분한 기분으로 조금 게으르지만 내적 충만감으로 가득 찬 하루하루를 보냈다. 국내 여행을 두루 다녔고, 내 이름으로 된 책 출간했다. 남해 한 달 살기를 하며 생애 두 번째 소설을 완성했고, 평생소원이었던 가족 여행도 다녀왔다. 어릴 때부터 배우고 싶었던 피아노도 배우기 시작했고, 위스키에 새로운 취미가 붙으면서는 '북바 사장님'이라는 새로운 꿈도 생겨났다. 내 인생은 모든 가능성으로 열려있었고 나는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작년의 내 삶을 연말정산해보자면 질적인 측면에서는 내 인생 최대치였다. 지인을 만날 때마다 "나 요즘 정말 행복해"는 말을 수시로 하고 다녔다. 태어나서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본 적이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양적인 측면에서는 거의 제로나 다름없었다. 퇴직금을 까먹으며 생활하다 보니 오히려 마이너스였다. 돈 없이는 언제까지 이런 삶을 지속할 수 없었다. 퇴직 후 6개월 정도 달콤한 자유를 누린 나는 생활비 충당을 위해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글 첨삭 레슨, 과외, 수익형 블로그, 레스토랑 서빙, 와인 판매, 펫시터, 청소 도우미 등등...'직업'이라는 투철한 사명감 없이 몸으로 시간을 때우고 소소한 돈을 버는 그런 일들이었다. 조금 고되긴 했지만 마음은 정말 편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런 돈벌이를 하려고 내가 퇴사를 한건 아니었는데, 돈을 벌다 보니 오히려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없어져버린 것이다.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글을 써서 돈을 버는 것이다. 하지만 주 1회씩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며 이런저런 콘텐츠를 만들어 봐도 아무데서도 출간 제안이 들어오지 않았다. 당연히 브런치 북 공모전도 매번 떨어졌다. 게다가 아직 소설가로 등단 하지 못했으니 소설을 써서 돈을 버는 길은 너무나도 멀리 있었다.


 그제야 나는 슬슬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글을 써서 돈을 벌 수 있을까? 이렇게 생계활동을 하느라 글 쓰는 일에 소홀할 거면 그냥 학교를 계속 다니며 남는 시간에 글을 쓰는 게 여러모로 좋았던 게 아닐까?

 하지만 이미 한 퇴직을 번복할 수 없었고, 가능하다고 해도 그것이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나 스스로가 너무나 잘 알았다. 그런 생각에 다다르자 나는 정신이 퍼뜩 났다. 막말로 내가 이러려고 퇴사했나? 결코 아니었다. 나는 절대 내 선택을 후회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본질로 돌아가야 했다. 돈에 대한 걱정은 조금 줄이고 생활비를 아껴 쓰면서 '글쓰기'본격적으로 뛰어들어야 했다. 적어도 앞으로 1년 동안은 나에게 글 쓸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최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아르바이트 하나만을 남겨두고 자잘한 부업을 다 끊어버렸다. '소설'이라는 본업에 집중하기 위해 브런치에도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소설가가 되지 않는 이상 모든 것은 다 무의미했다.

 



 물론 요즘에도 글이 잘 안 써질 때면 알바천국이나 훈장마을 같은 곳에 들어가 이런저런 알바를 검색한다. 돈 쓸 곳은 많고, 글은 잘 안 써지고, 등단은 기약이 없고, 그럴 때면 돈이라도 버는 게 낫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내 안의 어린아이가 불안에 떨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을 해도, 좋아하는 일 언제나 하고 싶은 건 아니다. 게다가 그 좋아하는 일을 '잘' 해내려고 욕심을 내다보면 문득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하루 바삐 무언가가 되어야 하니까, 그런데 현재의 나는 그렇지 못하니까, 그 괴리감 때문에 불안이 몰려오는 것이다. 그런 순간이 올 때면 오히려 정신을 더욱 바짝 차려야 한다. 불안 앞에서 도망치면  모든 게 헛수고가 된다. 하기 싫은 일을 하며 평생 월급의 노예로 살고 싶지 않다면, 하고 싶은 일을 더더욱 치열하게 해야 한다.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런 실패도 없지만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채로 내 삶을 흘려보내기는 싫. 그래서 나는 내 안의 두려움과 맞서기로 했다.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일 먹고살고 싶기 때문이다.   


***

안녕하세요. 정말로 오랜만에 '가하'입니다. 그간 잘 지내셨나요? 요즘 날씨가 정말 가을가을 합니다.  

제 필명 '가하'의 의미는 사실 '가을 하늘'의 줄임말이거든요. 가을이 오니 더 늦기 전에 꼭 글을 하나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가끔씩 제 글을 기다리고 있다는 독자님의 댓글을 받을 때마다 여러 감정에 휩싸였습니다. 어떤 고마운 독자님은 저를 검색해 블로그에 들어와 안부를 물어봐 주시기도 했네요.

아무것도 아닌 저를 기다려 주시고 독촉을 해주신 덕분에 200일 만에 글을 씁니다.

안 쓰려고 작정했다기보다는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 생업을 챙기고 소설 공부를 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네요.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또 많은 고민과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생각들을 앞으로는 자주 글로 올려보겠습니다. 소설이 막힐 때면 에세이라도 써야지 뭔가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앞으로는 전처럼 매주 목요일 저녁에 글 한 편씩 발행하려고 합니다.

그동안처럼 지켜봐 주시면 너무나 감사하겠습니다.

편안한 일요일 저녁 보내세요.


오늘도 당신만의 하루를 사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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