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mf Jul 06. 2020

밥 한 숟갈, 비스킷 한 조각




오늘 아침 식탁에서 나는 엄마에게 또 똑같은 잔소리를 듣는다.

"너는 어떻게 맨날 한 숟갈씩 이렇게 남기니. 이거 진짜 안 좋은 습관이야. 좀 고쳐."

.

.

.

언제부터인가 나는 음식을 끝까지 먹지 않는다. 꼭 밥 한 숟갈, 케이크 한 입, 과일 한 조각을 남긴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렇게 무언가를 항상 남기는 행동이 음식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항상 끝을 내는 것을 주저했다.



나는 미술 입시를 했다. 어느 날, 나는 완성이라고 생각한 그림을 선생님께 봐달라고 했다. 선생님은 내 그림을 보시더니  " 그림에는 끝이 없어. 밀도는 올리면 한없이 올라가는 게 그림이야. 더 그려야 해. "라고 하셨고, 나는 그 한 장의 그림을 완성하는 데 일주일이 걸렸다. 그 일주일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은 그 '끝'이라는 것의 주관성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완성된 그림이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미완의 그림이었다는 것. 나는 그 사실이 너무 힘들었다. 더 이상 뭐를 어떻게 더 그려야 할지 모르겠는데 선생님은 계속 나에게 붓을 쥐어주셨다. 그때 느꼈던 무력감, 두려움은 내 손을 더 경직시켰다. 물론, 정해진 시간 안에 최대한 완성도 있는 그림을 그려야 했던 입시미술 특성상, 선생님은 내가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기를 바라셨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끝'의 주관성은 미술 입시 내내 나를 힘들게 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끝을 내고 완성을 말하는 것에 있어서 머뭇거리게 된 것은. 내가 생각한 완성이 타인에게는 중간 혹은 시작일 수도 있다는 생각, 마무리를 지었음에도 마무리가 안된 것만 같고 끝을 냈음에도 끝이 나지 않았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물론, 사람은 상대적이기에 그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나의 기준과 타인의 기준의 차이가 너무 클 때 느껴지는 무력감은 나를 작고 초라하게 만든다. 특히 그 기준의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감조차 안 올 때는 그 무력감이 두려움이 되어 나를 덮친다. 



아마 내가 밥 한 숟갈, 비스킷 한 조각을 남기는 것은 누가 봐도 끝이 아닌 게 확실하기 때문에, 누가 봐도 먹어야 할 한 입이 남아있기에, 그래서 내가 내 입으로 끝을 말하지 않아도 되기에 남기는 것은 아닐까.













작가의 이전글 마음의 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