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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mf Dec 29. 2020

영화 '벌새'를 보고





 얼마 전, 영화 <벌새>를 봤다. 이 영화는 성수대교가 무너졌던 1994년 전후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은희(배우 박지후)는 방앗간을 하는 부모님과 아버지에 의해 좋은 성적을 강요받는 오빠, 방황하는 언니를 둔 중학생 소녀이다. 은희는 그녀를 둘러싼 세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처음'에 상처 받는다. 변하지 않을 것만 같던 설레는 사랑이 변해버렸고, 항상 좋을 것만 같았던 절친과는 다툼이 생겼으며 계속 건강할 것만 같았던 자신의 몸에 이상이 나타나 두려움을 느낀다. 그렇게 은희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감각들이 아프고 두렵고 무섭기만 했다. 



 은희는 그동안 자신이 아플 때 보였던 아버지의 걱정과 어머니가 해준 따뜻한 감자전이라는 사랑의 실마리를 붙잡고 겨우 자신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었다.  당시 각자 자신의 삶을 살기에도 바빴던 가족들의 사랑은 은희에게 턱없이 부족했고, 은희는 그 부족한 사랑을 남자친구와 친구에게 기대했다. 그렇게 은희는 자신을 채우는 사랑의 부족함을 여기저기에서 메꾸려고 했다. 그래서 자꾸만 이랬다 저랬다 하는 남자친구를 용서해주었으며 자신을 좋아하는 다른 여자애에게 자신의 마음을 선뜻 내어주었고, 믿었던 친구의 배신이 그렇게 야속하고 아팠다. 



 그러던 중, 은희는 한자 선생님 영지(배우 김새벽)을 만난다. 대학생 영지는 무언가 삶에 있어 많은 의문점을 던지는, 그렇지만 그 의문에 대해서 확고한 결론을 내리려고는 하지는 않는 수많은 답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 때문일까. 영지는 은희에게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위로를 건넨다. 그러나 은희에게 그 미지근한 위로는 너무도 포근하고 적당했고 그렇게 은희는 영지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다. 



 하지만 성수대교가 무너지며 수많은 답에 둘러싸여 있던 영지는 그 답을 은희에게 다 남겨두고 떠난다. 그렇게 은희는 영지가 건넨 미지근한 위로와 수많은 답들을 끌어안은 채 다시 세상을 마주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은희이고 영지이지 않을까. 혹은 은희였다가 영지가 되고, 영지였다가 은희가 되고를 반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삶을 살아가며 많은 아픔과 걱정, 두려움을 겪다가도 주위에서 건네는 이따금의 사랑과 위로를 먹고 다시 겨우 살아가는 은희, 그리고 이를 반복하면서 주위에서가 아닌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들여다보고 사랑하는 법을 하나씩 알아가던 단단한 영지. 



어쩌면 우리는 모두 은희이고 영지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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