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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mf Feb 01. 2021

'열심히'는?

나는 이번에 처음으로 학교 조교로 6개월 동안 일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실수가 잦았고, 그런 나를 끊임없이 자책하는 동시에 채찍질하며 더 열심히 하려고 애썼다.


조교일이 다 끝나갈 무렵, 같이 일하는 언니와 라멘을 먹게 되었다. 따뜻했던 라멘이 다 식어 바닥을 보일 때 즈음 언니는 "이번에 일 엄청 열심히 했죠?"라고 물었다. 그 순간 나는 나 스스로 고군분투하며 애쓴 모습이 다른 사람의 눈에도 보였겠구나 실감했다.  그래서 멋쩍어하며 "네"라고 말했다.


언니는 살짝 미소를 짓고는 "너무 열심히 무리해서 하지 마요."라고 한마디 건넸다. 나는 머리가 띵했다. 뭐든지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하는 게 좋은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을 깨뜨리는 한마디였다.


열심히 하고 무리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 자체가 이 사회에서 어쩌면 약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만, 간혹 몇몇의 사람들은 그런 점을 이용해 자신에게 할당된 몫의 일을 떠넘기고는 하니까.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를 들볶고 무리시키면 무엇보다 어느새 나 자신이 지쳐버리기 때문. 얼마 전에 어떤 글을 읽었는데, 직장에서 자아실현을 이루려고 하고, 큰 목표를 지닌 사람들이 돈 벌려고 다니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더 빨리 퇴사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물론, 회사를 오래 다니는 게 일찍 그만두는 것보다 낫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일에서 자아실현을 하고자 하는 반면 안정된 직장을 기본으로 취미나 다른 활동에서 자아실현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것은 가치관에 따라 달라진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일에서도, 취미에서도 성취감과 행복감 모두를 느낄 수 있는 것이겠지.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했다. 물론, 언니의 말도 이해가 갔지만 나는 나만의 결론을 내렸다. "그래도, 열심히 하자."  어쩌면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해 고군분투하는 것일지도. 그래서 오히려 나중에 덜 노력해도 괜찮으려면 지금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  


나의 노력은 설사 다른 사람들의 만만한 먹잇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그 먹잇감이 단단하다면? 날카롭다면? 먹이를 무는 이의 이빨이 나가고 아파서 절대 삼키지 못할 것이다. 언니의 방법이 자신을 단단한 껍질로 감싸는 것이라면, 나는 내 속에 있는 가시를 드러내는 것. 어떤 게 더 나은 방법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건 내 안에 무기가 될 수 있는 가시가 날카롭고 커야겠지.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가시는 다소 무르고 작다. 나는 이걸 계속해서 뾰족하게 다듬어야겠지. 이 글을 쓰면서 새삼 슬퍼진다. 세상이 모두 자신을 방어하려는 방법들을 끊임없이 고안해야 한다니. 단단한 껍질로 자신을 보호하는 소라게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사자처럼, 자신의 몸의 색깔을 바꿔버리는 카멜레온처럼. 동물의 왕국을 보며 신기하고 재밌어했던 나의 웃음이 슬퍼진다.



결국 내가 신기하고 재밌어했던 모습이 나의 모습, 아니 우리 모두의 모습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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