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을 담기 위해 황급히 찍은 사진.
사진을 찍느라 그 순간 속이 아닌 바깥에 머물러버릴 수밖에 없던 나다.
어쩌면 내 사진첩에는 욕심 가득한 사진만이 있는 것이 아닐까?
얼마 전,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봤는데, 정말 기억에 남았던 대사가 있다.
월터: 사진은 언제 찍어요? 왜 안 찍어요?
숀: 어떤 때는 안 찍어. 아름다운 순간이 오면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물고 싶지.
월터: 순간에 머문다고요?
숀: 그래 바로 저기.. 그리고 여기.
이 오고 가는 대사들 속 나의 사진첩 속 사진들은 순간을 담아낸 귀중한 사진인 동시에 정작 그 순간에 내가 없는 사진들이 되어버렸다.
얼마 전, 강릉여행에서 갔던 바다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는 파도가 밀려오고 쓸려나가는 그 순간 속에서 가장 예쁜 파도의 부서짐을 담기 위해 한 10장 정도의 사진을 계속 찍었다. 지금 그 바다를 떠올리라고 해보면 나는 카메라 화면 속 파도의 부서짐을 기억할 뿐이다. 실제의 파도가 아닌 실제의 파도를 담아낸 카메라 속의 파도를.
물론, 사진은 있는 그대로를 반영한다. 하지만, 카메라가 담을 수 있는 시야는 한정적이다. 카메라는 결코 그 순간, 나를 둘러싼 모든 느낌들을 다 담아낼 수 없다. 그 순간의 분위기는 오롯이 나 자신이 느낄 수 있다.
흔히 우리들은 좋은 사진을 말할 때, 평소에 보기 힘든 찰나의 순간을 찍었을 때나 그 순간 속 분위기가 잘 느껴지는 사진들을 꼽는다.
하지만, 그 순간의 순간이 사진으로 인해 영속성을 가졌을 때, 그 순간의 의미는 지속될까?
과연 사진 속 분위기가 실제 그 순간의 분위기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롤랑 바르트는 "사진이 나에게 일으키는 효과는 사라진 것 (시간에 의해, 거리에 의해)을 되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참으로 존재했음을 증언하는 데 있다. (출처 : 롤랑 바르트, <카메라 루시다> , p.84)
그렇다. 사진은 결코 그 순간을 되돌려줄 수는 없다. 그렇기에, 사진을 찍고 싶을 만큼, 영원히 남기고 싶을 만한 순간을 카메라 렌즈가 아닌, 내 눈, 내 몸으로 충분히 느끼는 것 역시 중요하다.
그렇게, 그 순간을 충분히 내 몸으로 감싸 안았을 때, 나중에 보는 그때의 사진이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사진 찍기에 급급해 그 순간을 놓쳐버린다면, 후에 그 사진을 본다 한들, 무엇이 다가올까?
앞으로 나는 욕심의 사진이 아닌, 오롯한 사진을 찍고 싶다. 아니, 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