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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이 Aug 08. 2024

지금까지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하셨슈

병약했던 딸이 자립하면서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까지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하셨슈"  2021년 11월 11일 둘째 딸 서영으로부터 받은 카톡 메시지이다.


서영은 2021년 10월 1일 간호조무사로 피부과에 취업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4년이 지나서 이제 자신의 일을 찾아서 취업했다. ''지금까지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하셨슈"  이 말로 자신의 일을 찾았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서영이 자신의 길을 찾아가기를 기다렸다. 짧게는 4년, 길게는 24년을 기다렸는데 기다린다는 게 쉽지 않았다. 결혼한 지 26년이 되었는데 부모 역할이 어렵다고 늘 생각해 왔다. 어려운 가운데 그나마 잘한 게  있다면... 서영의 삶의 과정을 기다려 주려고 노력해 왔던 게 아닌가 싶다. 여전히 부모 되기는 어렵지만..... ㅋ


특성화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여러 곳에서 아르바이트도 했다. 졸업하면서 산업단지 관리공사에서 3~4개월 일했고, 그 이후에 농협에서 3개월, 성형외과, 메가박스, 인천공항 면세점, 동물병원, 네일 아트, 쿠팡 물류창고 등에서 다양한 직업을 경험했다.


아르바이트만 한 것은 아니었다. 자격증도 땄다. 네일 아트는 배우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 배우면서 자격증도 준비를 해서 따도록 권유했고 이를 수용하였다. 학원에 다녀서 그런지 네일아트 자격증을 한 번에 합격했다. 컴퓨터활용능력 2급도 취득했다. 컴활은 내가 권유해서 학원을 다셨고, 필기·실기를 한 번에 합격했다. 일도 하고, 자격증도 취득하고, 놀기도 하면서 이렇게 4년을 보냈다.


작년 8월경 물류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마친 후에 함께 식사하러 가는데, 나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돈이 많이 들지만 배우 싶은 게 있다면서 간호조무학원을 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흔쾌히 동의했고, 좋은 생각이라고 칭찬했다.


나는 가끔 평생직장은 없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서 평생직업은 가질 수 있는데 그 방법은 기술을 가지면 된다고 했다. 도배사, 용접공, 간호조무사 등이 되는 것이 기술을 갖는 한 방법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간호학원을 동록 했고, 이론과 실습을 마치고, 시험에 합격했다. 87점을 받고 고득점을 받았다며 스스로 뿌듯해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합격자 발표하고 다음날부터 취직하여 다니고 있다. 오늘로 한 달 하고, 12일째 다니고 있다. 처음에는 힘들다고 했는데, 적응했는지 요즘은 힘들다는 말이 없다.


나의 자녀 양육 1차 목표는 부모 등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생각과 능력을 갖도록 하는 것이었다. 현재까지는 1차 목표는 달성한 듯 보인다. 지금까지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하셨다는 딸의 메시지는 그동안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줘서 감사하고, 앞으로는 내 힘으로 살겠다는 선포로 해석된다. 내가 이런 목표를 갖게 된 이유가 있다.


서영이는 첫돌이 갓 지났을 때 많이 아팠다. 랑게르한스조지구증식증이라는 병을 앓았다. 생후 13개월 정도 지난 7월 초에 인천의 왕산해수욕장에 가족들이 여행을 갔다. 모래사장 위에 깔아놓은 깔판 위에 있던 서영이가 힘도 없고, 왼쪽 눈동자도 이상하고 튀어나온 거 같다고 아내가 말했다. 나는 구분이 되지 않았지만, 아이가 힘도 없고 하니 병원에 가 보자고 했다. 인천의 길병원으로 갔는데, 서울대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딸의 눈은 하루가 다르게 앞으로 나오는 게 육안으로 알 수 있었다. 나와 아내는 너무도 걱정이 됐다. 바로 다음날 서울대병원에 신경외과로 갔다. 병원의 간호사는 예약이 안되어 있어 진료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예약하면 진료를 받는데 몇 개월이 소요된다고 했다. 앞이 막막했다. 간호사에게 서영의 눈을 보여 주며, 하루가 다르게 눈이 튀어나오는데 몇 개월을 어떻게 기다리냐며 애원했다. 그랬더니 예약자들 진료가 모두 끝나면 의사 선생님 만날 수 있게 해 준다고 했다. 그렇게 간신히 의사 진료받았다. 바로 입원할 수 없으니 응급실 가서 기다리라고 해서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낸 다음 입원 할 수 있었다.


입원 후에는 검사와 수술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수술은 눈 뒤쪽 머리를 열어 종양을 제거하는 난이도 높은 과정이었다. 눈 뒤쪽에 시신경 등 굉장히 예민한 부위여서 수술로는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다. 그래서 약물...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한 달 정도 입원 치료를 했다. 입원해 있는 동안 늘 밝고 귀여웠기 때문에 간호사 등 병원에서 인기 짱이었다. 5년간 인천에서 서울대병원을 오가며 약물 치료를 받았다. 머리가 다 빠져서 민둥머리가 됐다. 독한 약이었지만, 약도 잘 먹고, 주사도 잘 맞고, 늘 밝고 귀여웠던 서영이는 긴 시간을 잘 이겨냈다. 서영이가 제일 힘들었지만, 아내도 고생 많았다. 어머니께서 서영이는 엄마(아내)의 사랑으로 키웠다고 말씀하실 정도였다. 감사하게도 재발되지 않았다.


그 이후에 심장병 때문에 수술을 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다. 지금도 건강 유지를 위해 한약을 계속 먹고 있다. 이렇다 보니 자립할 수 있는 것 만도 나에겐 큰 목표였다.


1차 목표를 이룬 듯하다. 어제 서영에게서 온 카톡을 다시 본다.

다시 봐도 뿌듯하다.


나는 서영에게 답을 보냈다.


지금까지 잘 견디며 자라준 서영! 쌩유^




(2021. 11월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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