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침잠(沈潛)의 시간

웹소설도 예술작품이다. 인이 박히게 써라.

by 혜지

모든 전사 중 두 가지 가장 강력한 전사는 "인내""시간"이다.

- 레프 톨스토이


***


웹소설이 가벼운 스낵컬처의 성격을 갖고 있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웹소설에 대해서는 예술 작품이라고 보는 경우가 많지 않다.


하지만 웹소설도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새로운 캐릭터들을 만들어내는 ‘창작‘의 영역이다. 고로, 웹소설도 ’ 침잠(沈潛)’의 시간이 필요하다. 침잠, 그 뜻은 ’ 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하게, 마음을 가라앉혀서, 깊이 생각하거나 몰입함.‘이다.


물론, 잘 나가는 웹소설 작가들이 토로하는 마감의 고통은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마감 때문에 몇 날 며칠을 못 나왔다더라, 마감 때문에 잠을 하루에 3시간만 자더라, 등등.


하지만 웹소설 작가에게 ‘침잠‘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은 없다.


사실 지금까지 침잠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 혹은 타인의 삶을 연기하는 배우 등, 형이상학적이고 마음을 다루는 예술 작품에서 주로 쓰는 단어였다.


특히 침잠의 시간은 웹소설을 준비하는 ‘예비 작가’들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다. 침잠이 없으면 웹소설의 깊이와 구성이 매우 얕다.


특히 최근에는 많은 사람들이 웹소설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웹소설을 쓰는 만큼, 웹소설 작가도 탄탄한 세계관 구축과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들어야 하는 깊이감이 있어야 한다.


내 경우에는 침잠의 시간이 3년이었다.


3년 동안, 사람도 최소한으로 만나고, 3개월 동안 밖에 나가지도 않았다. 완전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다. 그리고 침잠의 시간이 끝났을 그 당시에는 엄청나게 후회했다.


내가 도대체 무슨 영광을 얻자고 이랬지?

내가 뭘 어떻게 잘 살겠다고 이렇게 가라앉았지?


서른 중반이 된 나는 그 시간을 왜 그렇게 허탈하고 허무하게 보냈을까 하는 후회 말이다. 가장 빛나고, 가장 활기차게 보내야 할 시간을 나는 우물 안, 진흙에 처박혀서 숨죽여 살았다.


근데, 대본을 배우면서 그 시간이 빛으로 돌아왔다. 꾸밈이라고는 없었던 밋밋한 글을 생기 넘치는 예쁜 글로 쓸 수 있었고, 타인의 평가를 좀 더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으며, 하나의 사건을 두고 다각도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처음으로 '글을 잘 쓴다.' '대사를 참 잘 쓴다.'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를 들었을 때의 희열이란. 아마 그 또한 나 홀로 숨죽이고 버텨내며 계속 글을 쓰고, 또 쓰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시간이 있었기에 그만큼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겠지.


만약 그 시간이 없었더라면 난 여전히 깊이감 없는, 설렁설렁한 글을 썼을 것이다. 사건과 캐릭터 또한 한없이 가벼웠을 것이고.

그래서 오랫동안 웹소설을 쓰려면, 오랫동안 작가를 하고 싶다면 ‘침잠’의 시간은 꼭 필요하다.


다만, 조심해야 할 건 그 시간이 너무 길어서 어둠에 잡아먹히지 않아야 한다. 적어도 '나'를 잃지 않는 선에서 침잠해야 한다.

침잠하더라도, 인풋은 있어야 한다. 그게 새로운 공부든, 바깥공기든, 운동이든 말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웹소설이 발목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