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서 세계 속으로' 9월 <대성당>(카버, 문학동네) 모임 후기
이번에는 미국의 서부 소도시로 떠났습니다.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시애틀처럼 큰 도시가 많은데 왜 소도시냐고요. 이번에 다루는 《대성당》을 쓴 레이먼드 카버가 생애 대부분을 보낸 곳이 야키마, 포트앤젤레스, 쿠퍼티노 등이기 때문입니다. 약국 배달원, 제재소 직원, 병원 수위 등 여러 일을 한 경험을 토대로 카버는 블루칼라 계층을 상세히 묘사한 작품을 남겼습니다. 열두 개 단편이 담긴 《대성당》 중 우리는 <칸막이 객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신경써서>, <대성당> 네 편을 읽고 모였습니다. 그동안 긴 호흡으로 책 소감을 나누던 회원분들은 이날 따라 대부분 짧고 간결하게 소감을 밝혔습니다. 진행자의 질문 후에도 침묵이 한참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카버의 단편에서 어떤 문장을 만났기에 우리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을까요.
먼저 <칸막이 객실> 주인공 마이어스의 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8년 전 헤어진 아들을 만나러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행 기차를 탄 마이어스는 화장실에 다녀왔다가 외투에 넣어 놓은 아들에게 줄 시계를 잃어버린 후 “아이가 보고 싶지 않은 게 아닌지”(p.81) 자문합니다. 이 장면에 회원분들은 “오랜 단절을 잇는 도구인 시계를 도둑맞았기에” “시계 도난 사건으로 원래 내키지 않던 아들과 만남을 정당화했기에” 그의 마음이 변했다고 바라보았습니다. 결국 마이어스는 역에 내리지 않았고 그가 짐을 둔 채 잠시 객실에서 빠져나오지만, 얼마 후 그 객실은 분리되어 다른 방향으로 떠나버립니다. 회원분들은 객실로 돌아가지 못한 마이어스가 다른 객실에서 잠에 깊이 빠져든 이유를 “이전의 단절된 관계로 돌아감에 안도해서” “칸막이 객실이라는 공간에 심리적으로 고립된 마이어스가 또 다른 고독으로 빠져들어서” “아버지로서 역할을 해야 하는 부담감에서 벗어서” “드러날 뻔한 갈등을 다시 덮어서” 등으로 추측했습니다.
스무 장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이야기를 서로 다르게 바라보는 것은 비슷한 일상처럼 보여도 어느 순간을 대하는 감정과 이에 반응하는 방식이 각자 달라서 아닐까요.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도 <대성당> 마지막 대사처럼 “정말 뭔가가 있는”(p.311) 것이 삶이기에, 세밀하고 촘촘한 정물화 같은 카버의 단편을 우리는 천천히 음미하듯 헤아렸습니다.
네 편 중 회원이 꼽은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입니다. 교통사고로 생일을 맞이한 아들을 떠나보낸 비극 앞에서 집으로 걸려온 의문스러운 전화. 수화기 속 목소리가 생일 축하 케이크를 만든 빵집 주인의 것임을 알게 된 부부가 찾아간 빵집. 그곳에서 그들이 만난 “별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 것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 회원의 이야기를 옮겨봅니다.
부부를 만나기 전까지 빵집 주인은 빵을 만들고 파는 것에만 집중하며 살았어요. 케이크를 기계적으로 만들었을 뿐, 케이크 앞에서 촛불을 부는 자식,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는 친구들, 그 장면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 등, 그 안에 숨은 의미를 짐작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부부의 사연을 듣고 그가 “이제는 예전의 내가 아니라고” 말한 것은 앞으로 자신이 만드는 케이크에 따뜻함이 있으리라는 다짐과 같았어요. 빵집 주인이 갓 구운 계피롤빵을 부부에게 건네는 장면에서 저는 큰 위로를 받았어요. 빵집에 풍겨 나오는 따뜻하고 달콤한 온기로 나와 타인이 이어지고, 부부와 빵집 주인의 대화에서 삶과 죽음이 함께 있었어요. 반복되고 단조로워 보이는 일상이지만 그 안에는 한 사람이 거듭나는, ‘자기인식’의 순간도 있음을 알게 되었어요.
《대성당》에 수록된 단편 제목이기도 한 ‘신경 써서(careful)’라는 단어는 여러 작품에 나옵니다. 모임에서 읽은 네 작품의 등장인물을 ‘신경 쓰는’ 혹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일상의 단면을 신경 써서 포착하려고 이번 모임은 어느 때보다 신중한 분위기였습니다. 카버에게 세상은 신경 써서 살만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고 스무 살 이른 나이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면서 알코올 중독에 빠지고 두 번 파산하는 등 그에게 일상은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술을 끊으면서 카버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는 작가로서 안정된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1983년 펴낸 《대성당》에서 카버는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삶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흘러가는 어느 순간이 모인 그림이라고. <대성당>에서 앞을 보지 못하는 로버트와 함께 손을 맞대고 대성당을 그리던 어느 순간에 ‘내’가 그동안 신경 쓰지 못한 것을 갑자기 알아차리듯이 말입니다. 읽고서 세계 속으로 4기에는 ‘어느 순간’을 책에서 만나게 될까요. 우리는 10월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알제리 알제로 떠납니다.
※ 본 글은 이문일공칠 블로그(https://blog.naver.com/imun107_hufs)에 게재되었습니다.
※ 읽어서 세계 속으로 모임은 한국외대 서울시캠퍼스타운사업의 지원으로 운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