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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혼자들

<혼자라는 말>(백진주, 2021) - 독해독 #5

'혼자'라는 말은 작가에게 다른 사람과 어울리거나 함께 있지 않으려는 의미가 아니다.
타인과 잠시 멀어짐을 택하여 "함께 삶을 나눌 여유"(p.15)를 찾으려는 홀로이다.
타인을 멀리하는 혼자가 아니라 타인을 맞이하는 혼자이다.

혼자이기에 어울리고 함께하고 가까워진 것을 작가는 말한다.

다낭의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과 친구보다 더 편히 함께 보낸 한나절
취준생 시절 혼자 여행 온 이들이 모인 저녁 식사 중 누군가 건넨 몇 마디 말로 얻은 위로
"Sin Prisa, Sin Pausa(서두르지도 멈추지도 말고)"라는 스페인어 문장의 스탬프를 찍은 그가 남긴 선명함

셔터를 누르는 순간의 진심이 담긴, 정성 어린 사진
차가운 바람을 홀로 헤쳐 찾은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 아지트 책방
평소 맥주 한 병이 어렵지만 혼술을 하며 그 장소를 추천한 친구를 기억하는 일
여럿이 간 장소를 따로 다시 찾아가 새로 남긴 발자국...

작가가 홀로 떠난 여행은 자신을 풍부한 색으로 만든 시간이며
혼자는 불안과 자유로움 사이 스스로 찾은 공간이다.




"홀로 떠나는 여행은 불안과 자유를 함께 짊어지는 것이다. 불안 속에서 자유를 느끼고, 자유 속에서 불안을 느낀다. 전자에서 용기를, 후자에서 신중함을 얻는다. 그래서 혼자가 된 두려움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p.26)


책장을 넘길수록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나 공간이 움직이고 작가에게 다가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글은 마치 자신 옆으로 다가오도록 독자에게 내어준 길 같았다. 작가의 발자국을 따라 산책하듯 천천히 아껴가며 읽었다.


제주의 밤하늘에 뜬 별을 보면서 작가는 "달과 별을 다른 빛에 묻어 살고 있었고 이들을 잊었기에 밤이 무서워 한 것"(p.88)이라고 말한다. 제주에서 해가 지면 허겁지겁 숙소에 들어가기 바빴던 나에게 작가는 다가와 별이 빛나는 제주를 알려주었다.


점점 작가와 가까워졌다. 그리고 자신을 ‘그늘’로 비유한 문장에서 그를 만났다. 고요히 침묵하는 일상 속에서 빛나는 순간을 마주하려 버텨온 나는 그가 늘여놓은 그늘에서 마음 편히 쉬었다.




빛은 밝을수록 뚜렷한 경계가 생긴다. 볕을 받는 양지와 받지 못한 음지는 빛과 그림자로 구분된다. 나는 밝은 빛보다 어두운 그림자를 닮고 싶다. 나의 그림자는 어둠이 해를 삼키기 직전처럼 길다. 길어진 그림자는 주위에 있는 것을 검게 물든다. 몸집이 커진 그림자를 일부러 늘어트린다.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싶은 이에게 한 조각의 그늘을 나누기 위해서다. 뜨거운 햇볕을 가려주는 서늘한 그늘처럼. 빛을 쫓다가 지친 이들에게 안온한 품을 내어 주는 그늘이 되고 싶다. 까만 어둠에 그림자는 없고 모두 같은 색이 된다. 대신 반짝이는 것이 더욱 두드러진다. 환한 빛에 숨겨진 별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새까만 곳에 제가 가진 빛을 구석구석 심는다. 그래서 어둠이 되고 싶다. 그 속에서 빛나는 나의 별이 있기에. (p.92)


백진주에게 혼자는 사람, 건물, 책, 바람, 음식 등 자신을 둘러싼 것과 고요하고 세심히 눈을 맞추는 시간이다. 그들과의 만남이 눈 앞에 펼쳐지듯 묘사하려고, 그것이 빛나는 순간이었음을 글과 사진으로 나누려고, 그는 혼자라는 그림자를 지운다.


함께하고 싶어서 혼자가 되었다. 사람의 소중함을 헤아리려 외로움을 마주했고 세상의 목소리를 들으려 침묵했다.


책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그의 곁이 더욱 넓어 보였다. 다른 사람을 품는 포근해진 옆자리.

다시 나는 혼자가 되었다. 하지만 이전과 다른 혼자다.



책을 읽다 만난 문장으로 작가에게 건네고픈 말을 대신해본다.


우리는 시간상으로만 광범위하게 사는 것이 아니다. 공간적으로도 눈에 보이는 것들을 훨씬 넘어서 살고 있다. 우리는 어떤 장소를 떠나면서 우리의 일부분을 남긴다. 떠나더라도 우리는 그곳에 남는 것이다. 우리 안에는, 우리가 그곳으로 돌아와야만 다시 찾을 수 있는 것들도 있다. 단조로운 바퀴 소리가 우리가 지나온 생의 특정한 – 그 여정이 아무리 짧더라도 - 장소로 우리를 데리고 가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가까이 가고 우리 자신을 향한 여행을 떠난다. - <리스본행 야간열차>(파스칼 메르시어)




<혼자라는 말>을 읽으며 들은 노래


Gilbert O'Sullivan - Alone Again (Natu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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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해독이란?

독립출판을 한 해준이 (독립출판의 편견에서 벗어나) 독립서점에서 만난 책 읽기'의 줄임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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