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가 많아 부끄러웠다

한 권으로는 버거웠던 마음을 다섯 권으로 나눴다

by 김가인 오로시

다이어리가 많은 게 부끄러웠다.
정확히는, “나는 기록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과 “끝까지 써본 적은 없지”라는 사실 사이에서 생기는 작은 민망함.


서랍을 열면 표지들이 먼저 나를 본다.
새것의 냄새가 남아 있는 노트, 몇 장만 쓰고 멈춘 노트, 중간부터 다시 시작한 노트. 그 사이에서 나는 늘 같은 말을 했다.


“이번엔 진짜 쓸 거야.”




그런데 최근에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내 부끄러움이 조금 풀렸다.
사람들이 다이어리를 한 권으로 버티지 않았다. 용도별로 나눠서 쓰고 있었다. 일정은 일정대로, 감정은 감정대로, 기록은 기록대로.


그 사진들을 보면서 처음으로 생각했다.
아, 분류해서 써도 되는 거였구나.


내가 그동안 실패했던 이유는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한 권에 너무 많은 역할을 맡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2026년을 앞두고 나는 다이어리를 다섯 권으로 나눴다.


숫자만 보면 별거 아니다. “뭐, 5권밖에 안 되네.” 하고 웃을 수 있다.
하지만 다섯 권은 내 마음을 대신해서 역할을 나눠 가진다.



1. 스크랩어데이용 일기장.
사진 한 장, 짧은 문장. 하루의 조각을 붙여두는 곳.


2. 생각 노트.
머릿속이 시끄러울 때, 그 소음을 종이로 옮겨놓는 곳.


3. 시 노트.
문장보다 짧은 숨들이 모이는 곳. 제대로 된 시가 아니어도 괜찮은 곳.


4. 일정 노트.
어른의 하루를 굴려가게 하는 최소한의 질서.


5. 간단한 메모 일기장.
그날의 한 줄. 오늘이 사라지지 않게 잡아두는 가장 작은 방법.




이 다섯 권을 침대 머리맡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가끔 그 모습을 보면 우습고, 가끔은 든든하다. 내가 ‘열심히 살겠다’는 마음을 종이 두께로 눈앞에 두는 기분.




그런데 문제는 늘 여기에 있다.
나는 매년 6~7월에서 멈춘다. 시작은 반짝이고, 첫 장은 늘 예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기록이 뚝 끊긴다. 바빠서, 피곤해서, 까먹어서. 이유는 매번 다르지만 결말은 같다.

“쓰다 만 사람.”


그래서 올해는 다른 방식으로 가보려고 한다.


완벽하게 쓰지 않기로. 몰아서 쓰지 않기로. 빈칸을 죄책감으로 채우지 않기로. 대신 다시 펼치기로.

기록은 의지로만 되는 일이 아니다.


습관이고, 습관은 환경에서 시작된다.
내가 쓰고 싶은 건 거창한 문장이 아니라, 내가 살았다는 흔적이다. 그러니까 하루를 놓쳐도 된다. 다만 다시 돌아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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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소 다이어리가 좋았던 건, 그래서였다.
가격은 가볍고, 종이는 생각보다 단단하고, 외피는 심플해서 마음이 편하다. ‘비싸게 샀으니 꼭 써야 해’라는 압박이 아니라, ‘언제든 다시 시작해도 돼’라는 신호 같아서.


리훈 다이어리도 옆에 두었다.
이름 있는 문구의 표정이 나를 조금 단정하게 만든다.
묘하게 그런 게 있다. 도구가 마음을 만들 때가.


2026년 12월까지, 이 다섯 권을 끝까지 가져갈 수 있다면.
그때는 정말 뿌듯할 것 같다.
중요한 건 완벽한 기록이 아니라, 중간에 멈춰도 다시 펼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나는 이번 해를 “쓰다 만 사람”으로 끝내고 싶지 않다.
적어도 한 번은, 끝까지 가본 사람으로 남아보고 싶다.




당신은 어떤가요.
다이어리를 한 권으로 쓰는 편인가요, 아니면 용도별로 나눠 쓰는 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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