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작한 시간

<자작시>

by 김가인 오로시

주전자의 비명이

뚝, 끊긴 자리

김이 빠져나간 허공을

오후 4시의 햇빛이 무겁게 짓누른다

벽에 걸린 낡은 궤종시계는

거대한 다리미가 되어

좌우로, 좌우로

나의 정수리를 다림질하기 시작한다

쇠 냄새가 난다

수많은 먼지가 살비듬처럼 박제되고

나는 구겨진 셔츠처럼 바짝 얇아져만 간다

닫힌 창문 틈으로 스며든 시간은

내 몸의 두께를 1센티미터씩 깎아내고

내장기관들이 종이처럼 얇게 펴져

배고픔조차 납작하게 다려진다

길게 누운 그림자가 식탁을 덮치면

나도 그림자가 되어 바닥에 달라붙는다


이제 나는 문을 열 필요가 없다


납작해진 몸을 비틀어 닫힌 문틈 사이로

유유히 빠져나갈 수 있으니까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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