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겨울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오후,
따뜻한 방구석에서 영화 한 편을 틀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그 영화는 우리의 이야기 같았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 다른 속도로 시간을 걷는 두 사람.
나는 30대의 속도로 세상을 달렸고,
그는 이미 50대의 속도로 세상을 걷고 있었다.
내가 뜨겁게 달려가고 싶을 때,
그는 이미 그 길을 천천히 걸어본 사람이었다.
내가 머뭇거리며 멈춰 섰을 때,
그는 이미 그 시간을 지나 있었다.
이 차이를 깨달았던 날,
내 마음 한구석엔 외로움과 두려움이 스며들었다.
우리가 같은 시간 위에 온전히 서 있지 않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나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누구나 함께 있지만 서로 다른 속도로
시간을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날,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며
서로를 꼭 끌어안고 울었다.
서로 다른 시간 위에 서 있지만,
이 순간만큼은 완벽하게 겹쳐져 있다는 믿음으로.
내가 매일 느끼는 불안과 조급함,
미처 내뱉지 못한 감정들을
그는 누구보다 빨리 알아차리고
조용한 목소리로 어루만져준다.
나는 매일 아침이 되면 불안과 조급함으로
바쁘게 돌아가는 내 마음의 시동을
그의 낮고 나지막한 “잘 할 수 있어” 한마디로 항상 안정된다.
그가 나보다 먼저 살아온 시간이
내게는 가장 큰 위로가 된다.
그의 시간을 믿고 의지하기에
나는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고
조금 더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가끔, 그의 나이가 들어가는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아리게 아프다.
내 곁에서 점점 늙어가는 그의 모습이
죽음이라는 단어와 너무 가까워 보인다.
그럼에도 우리는 매일을 사랑하고 표현한다.
하루를 함께 나누며
지금의 시간을 온전히 살아내려 노력한다.
결국 사랑은
서로 다른 시간 위에서
서로의 시간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오래
함께 걷기 위해 노력하는 것.
우리는 그렇게 오늘도,
서로 다른 속도 위에서
함께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