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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니 Jan 18. 2021

식물을 키우기로 했다

강아지도 고양이도 아닌 어떤 '반려'

집에 필요한 것들이 채워졌음에도 뭔지 모를 썰렁한 기분이 들었다. 20평 아파트에 혼자 들어와 있으니 집 크기에 비해 물건이 많지 않아서 여기저기 비어 보였다. 그리고 조금 삭막하기도 했다. 


본가에는 내 취향은 아니지만 초록 식물들이 가득하다. 사람의 동선을 방해할 정도로 많다. 초등학교 때 방학숙제 때문에 샀던 나의 수중 행운목은 엄마가 나무로 키워놓으셨다. 한참 바이올렛에 꽂히셔서 베란다 한쪽의 선반이 모두 바이올렛 화분인데 요즘엔 다육이에 꽂히셨다. 지금은 몇 백 개의 작은 다육이 화분들도 가득하다. 베란다는 부모님의 정원이 되었다. 아빠는 주말에 아침을 드신 후 커피를 타서 베란다로 나가신다.


나는 식물에는 관심이 없었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토끼, 병아리(두 마리는 닭이 됐다), 햄스터, 개를 키워봤고 키우던 아이들이 세상을 떠나거나 가출을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넘겨지면 많이 슬퍼했다. 데리고 왔던 유기견 멍멍이가 사상충이 심해져 눈을 감았을 때 눈물을 흘리며 출근했던 적도 있다. 유튜브에 귀여운 동물 영상들도 자주 시청한다. 길거리에 불쌍한 사연을 가진 동물들이 안타까워 당장이라도 데리고 오고 싶을 때도 있다. 지금은 키우지 않아도 나중을 대비해 훈련 영상도 열심히 봐 두었다.


하지만 동물은 키우지 않기로 했다. 반려동물을 데리고 오면 많은 시간과 관심을 쏟아주어야 한다. 지출도 크게 늘 것이다. 나는 조금 있으면 30대 중반에 접어든다. 그리고 나를 위해 더 집중할 수 있는 장소가 생겼다. 40대가 되기 전에 스스로에게 최대한 집중하고 싶다. 돈도 모으고 싶다. 그래서 동물은 키우지 않기로 했다. 대신 삭막한 집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어 줄 예쁜 식물들을 들이기로 했다. 




12월 초의 주말, 부모님이 자주 가시는 화원에 따라갔다. 사람들이 많았다. 부모님은 지금까지 본 것 중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왔다고 하셨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집에만 있다 보니 사람들이 화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더니 정말이었다. 인터넷으로 미리 검색했던 키우기 쉬운 화초들 위주로 담았다. 나는 식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리스트에 없던 식물 중에서도 사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 허브 종류도 키우고 싶었지만 봄에 다시 오기로 했다. 분갈이할 화분도 몇 개 샀다. 비용을 지불하면 분갈이도 해주는데 나는 엄마가 해주시기로 했다. 화초와 화분을 사는데 7만 원 넘게 썼다.


안방에는 스텝 스툴에 담요를 깔아 작은 화분을 두고 큰 것들은 바닥에 두었다. 냉장고와 거실장 사이에는 제일 키가 큰 아레카야자를 놓아두었다. 엄마가 주신 율마도 거실 협탁으로 들여놓았다. 집이 완성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플랜테리어라고 하던데 정말 인테리어가 확 살아났다. 삭막한 기운이 사라졌다.




요즘은 식물도 '반려'이다. 반려동물들이 마음에 안정을 주는 것처럼 식물도 마음에 안정을 준다. 먼지 쌓인 잎을 정성스레 닦아 줄 때 느껴지는 평온함이 좋다. 가끔 주는 관심에도 새로운 연두색 잎을 내어준다. 햇살 좋은 날 베란다에 옹기종기 내놓으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겉흙이 마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아무도 죽이지 않고 잘 키우고 있다. 어쩌면 나는 생각보다 식물 키우는데 재능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 화원 사장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외국 사람들은 1년 동안 열심히 키우다가 식물이 죽으면 새로운 마음으로 새 식물을 들이는데 한국 사람들은 평생 키워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화원 사장님 입장에서는 잘 죽이고 다시 사는 사람이 사업에 도움이 돼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도 모르겠다. 그 말이 상술이든 아니든 나는 반려식물이 죽더라도 쿨하게 보내주고 새 식물을 들일 생각이다. 새로운 마음으로!


그래도 이왕이면 죽지 마, 애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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