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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es Chang Sep 30. 2019

나는 축복의 근원이 되고 있는가?

#말씀속_성공학  #우선순위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창 39:3-5)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와 바로의 친위대장인 보디발의 집에서 종으로 있을 때의 그의 환경을 이야기하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요셉이 그의 주인 보디발에게 인정받으며 그 집안에서는 종으로 일하는 자로서 최고의 자리에까지 올라가는 나름의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어찌 보면 이 모습은 “직장 생활 등의 경제활동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성공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우리는 평사원으로 입사하여 기업의 사장의 자리까지 오르는 사람들의 스토리를 접하며 성공신화라는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바로 그러한 성공이 요셉의 모습에서도 보여지는 것입니다.  왕의 생명을 책임지며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는 친위대장이 소유한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는 자리이니 아마도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자리였을 것임에는 분명합니다.

주인이 보기에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더라,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이 보이더라.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요셉의 평상시 삶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삶 자체가 인간의 기준을 뛰어넘어 신이 함께하는 사람다운 삶이었다는 것입니다.  보디발은 애굽 사람이었고 나름의 신을 섬기는 다른 종교의 사람입니다.  여호와를 잘 모르는 사람, 그렇게 다른 신을 섬기는 보디발이 보기에도 요셉은 여호와가 함께 하는 사람이었고, 범사에 형통케 하심이 보이는 삶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주변의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라도) 보기에 나는 좋은 주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 보여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한다면 분명 요셉의 삶은 “YES”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불러오는 여호와 하나님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이라는 축복의 결과물이 보여집니다.  너무도 단순한 순종과 축복이라는 방정식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보며 범사의 형통함을 우선으로 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하지만 다른 종교의 사람들조차도 “저 사람은 여호와와 함께 하는 사람이야!”라고 인정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주변의 다른 종교의 사람들이 보기에도 당신은 좋은 주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 보여지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한다면 어떤 대답을 하실 수 있으십니까?  솔직히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숨을 붙여 두시고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다시한번 새롭게 하심을 간구하는 기도와 결단을 해보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아브라함에게 하신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으리라 (창 12:3b)”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바로 복의 근원이 되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요셉이 주인 보디발의 모든 소유를 관리하는 최고의 자리에 오른 후 보디발의 집에는 그의 집과 밭 등에 속한 모든 소유에 축복이 더해 집니다.  보디발이 이뻐서가 아니라 요셉 때문에 주어진 축복입니다.  말씀에도 분명히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 보디발의 집에 복을 내리신다 말씀 하십니다.

나로 인하여 내가 속한 공동체가 복을 받는다!  참으로 멋지지 않습니까?  나의 존재가 주변 사람들에게 축복의 근원이 된다면 그 얼마나 아름다운 삶입니까?  나로 인해 내 가족이 복을 받고, 나로 인해 내 직장이 복을 받고, 나로 인해 내 사업체가 복을 받고, 나로 인해 내 교회가 복을 받고…  복을 주시는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이 나로 인해 그 복을 베푸신다는 것은 참으로 엄청난 결과론인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그런 삶을 위해 좋은 종이 되겠다, 좋은 자녀가 되겠다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가능하게 되는 비결은 누가 보아도 “저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이야!” “하나님이 형통케 하시는 모습이 보여!”라는 칭찬의 소리를 먼저 듣는 것입니다.

그 집은 이단이라 돈 벌게 해주면 안된다?

얼마전 어느 분이 직장 사장을 알고 보니 이단 종파라며 그 식당에서 일하시는 어느 집사님에게 그 직장을 그만두라고 이야기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이단종파 사장이 돈 벌게 해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말은 사실 가끔 듣는 이야기입니다.  종교가 다르고, 종파가 다르니 그런 곳에서 열심히 일해서 돈 벌고 그 집이 잘되게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 곳이 잘되게 도우면 안된다는 논리입니다.

물론 그 마음은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그런 논리라면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일찌감치 도망쳐 나왔어야 하고, 애굽의 총리가 되어 신으로 숭배 받던 애굽의 왕, 바로 우상 그 자체인 바로를 돕는 일은 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하지만 요셉은 우상 숭배 집안인 보디발의 집에서도 축복의 근원이 되고, 우상으로 숭배 받는 바로의 총리가 되어 그를 도와 애굽을 구제하여 이끌어내는 위대한 총리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우상의 나라 애굽 전체가 축복을 받는 축복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  말씀처럼 하나님은 “요셉을 위하여” 그가 속한 이단이며 우상을 섬기는 애굽을 축복하신 것입니다.

심기움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크리스천 리더가 된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써 나가시는 하나님의 역사에는 우연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느 곳에 심기운데는 분명 하나님의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그 후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 사건과 더불어 감옥 생활을 하게 되고, 그 후에는 왕의 소유를 관리하는 총리의 자리까지 오르게 됩니다.  그렇게 그는 종으로 출발하여 감옥을 거처 왕으로부터 전권을 위임 받은 국무총리가 되는, 세상적으로는 엄청난 성공의 자리에 올라서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굶주리게 된 가족을 구하고, 예수님으로 이어지는 구원의 역사에 남게 되는 인물이 됩니다.  요셉은 그렇게 심기운 곳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증인이 되고, 그로 인해 형통케 하시는 축복을 누리며, 더 나아가 또 허락하신 주변 사람과 환경 즉 심기운 곳에 주어지는 축복의 근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심기움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환경, 우상 숭배와 이단의 나라에서 종이 되어 살아가는 환경만 보고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참 위험한 결론입니다.  크리스천 리더가 가져야 하는 생각의 출발점은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어야 합니다.  심기운 곳이 마음에 드네! 안드네!의 판단을 섣불리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나 중심”의 범죄가 될 수도 있음 입니다.

지금 어떤 환경에서 일을 하던 분명 “그곳에 심으신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것에서 우리는 성공해야 합니다.  비롯 그곳이 이단과 우상이 있는 곳이라고 하더라도 그 곳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고 있어야 하고, 그 순종을 통해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시는 모습이 우리의 삶을 통해 보여져야 합니다.  그러한 과정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셉의 진정한 성공은 바로 그가 심기운 곳에서 주어진 사명에 최선으로 순종하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명하는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왕의 총리가 되어 애굽에 축복을 불러오는 그 모든 보여지는 것들은 과정에 불과합니다.  그가 삶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인생의 바닥에서 최상의 자리까지 오르락내리락하며 끈임없이 반복하며 보여준 것은 여호와는 살아 계시며 그는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크리스천 리더의 성공 또한 바로 그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크리스천 리더의 생각과 질문의 출발점은 “어디에 심기였는가?”가 아니라 “왜 이곳에 심기였는가?”라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절대권을 인정하며 사명을 받는 자의 우선되는 자세일 것입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아니라 그 상황을 허락하신 절대자 하나님의 뜻을 먼저 살펴야 할 것입니다.

정리합니다.

주어진 직장이 이단이건, 우상 숭배하는 집단이건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차피 우리가 사는 세상 자체가 죄로 가득 찬 세상이며 우리에게는 그 안에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들을 제자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것이 바로 그곳에 “심기운 나” 때문에 그곳이 축복받을 수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바라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자녀 된 나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이 보여지는 당신의 삶,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심이 보여지는 당신의 삶!  그러한 모습으로 당신은 당신이 속한 그 공동체속에서 최고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과정속에서 공동체에 속한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야 말로 크리스천 리더의 진정한 성공입니다.

질문해 보았으면 합니다.

.. 나 때문에 하나님의 복을 받는 사람은 누구인가?
.. 나 때문에 하나님의 복을 받는 조직, 공동체는 어디인가?

당신 때문에 복을 받는 사람들, 조직과 공동체들이 더욱 많아 지기를 바랍니다.

“어디에 심기였는가?” 보다 “왜 이곳에 심기였는가?”가 우선이 되는 사명 중심의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 “왜?”가 성취되는 것이 바로 크리스천 리더의 진정한 성공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합니다.

“주어진 환경을 되돌아 보시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바로 이곳에 심어 놓으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하시고, 바로 이곳에서 하나님의 사람인 것이 증명되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로 인해 그들도 주님을 발견하게 되는 좋은 축복의 근원이 되는 크리스천 리더의 삶을 살아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받는 자가 되게 하시옵소서.”


#말씀속_성공학  #그리스도인은달라야한다  #복의_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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