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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 Sep 08. 2019

고백

외롭게 두었던 P를 생각하며

내가 중3 때다. 못된 행동을 한 일이 있다. 나를 좋아하는 P를 은근히 따돌린 거다. 단짝 친구 수정이와 암호를 정해서 P 앞에서 P가 못 알아듣는 말을 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같은. ‘피’는 P를 말한 거였고, ‘물’은 생각나지 않지만 ‘진하다’는 싫다는 뜻이라서 합하면 ‘우리는 P가 싫다’는 뜻이다. 자신의 바로 앞에서 뜻을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친구들을 바라보는 P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P의 표정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땐 우리끼리만 아는 암호를 쓰는 재미에 빠져 시시덕거렸던 것 같다. 청소를 마치고 종례 하러 오는 담임 선생님을 기다리는 동안 나랑 수정이만 교실 복도에 바싹 붙어 앉아 조잘조잘 이야기를 했다. 우리 둘은 단짝이야 누구도 끼어들 수 없어라고 말하는 듯이. P만을 향한 몸짓은 아니었으나 그때의 맥락에서는 P더러 보라고 한 행동으로 볼 수밖에 없다. 잔인한 일이었다.

P는 생리기간엔 목욕탕은 물론 집에서 샤워도 하지 못한다고 했다. ‘찝찝해서 어떻게 참지?’ 싶었는데 엄마가 위생상 좋지 않다고 절대 씻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안 씻는 게 더 위생상 안 좋은 거 아닌가? 엄마가 씻지 말랬다고 몸 찝찝한데도 참나?’ 나는 P도 그의 집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옛날 사람 같았다. 그게 이질감이 들었다.

고입 학력고사가 얼마 남지 않았던 때 중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총망라해서 객관식으로 보는 시험이었는데 점수가 낮아서 고등학교에 떨어지는 경우가 드물었지만 있긴 했다. P는 성적이 아슬아슬했던 것 같다. 내가 역사와 전통의 K여고에 가게 될지, 신설학교 K고에 가게 될지 일명 뺑뺑이 추첨 운에 가슴 졸이고 있을 때, P는 고등학교에 떨어질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아침 자습시간에 우리들은 ‘18년간 총정리’라는 문제집으로 공부했다. 운전면허 시험용 문제집과 같은 판형으로 된 위로 넘기는 달력같이 생긴 문제집이었다. 나는 요일별 계획이 있었다. 한 시간에 한 과목만 하면 지루하니까 과목을 바꾸어 두 과목 정도 공부했다. 내가 다른 과목 문제집으로 바꾸어 꺼내니 짝이던 P가 나랑 같은 과목을 꺼냈다. ‘나를 따라 하나?’ 싶어 공부하다 말고 다른 과목 문제집으로 또 바꾸어 꺼내봤다. 그러자마자 P도 나랑 같은 과목으로 바꾸어 꺼냈다. ‘뭐야, 정말 따라 하는 거잖아.’ 나는 괜히 심술이 났다. 그 뒤에 무슨 행동을 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친절하고 사려 깊은 종류는 분명 아니었다. 친구들은 다 걱정 없이 고등학교에 가는데 자신만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할 때의 마음은 어땠을까. 나는 그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몇 점이라도 올릴 수 있게 문제 푸는 요령을 가르쳐줄 수도 있었다. 선생님 설명보다 친구 설명이 더 알아듣기 쉬운 법이니까 유용했을 것이다.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왜 그런 아이였을까. 단짝 수정이랑 세상 고민 다 끌어안은 듯 온갖 걱정을 나누었으면서 바로 옆 친구에겐 감정 한 자락 내어 주지 않았다니 편협하고 배타적이었던 나를 이제야 본다.

친구를 따돌리는 건 나쁜 짓이라고 교사가 되어 가르치고 있는 내가 P를 따돌렸던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게 블랙 코미디 같다. 지금의 나는 친구 따돌리면서 장난이었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학생을 보면 속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는 기분이 된다. 고통스러워하는 친구를 보며 어떻게 즐거움을 느끼지? 공감 능력이라곤 하나도 없는 학생 부모의 가치관, 집안 분위기와 성적 제일주의인 사회 분위기에 혐의를 뒀다. 자기 행동으로 상대가 얼마나 고통을 느꼈는지 이해하게 하고 싶었다. 따돌림이나 집단 괴롭힘으로 상처 받은 학생의 고통은 실감하지 못한 채 교칙에 따라 징계를 받고는 힘들다고 피해자를 원망하거나 별 가책 없이 같은 괴롭힘을 반복하는 문제에 관심을 갖고 피해자의 회복에 초점을 둔 ‘회복적 생활교육’을 정성 들여했다. 생각해보니 자기가 너무 심했다며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어 사과하는 아이 모습을 보면 내 맘도, 따돌림을 받았던 아이 맘도 누그러졌다. 그러다 P 생각이 났다. 눈앞에 일어난 일은 내가 중3 때 했던 일과 같구나. 내가 그랬던 건 까맣게 잊고 아이들만 혼내고 있었구나. 그때 P의 마음이 느껴지니 너무 마음이 아프고 미안했다. 이제와 P를 찾아 사과하는 게 의미가 있나. 의미 없다는 결론은 나를 위한 것이다. 너무 가볍게 어쩔 수 없는 일로 해버리는 것도 변명이다. 그럼 P를 위한 행동으론 뭐가 남아 있을까. 

아이들은 매일 단짝으로 붙어 다니다가 하루아침에 외톨이가 되기도 한다. 그런 비극이 자신에게 닥칠까 봐 혼자 외로이 지내는 같은 반 친구에게 마음이 쓰여도 손 내밀지 않는다. 왕따랑 친구 한다고 왕따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같은 무리 친구의 행동에 기분이 상해도 표현하지 못하고 끙끙대며 참고 지낸다. 상담하다가 속 얘기를 들을 때면 애들이 맘고생이 많겠다 싶어 안쓰럽다. 학교 다니면서 친구가 없는 것은 생각보다 큰 공포라는 걸 알게 된다. P가 수정이와 내가 쓴 암호를 듣고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지 못한 건 ‘차마 묻지 못한’ 마음일 것이다. 청소시간에 둘이 복도에 앉아 있을 때 다가오지 못했던 것도 ‘차마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불안하고 의지할 곳 없는 외로움에 사무쳤을 것이다. 이제야 헤아려본다.

지금은 친구 따돌리는 아이가 나중에 자기가 한 일에 맘 아파하며 남의 고통에 눈 돌리는 사람으로 클 수 있음을 믿는 여유가 선물로 왔다. 하나의 행동으로 그 사람 전체를 비난할 필요는 없다는 것도. 못된 행동을 한 과거가 내 앞에 있는 말썽쟁이들을 이해하는 넓은 품도 되어 준다. 뻔뻔하게 P의 고통으로 나를 키운다. 아니, 타인의 고통을 만들어낸 내 행동을 성찰하는 태도가 나를 키우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 곁에 있는 아이들이 외롭게 그냥 두지는 않고 싶다. P를 위한 행동으로 내가 찾은 하나이다. 또 찾으면 그걸 하겠다. 계속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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