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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 Apr 25. 2019

전굴자세 좌절금지


 

아스탕가 인도 정통 요가 수련을 한다는 요가원에 다닌 지 한 달이 되었다. 집에서 가까운 곳을 검색해서 우연히 갔을 뿐이지 정통 아니어도 되고, 요가를 수련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허리도 쿡쿡 쑤시고 예전 몸살림 운동을 다닐 때 강사의 말이 시간 여유만 생기면 무섭게 떠올라 다시 간 것이다. 강사는 다리가 쭉 펴지지 않는 날보고 나중에 할머니들처럼 구부러질 거 같다 했었다. 충격요법이었을까? 벌써 7년 전의 일인데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광주 스포츠센터에서 요가를 할 때에도 그랬다. 몸은 하늘 보고 누워 다리는 구부리고 앞정강이에 깍지를 껴 가슴 쪽으로 당기는 동작을 하고 있었다. 간단한 동작이었지만 내 정강이는 뻣뻣하게 하늘에 떠 있었고 가슴 쪽으론 잘 내려오지 않았다. 나한테 다가온 강사가 다리를 눌러 주더니


“히약, 회원님 최고, 최고.” 했다. 뻣뻣하기로 내가 최고라는 거다. 몸이 심하게 유연하지 못한 나는 요가하러 갈 때마다 좌절을 했다. 그럴수록 더 꾸준히 해야 한다는 생각과 못하니까 하기 싫다는 감정 사이에서 그네를 탔다. 하다말다를 반복한 지 여러 해가 되었다. 늙어서 허리 다리가 굽어져, 멀리 여행도 못 다니면 인생의 낙이 사라질까 두려운 마음이 든다. 다시 요가를 시작하게 하는 힘이 두려움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들진 않는다.



잘 되는 동작이 몇 없지만 특히 전굴 자세를 할 때면 더욱 좌절한다. 전굴 자세는 허리를 곧게 펴고 무릎도 펴고 앉아 가슴을 허벅지에 닿게 하는 몸을 폴더처럼 접는 자세이다. 내 상체는 접히기는커녕 5도나 기울까? 무릎을 펴면 몸이 뒤로 제껴지고, 바로 앉으면 고관절이 아프고 힘이 들어간다. 명색이 전굴이니까 상체를 허벅지에 닿게 하려고 숙이면 이번엔 무릎이 구부러진다. 뻣뻣하기 이를 데 없어 내가 보기에도 막대기 인간 같다.


 요가원에서 옆 사람을 힐끗 보면 왜 그리들 유연한지 다들 척척 강사가 하라는 대로 예쁜 자세가 나오는데 나만 이렇다. 내가 제일 못하네! 하는 비교까지 들어가면 최악이다. 딱 다니기 싫어진다.

다음 달 등록을 할까 말까 하는 중, 아침에 허리가 뻐근해서 유튜브로 ‘요가소년’ 영상을 봤다. ‘척추 건강에 도움을 주는 자세’를 검색하니 하필 전굴 자세다. 낑낑거리며 따라하다가 ‘영상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아요도 누르고 질문도 하라’는 멘트에 나는 이 동작이 어렵다고 하소연 하면서 무릎 펴는 거랑, 몸이 접히는 거랑 뭘 더 우선시 해야하느냐고 질문 글을 썼다. 요가소년은 해결책도 친절했는데 나는 이 말이 특히 좋았다.    



“무릎이 펴지지 않으면 살짝 구부리고 해도 됩니다. 무릎 뒤쪽 근육이 짧아서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조급해 하지 마시고 꾸준하게 수련해보시기 바랍니다. 조금씩 천천히 점차 원하는 만큼 움직임의 범위가 늘어날 겁니다.”


무릎이 펴지지 않는 걸 문제 삼지 않고 자연스러운 거라고 하니까 신기하게도 좌절감이 사라졌다. ‘조금씩, 천천히, 점차’라는 말은 마음에 여유를 주었다.    



"무릎이 안 펴지면 엉덩이 뒤쪽에 담요를 넣어 보세요."


잘 안 될 때 최고치 목표만 반복해서 알려주는 것보다는 대안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알려주니까 하기 싫은 마음이 들지 않고 ‘대신 이걸 해보자’ 하고 의욕이 생겼다. 무릎이 구부러져도 좋으니 상체를 길게 펴 배가 가슴에 닿도록 먼저 노력하라고 했다. 목표 자세에 가까워지려면 어느 동작은 완벽하지 않아도 어느 부분에 중점을 두어 해야 하는 지 알려주니 차근히 도전해 볼 마음이 생겼다.



"누군가 말하길, 요가 자세의 완성은 없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 말에 꽤 동의합니다. 저마다 나름의 수련이 있을 뿐입니다. 좌절하지 마시고요. @@님 나름의 수련에 집중하시고요. 자신의 몸과 마음을 힘껏 보살펴주셔요 :) 응원합니다, 나마스떼"    


응원한다고 하니까 든든했다. 잘 안 되면 또 물어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뻣뻣한 내 몸이 마음에 안 들었는데 몸과 마음을 힘껏 보살펴주라고 하니 못 하는데도 계속 다시 하려는 내가 나를 보살피는 중이었단 걸 알겠다.


못하는 걸 꾸준히 할 수 있도록 돕는 말에 관심을 갖다보니 수학을 못해 그 공부는 특히  싫어하는 아들한테 했던 내 말이 떠올랐다.


"방법은 간단해. 못하는 거 잘 하려면 그 과목에 대한 시간 투자밖에 없어."


내 입을 딱 때려주고 싶다. 아들은 얼마나 얄미웠을까. 해도 잘 모르겠고 성적도 안 오르니 얼마나 낙심하고 하기 싫어졌을까. 학교 수업에서 주 3시간이나 들어 있으니 그 시간이 얼마나 고역일까. 그래도 잘 해 보겠다고 수학학원 가기 싫다 안 하고 땡땡이도 안 치고 꼬박꼬박 가는 게 기특한 거였다. 그러고 보니 내가 좌절할 만큼 못하는 게 있는 것이 좋은 점도 된다.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는 것 같다. 아들도 이해하게 되고 더불어 우리 반 아이들도 이해된다.



나도 유튜버 요가소년처럼 수업하고 싶다. 못하는 학생들도 자기 수준과 상태에 따라 해볼 만한 것을 제시하여 의욕 돋궈주기. 현재의 자신을 탓하지 말고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게 돕되 방향을 제시하고 조급해하지 않게 꾸준히 다독여주기. 격려와 응원 잊지 말기. 언제든 힘들 때 손 내밀면 샘이 곁에 있을 것임을 알려 포기하지 않게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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