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살 Mar 06. 2020

[엄마 인터뷰] 새로운 걸 배울 때마다 재밌어.

[인터뷰] 새로운 걸 배울 때마다 재밌어.


“엄마, 립스틱은 뭐 하러 발라?”

“그래도 밖에 나가는데 그냥 가긴 뭐해서~”


엄마와 나는 동네 카페에 마주 앉았다. 인터뷰 날은 설날이자 내 엄마 권영연 씨의 일흔여섯 번째 생일이었다. 초등 1학년 조카가 엄마네 와 있었다. 조카는 말이 많고 심심한 걸 못 참아서 우리는 방해받지 않는 조용한 곳으로 나왔다. 휴일이라 다행히 손님이 별로 없었다. ‘띠꺽 띠꺽 취익~’ 커피 뽑아 내리는 소리만 간간이 들렸다. 생전 처음 인터뷰라는 걸 하게 된 엄마는 앉자마자 말했다. “이거, 긴장되네.” 나는 표정 변화가 적고 감정 단어를 잘 안 쓰는 데에 비해 엄마는 감정 표현을 잘 하는 편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한 존재로 엄마를 들여다보게 되는 순간이 좋았다.    


인터뷰의 목표는 엄마 기분 좋아지는 일을 떠올리게 하기. 엄마가 파킨슨 진단을 받은 지 십이 년째다. 파킨슨병은 도파민 부족으로 생긴다고 알려졌다. 도파민은 사랑할 때 나오며 행복감과 만족감을 주는 신경전달물질이다. 많은 파킨슨 환자에게 우울증이 생기는 이유다. 그래서 의사는 즐거운 일을 하며 기분 좋게 생활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인터뷰가 계기가 되어 짧은 시간이라도 엄마가 즐거운 기분을 누릴 수 있다면 내게는 가장 보람 있는 글쓰기 가 될 것 같다.    



어릴 때 명절에는 엄마, 아빠, 나와 다섯 살 아래 여동생 넷이서 윷놀이를 종종 했다. 아빠가 두 개 업어 놓은 말을 어설프게 옮겼다. 그렇게 업으면 위험하다고 엄마가 경고했지만 아빠는 고집을 부렸다. 뒤에서 쫓아오던 엄마 팀이 그 말을 홀딱 잡아버리면 엄마는 얼마나 깔깔대며 웃는지 모른다. 아빠 팀이었던 난 말이 잡혀서 약이 올랐다가도 그 깔깔대는 웃음에 전염되어 저절로 같이 웃게 된다. 아빠는 자존심이 상해서 삐졌으면서 안 삐진 척 하느라 표정이 구겨진다. 그럼 나는 아빠의 좁은 속을 알아버린 통쾌함을 느꼈다. 윷놀이에서 나랑 동생은 서로 엄마편이 되고 싶어 했다. 엄마가 훨씬 영리하게 말을 놓을 줄 알기 때문에 윷을 좀 못 놀아도 이길 때가 많다. 그런 엄마의 깔깔대는 웃음을 터트린 유럽 여행 이야기를 물어봤다.


햇살: 엄마 유럽 여행 갔을 때가 인생에서 제일 신나 보였다고 아빠가 그랬어. 생각해보니 그때가 지금의 내 나이랑 비슷해.

엄마: 결혼하고 첫 혼자 여행이자 첫 해외여행이었어. 해방감이 있었지. 집에 오기 싫더라니까. 15박 16일 버스투어였어. 친구랑, 친구 시누이 둘이랑 여자 넷이. 스위스, 프랑스, 이탈리아랑 그... 모나코, 독일, 그리고 네덜란드, 영국.     

여행 중간에 안부 전화를 했을 때 흥분된 엄마 목소리는 아직도 생생하다. 입 꼬리는 올라가고 생글생글한 눈매가 절로 떠올랐다. 엄마도 그때가 떠오르는지 눈빛이 반짝인다.    

엄마 : 이탈리아에서 유명한 성인이 묻혀 있다는 성당에 가서 청동상의 발을 만지고 촛불도 켜고 했어. 그걸 하면 절대 아프지 않는다더니 지금 왜 이렇게 아픈지 모르겠다. 

햇살 : 그 덕에 잘 된 게 그 사이에 있었겠지. 

엄마 : 그런 것도 있었지.

엄마 : 그래도 우리 버스에서 깔깔대며 웃는 건 우리밖에 없었어. 부부들이 와서는 화목하지 못하더라고, 싸워. 근데 외국 사람들은 그렇지 않더라. 일본 노부부가 세느강에서 배를 타는데 너무 멋있게 여행하는 걸로 보여. 아주 다정하고 귀족 같은 품격이 있어 보이더라. 우리나라 부부들은 다툼이 많았어.

햇살: 왜 그럴까 우리는?

엄마:부부가 여행도 자주 다니면서 서로 맞춰가고 그래야 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한번 가니까 그런 거 같아. 내가 갔을 때가 우리나라가 건설 경기 좋아지면서 해외여행 막 다니기 시작한 때야. 

엄마 : 그리고 바디 랭귀지가 만국 언어라는 걸 느꼈어. 아침에 호텔에서 계란을 먹는데 직원이 다 반숙으로 부쳐주는 거야. 완숙 먹고 싶은 사람들이 hard하게 해 달라 뭐라 뭐라고 아무리 영어로 말을 해도 완숙이란 말을 딱 정확하게 못하니까 그걸 못 알아듣고 그냥 반숙으로 나왔어. 나는 손바닥을 앞뒤로 뒤집는 동작을 하니까 딱 알아듣고 완숙으로 해 줬어. 역시 만국어는 바디랭귀지야.    


햇살: 꽃집 할 땐 좋았어? 영꽃방이 엄마 이름 따서 지은 거였지?

엄마: 응, 참 재밌었지. 좋아하는 꽃을 가지고 하는 일이기도 했고. 그때는 내가 꽂은 꽃바구니가 배달가면 상대편에서 연락이 왔어. ‘다른 꽃보다 오래 갔다, 너무 세련되고 예쁘다, 그 집하고 거래하고 싶다’고. 어디 가서 우리 꽃 써달라고 부탁해본 적이 없었어. 그때가 노무현이 대통령하고 있을 땐데 김** 국회의원이 간호협회 사무처장한테 취임 축하 꽃을 보냈어. 근데 그 꽃이 오래 가고 좋다고 연락이 온 거야. 그 뒤로 거래처가 하루에 한 곳씩 늘었어. 그러니 재밌었지.

엄마: 내 꽃이 유명해지니까 김 국회의원이 청와대로 꽃 꽂으러 들어가 보겠냐고 했어. 그땐 무슨 배짱으로 안 간다 그랬다. 어쨌거나 그럴 정도로 우리 꽃바구니가 유명했었어.    

청와대로 꽃을 몇 번 들여가 보니 폭탄 검사 하느라 절차가 복잡하고 힘들었다. 지금으로도 충분한데 머리 아픈 건 안 하고 싶었다. 나중에 생각하니 가게 홍보할 때 쓰면 참 좋았을 텐데 단칼에 거절한 걸 엄마는 못내 아깝다 했다. 

엄마: 나중에 이웃 꽃가게에서 ‘나 정말 영꽃방 부러웠어.’ 그럴 정도로 재밌게 했었어. 

햇살: 근데 엄마 꽃이 그렇게 유명해진 비결이 뭐야?

엄마: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돈을 많이 남기지 않아도 될 수 있는 대로 상대편이 원하는 대로 맞춰주려고 했지. 불만이 있으면 무조건 바꿔주고. 내 거 하나 주면 둘을 얻는다는 사실을 터득한 거야. 공짜라는 게 없어. 뭘 잘 해주면 돌아오는 게 있어.

엄마: 몇 십 원 아끼려고 도매 꽃집을 두 바퀴 세 바퀴 돌아다녀. 발바닥이 화닥화닥 할 정도로. 그렇게 번 돈을 나쁜 년이 사기 쳐서 홀랑 가져가니까 눈에 선하면서 허무하더라니까. 그리고 어떻게 그런 사람이 버젓이 잘 사냐. 법이라는 게 웃기지도 않더라고.    


지인의 소개로 투자했는데 사기였다. 꽃집에서 번 돈을 홀랑 날렸다. 지인이 소개한 사람을 모른다고 해서 재판을 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상대는 부장 판사 출신이 사건을 맡았고 엄마는 일반 변호사가 맡아 재판 전부터 승패는 정해졌던 거라고 했다. 

엄마 : 나는 아무 것도 모르고 진실을 말하면 법은 정의 편에 선다고 생각했어. 증거 자료도 다 있고 하니까. 재판 후에 나도 유명한 로펌에 맡기려고 알아보니까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가 이긴 사건을 뒤집기는 어렵대.

엄마는 설마 했던 지인에 대한 배신감, 증명하지 못한 억울함, 아빠한테 잡들이 당하면서 재판 소장을 썼던 괴로움과 극심한 스트레스로 병을 얻었다. 다른 얘길 하다가도 깔대기처럼 사기당한 이야기로 돌아오곤 했다. 그만큼 가슴에 맺혔구나 싶었다.   


 

햇살: 엄마, 근데 엄마 또래에 비해 컴퓨터나 핸드폰을 잘 다루는 편이지?

엄마: 남들이 잘 쓴다고 그러는데, 나는 나대로 불편한 점이 있지. 그래도 내 나이 대에 이렇게 쓰는 사람 없나 봐. 사람마다 놀라는 거야. 검색, 이-메일, 사진 저장하고 보내기, 카톡, 웬만한 건 다 하지. 아주 고급 기능은 못 하지만. 이것저것 한번 해보는 거야. 가르쳐주는 사람 하나 없이 혼자 배웠지. 

엄마는 새로운 걸 배우는 게 즐겁다 한다. 나이가 들면 빠르게 바뀌는 기계나 도구에 접근성이 떨어질 것 같은데 오히려 즐기는 엄마가 멋지게 느껴졌다. 꽃가게를 그만두면 하고 싶은 게 많았는데 아파서 못하고 있다는 엄마. 공감보단 질문을 했다. 뭘 해보고 싶었느냐고.    

엄마: 흑백으로 연필로만 그리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그런 그림이 색채 있는 것보다 좋아, 운치 있고. 여행도 많이 다니고 싶고, 외국어도 배우고 싶었고. 저번에 은행 볼 일 보러 나갔다가 화장실 이용하느라 우연히 간 치매안심센터에서 프로그램 신청했어. 중국어 하고 싶었는데 그건 다 찼대. 세트로 신청하는 거라서 영어하고 체육 자리 남은 데에 신청했지.

햇살: 이거 세트로 좋다, 엄마. ‘체육’해서 몸 좀 튼튼해지고 걷는 몸 만든 다음 ‘여행’가서 ‘영어’ 배운 거 써먹는 거지. 그리고 ‘드로잉’ 배워가서 여행지 풍경을 그리는 거야. 여행 스케치북 만들면 좋겠다.

엄마: 금상첨화네. 호호호. 꿈이 야무지다야.     

엄마: 꽃도 우연한 기회에 해서 재밌었어. 커피전문점 할 때도 괜찮은 손님들 많이 와서 이것저것 도와주고 이야기도 많이 듣고. 생각보다 세상에 좋은 사람 많더라고.

햇살: 하는 것마다 재밌고 잘 됐었네. 커피전문점 할 때 얘기 좀 자세히 해봐.


엄마가 다시 눈빛을 반짝였다. 알바생한테 커피와 차 만드는 법을 배우고 손님들이 제안한 인삼차 메뉴를 만들어 냈다. 음악 마니아 손님이 녹음 해다 준 CD를 매장에 틀며 좋은 노래도 많이 듣던 그 시절을 떠올리는 엄마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엄마는 몸도 많이 아픈데 치매 온 아빠의 까다로운 세 끼 밥 차려내느라 하루 종일 집에서 매어 지냈다. 우울해져 ‘이번 생은 망했다’고 했고 그 말이 나는 가슴에 얹혔다. 엄마는 새로운 걸 배우면서 삶의 의욕을 느끼고, 일흔이 넘어서도 계속 시도하는 사람이다. 재미있으면 금세 깔깔 웃고 한시도 가만있지 않는 활동적인 사람이다. 그렇게 살고 싶은데 지금 잘 안되어 힘들다는 말을 하는 거였다. ‘망했다’는 단어에 걸린 건 나다. 엄마는 좋아하는 것을 찾아 그날그날 기분 좋은 시간을 만들어가며 살고 있었다. 엄마를 기분 좋게 만들어주려던 인터뷰 목표는 무의미해졌고 나는 그게 반가웠다. 인터뷰의 수혜자는 오히려 나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춤추는 월요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