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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 Jan 20. 2020

춤추는 월요일

  


“가지 말까? 생에 집착하나 하는 생각이 들고, 움직이는 것도 힘든데... 좀 더 전에 했어야 했는데 늦은 감도 있고.”    


엄마랑 ‘파킨슨 환자를 위한 무용 프로그램’에 가기로 한 월요일 아침, 카톡이 왔다. 엄마는 12년 전 파킨슨 진단을 받았다. 퇴행성 질환인 파킨슨에 춤이 좋다는 연구결과와 함께 환자들을 위한 춤 수업을 보여주는 뉴스를 눈여겨봤었다. 엄마는 최근 병원에서 하던 재활치료 기간이 끝나 혼자서 운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의사가 자전거 타는 게 좋다고 했다며 집에서 타는 자전거를 사려고 검색하고 있었다. 헬스용 자전거는 의욕에 넘쳐 샀다가 옷걸이로 쓰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기분 전환도 할 겸 정기적으로 춤을 배우러 다니는 걸 권했다. 엄마 픽업은 왔다 갔다 최소 다섯 시간은 걸리는 일이라 부담이 되긴 했지만 내가 휴직기간이라 가능하다. 춤추는 월요일엔 엄마와 데이트라는 생각으로 다녀 보자고 스스로에게 기운 보내며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려니 멀어서 부담돼? 춤추면 기분도 즐거워질 거 같아서 가보려 했지 뭐.’라고 답을 했지만 나는 ‘생에 집착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말에 더 신경이 쓰였고 모른 척했다.     



‘힘들어 죽겠는데 왜 하늘에서 빨리 안 데려가나 모르겠다’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미리 나와 있던 엄마의 푸념부터 들었던 게 지난주였다. 파킨슨병 증상의 하나인 손 떨림이 사라지고 병에 특효를 보인다는 글루타티온 주사를 맞으러 같이 가려고 엄마네 갔었다. 병명을 듣고 걱정했던 것에 비해 엄마는 미세한 손 떨림과 허리가 앞으로 굽는 증상만 있고 일상생활엔 별 지장이 없었는데 2년 전 허리 협착증 수술 후 허리는 계속 아프고 파킨슨만 악화되어 부쩍 우울해 보였다. 명절에 가거나 전화를 하면 ‘그냥 딱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종종 했다. 

“내 몸인데 내 맘대로 안 움직여진다. 이렇게 살면 뭐하냐.” 

내 몸이 내 맘대로 안 되는 시간을 맞이한다면 나도 같은 마음이 될 테지. 그래도 막상 들으면 무뎌지지 않았다. 번번이 심장은 철렁였고 가슴이 시큰했다. 흘려듣는 귀가 필요했다.    



작년 추석, 부모님 댁에 갔더니 엄마는 치매가 온 아빠 때문에 힘들고 스트레스받아 못 살겠다고 했다. 60세에 퇴직하고 집에만 있던 아빠는 평소 두 끼만 드시더니 78세가 되던 작년부터 치매가 오면서 그전 습관을 다 잊고 집 밥 세 끼 꼬박꼬박 먹는다는 삼식이가 되었다. 엄마는 꽃시장에서 하던 장사를 쉬면 여행도 하고 뭣 좀 해보려고 했는데 집에서 아빠 밥 챙겨 먹이느라 어디 가지도 못하고 붙들려 있다며 한탄을 하곤 했다. 생선은 비려서 싫고 돼지고기 안 먹고 나물도 젓가락 안 대고 같은 반찬은 딱 한 번만 먹고 밀어내며, 국 없으면 안 먹는 아빠. 먹고 싶은 걸 말하라면 대답 없는 아빠의 밥상은 세계 제일 요리사가 와도 맞추기 힘들 것이다. 멀쩡한 사람도 하루 세 끼 차려내려면 보통일이 아니라 생각만으로도 돌덩이가 가슴에 얹히는 기분인데 파킨슨병으로 몸도 성치 않은 75세의 늙은 엄마가 아무 거나 먹지도 않는 아빠 밥을 차리자니 얼마나 힘에 부칠까. 엄마 숨통이라도 틔워주고 싶어서 일주일에 하루라도 나가 뭐라도 배우라고 그날은 내가 아빠 챙겨 드릴 테니 진짜 신청해보라고 했다. 큰 딸이 그렇게까지 엄마 생각하는 줄 몰랐다며 보내온 카톡의 마지막 말은 안 보는 게 나았다.    


“늙으면 아픈거래. 좀지나친 면이있지만 이번생은 실패했으니 다음생은 활개치며살겠지 그렇게 믿고 마음 비우기로 했으니 시쿠들 건강 잘 챙기고 너도 즐겁게 살기바란다...”    



엄마가 왜 이번 생을 실패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지 않았다. 그럴듯한 이유를 찾을까 봐 겁이 났다. 무엇보다 실패의 이유를 생각하는 데에 시간을 쓰게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엄마의 하루엔 우울한 푸른빛이 많겠지만 지나 온 시절엔 밝은 빛도 많을 텐데 이번 생이 실패라고 하는 게 허망하고 슬펐다.  


   

아빠는 회사에 다니면서 월급봉투를 통째로 갖다 준 적이 한 번도 없다는데 알뜰하게 생활을 꾸리면서 ‘라보’라는 영어공부 그룹에 초등학생 날 넣었을 만큼 엄마는 교육열이 높았다. 주식에도 조금씩 투자해 쌈지 돈을 만들어 여행도 가고 피부 마사지도 받고 기타를 배우고 수영을 다니며 남들 한다는 생활의 여유를 부릴 줄도 알았다. 손재주도 좋아서 뜨개질로 식구들 털모자와 조끼나 스웨터도 예쁘게 짜 주었고, 재봉을 배워 내게 세상 하나뿐인 나팔바지도 만들어 주었다. 엄마가 만들어 준 건 뭐든 자랑하고 싶게 예뻤다.



일곱 살에 만성 신우 신장염에 걸린 나를 가망 없으니 고대병원에서 데리고 가라 했다. 엄마는 포기하지 않고 다른 병원을 다니며 실력 있는 신장염 소아과 전문의 고광욱 박사를 찾아내 기어이 내 병을 고쳐 놓았다. 신장염은 음식에 간을 전혀 하지 않고 먹어야 했다. 엄마는 내가 다 낫기까지 꼬박 9년을 반찬마다 두 가지 간으로 만들어 먹이고 도시락도 싸 보냈다. 혜화동 서울대학병원에 6개월이나 입원해 있던 지루한 일곱 살. 내가 좋아하는 딸기, 싱싱한 걸로 주려고 잠깨기 전 새벽을 얼른 걸어 종로 5가 시장을 다녀왔던 엄마. 그런 세월을 살아 건강한 내가 있는데 다 어디 가고 이번 생이 실패라는지. ‘햇살아, 넌 커서 엄마한테 잘해야 해.’하던 엄마 친구의 말이 아니더라도 엄마가 어떻게 나를 키웠는지는 충분히 몸으로 알았다. 생 전체를 부정하는 것 같은 엄마 말이 싫었다. 알면서도 싫었고 아니까 더 싫었다. ‘그런 말 좀 하지 마’ 소리치고 싶었지만 나한테라도 힘든 마음 표현하는 걸 막으면 엄마가 어디다 속을 풀까 싶어 위로 되라고 말을 다듬어 답을 했다.    

“그동안 열심히 최선을 다해 온 엄마를 알아주면서 힘내면 좋겠어. 실패가 어딨겠어 사는 거에. 자기 몸인데 안 돌보고 막 사는 사람이 실패지. 파킨슨 때매 운동하고 재활치료 꾸준히 받고, 뭘 하면 좋아지나 계속 찾아서 해보잖아. 그것만으로도 의지가 대단한 거래.”     



‘네 말을 들으니 기운이 난다’는 말이 듣고 싶었는데 이번엔 동생네 걱정을 한 가득 늘어놓는다. 안 좋은 일이 있으면 빨리 털어 버리지 않고 자꾸 되뇌며 곱씹는 엄마인 거 뻔히 알면서 본인 힘든 얘기를 엄마한테 한 동생이 원망스러웠다.



도파민이 나오지 않아 생기는 파킨슨병은 기분 좋은 생각 많이 하면서 맘 편히 살아야 더 나빠지는 걸 막는다는데 우리 엄마 기운 좀 돋워주려면 뭐가 좋을까 궁리하던 중 폰에 깔린 팟 캐스트 앱에 구술 생애사 최현숙 씨의 얘기가 나오기에 책을 사서 보내 드렸다. 엄마가 자서전 쓰기를 해 보면 좋겠다는 마음에서였다. 젊은 시절을 돌아보며 ‘하면 기분 좋았던 일’ 떠올리는 시간을 새롭게 가지면, 아빠 밥은 대충 차리고 먹거나 말거나 제 할 탓이라고 생각하면서 글 쓰느라 바빠지면 엄마한테 좋지 않을까 해서. 자서전이라고 하니까 엄마도 해보고 싶다고 했다.   


  

‘파킨슨 환자를 위한 무용 프로그램’ 워크숍을 운영하는 혜화역 근처 ‘전문무용수지원센터’에 도착하니 엄마 또래의 할머니, 할아버지 스물넷이 왔다. 생각보다 많아서 슬쩍 섞여 끼어들기 어색하지 않을 듯했다. 전면에 큰 거울이 붙었고 20대나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선생님이 ‘솔’ 음 목소리로 쾌활하게 진행했다. 슬리퍼가 있어서 신고 들어갔는데 자주 다녔는지 몇 분은 무용화를 신고 있었다. 추운 날이라 굳은 몸을 펴는 동작을 먼저 했다. 동작이 능숙하진 않았지만 다들 열심히 선생님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였다. 엄지부터 검지, 중지 차례로 접었다가 다시 거꾸로 접기를 세 번 했다. 선생님은 한꺼번에 주먹을 쥐지 말고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으라고 알려주었다. 

첫날이니까 뒤에서 구경만 하겠다던 엄마는 손을 들어 열심히 따라 하고 있었다. 엄마의 보호자로 뒤에 앉아 있으려니 아들 네 살 때 문화센터 ‘유리드믹스’ 프로그램을 신청해서 보호자로 뒤에 앉아 있던 생각이 났다. 아들은 선생님 말을 듣지 않고 강의실 여기저기 뛰어다니거나 수업 도구 넣는 장에 가서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해서 민망했는데 엄마는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성실하게 동작을 하는 모범 학생이었다. 모범 학생의 보호자가 되는 일은 조금 흐뭇한 거구나. 느껴보지 못한 흐뭇함을 엄마 덕에 느끼다니 신선했다.     



늙고 병든 데다 사이도 좋지 않은 부모님 사는 모습을 떠올리면 내가 다 책임져야 할 것 같아 마음이 무겁고, 하는 것도 없이 부담되는 마음만 컸다. 좋아질 일보다 나빠질 일만 남았다는 생각이 지레 지치게 하는 것 같다. 높고 험한 언덕을 오를 때 사람들은 빨리 넘어가려고 보폭을 더 넓혀 빨리 걷는다 한다. 그러면 숨이 쉽게 차고 금세 지친다. 이때는 오히려 보폭을 반으로 줄여 올라야 할 때다. 쓸 데 없는 생각 말고 다음 주 엄마 신게 미끄러지지 않는 덧신이나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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