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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 Dec 30. 2019

로맨스 드라마가 다 배렸다

내가 로맨스 드라마에 폭 빠져서 보는 건 그녀 때문에 어쩔 줄 모르는 젊은 그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녀가 사랑스럽고 예뻐서 속수무책으로 빠져드는 걸 보는 마음은 저릿저릿하게 좋다. 자꾸 보다 보니 드라마의 주인공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인기 많은 로맨스물이 유행할 때 남자 배우 때문에 일주일에 한두 번은 집집마다 분란이 생긴다는 입소문을 듣는다. 드라마랑 비교하니 애인이 못마땅해져 버리는 일이 내게도 종종 있었다. 매미도 아니면서 8년이나 긴 연애를 하고 나는 J와 결혼했다. 풋풋한 대학생활을 함께 보내고 군대 다녀오고 직장 생활을 막 시작하기까지의 긴 시간 동안 좋은 일이 왜 없었겠냐만 오늘은 쌓여 있던 불만에 집중해 본다.    



최루탄이 터지는 종로 3가 10차선 도로에서 남주가 여주의 손목을 잡고 전투경찰과 백골단을 피해 어느 좁은 골목으로 도망간다. 좁은 담 옆에 숨는다. 너무 좁아 바싹 붙어 선다. 두 남녀는 눈빛이 마주치고 갑자기 분위기는 데모 현장의 급박함에서 에로틱 느릿한 시간으로 바뀌고 둘은 심장소리를 들으며 입술을 포갠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 어느 드라마 한 장면이다.



91년 대학 1학년 봄, 4월부터 주말마다 집회가 있었다. 대학생이 시위에서 억울하게 맞아 죽고, 이에 항의하여 분신이 이어지는 격한 분위기 속에서 분개한 나와 동기들은 선배들과 같이 집회가 열릴 때마다 나갔다. 그러다 하루는 중간고사와 집회 날짜가 겹쳤다. 동기들은 시험을 보고 선택과목이 달랐던 나만 J와 같이 갔다. J는 당시 학점이 모자라 졸업을 못한 채 5년째 학교에 등록금을 갖다 바치던 선배였다. 그는 내게 과목을 아주 잘 골랐다며 헤헤 웃었다. 종로 3가 찻길에 앉아 선두의 구호를 따라 외치며 힘을 준 팔뚝을 서툴게 올렸다 내리고 있었다. 20여분이 지날 즈음 경찰들이 경고방송을 하더니 퍼퍼펑 페퍼포그 차에서 최루탄이 터졌다. 바닥에 자욱한 연기가 너무 매워 눈을 뜰 수 없어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 겨우 한쪽 눈만 조금 떠보니 바로 내 앞에 시커멓게 쫙 깔린 전투경찰이 눈에 들어왔다. 선두 대열이 흩어지자 내가 맨 앞에 놓인 것이다. 공포감에 꼼짝도 못 했는데 오히려 시위대 없이 한 두 명만 있으니 천천히 걸어서 인도로 나올 때까지 아무도 나를 잡으러 오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옆에 있던 J는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J에게 많이 실망했지만 같은 서클에서 1년을 지내며 정이 들어버린 나는 1학년이 끝날 무렵 그와 사귀기 시작했다. J는 대선을 도와야 한다며 군 입대를 미루고 수원의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는 나랑 만나면 뭘 할지 정해 오는 일이 없었다. 매번 내가 어디를 가자, 무엇을 먹자, 무슨 영화를 보자고 해야 갈 곳이 정해졌다. 대신 하자는 일에는 토 달지 않고 다 했다. 처음 하는 데이트에 신이 난 나는 둘이 다닐 코스 짜는 재미를 즐겼으나 어느 날부터는 아무 생각 없이 몸만 오는 J에게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당시엔 영화를 예매하려면 미리 직접 극장에 가서 표를 끊어야 했는데 그런 일도 늘 내가 했다. 드라마를 보면 여주를 감동시키는 남주의 깜짝 이벤트도 많고 처음 마음 고백을 할 때 영화 티켓을 내밀기도 하던데 나는 이게 뭔가 싶어서 불만을 토했더니 J는 “어디를 가든 상관없고 나는 너랑 같이 있기만 하면 좋아.” 했다. 이 말을 로맨틱하다 여기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짜증이 났다. 같이 도로 한 복판에서 손 붙잡고 몇 시간이고 서있을 것인가? ‘어디를 가든’의 ‘어디’는 누군가는 정해야만 하는데 말만 던져 놓고 어쩌라는 건지 너무 무성의하게 여겨졌다.



드라마에 보면 남주는 여주를 집 앞까지 꼭 데려다주고 헤어지기 싫어 동네를 몇 바퀴씩 돌다가 전봇대 아래서 키스를 하는 장면이 꼭 있다. 그러다 퇴근하던 여주의 아버지에게 딱 걸려서 더러는 두들겨 맞고, 혹은 집에 끌려 들어가 취조하듯 너 뭐하는 놈이냐고 사윗감 시험을 보게 되기도 한다. 로맨스 드라마의 중요한 장면은 다 여주를 데려다주고 돌아서기 전에 일어났다.



J가 자취하던 집과 우리 집은 지하철을 타고 버스로 갈아 타 1시간 30분이 걸렸는데 그는 멀미가 심하다며 지하철은 함께 탔지만 버스 정류장까지만 날 데려다줬다. 밤늦은 시간 애인을 혼자 버스 태워 보내다니 아무리 멀미가 심해도 그렇지 사랑의 힘으로 그 정도도 못하나? 그게 그렇게 야속하고 서운하고 약 올랐다. 



로맨스물의 하이라이트는 프러포즈다. 드라마를 보면 종류도 다양하고 창의적인 프러포즈가 정말 많다. 차 트렁크에 풍선을 가득 넣었다가 여주를 트렁크 앞에 세워두고 확 열리게 하여 색색의 풍선이 하늘로 날아가고 고백의 말을 적은 작은 플래카드도 같이 날아오르는 것. 아니면 멋진 레스토랑을 예약하여 미리 주방에 말을 해서 디저트 케이크 속에 프러포즈용 반지를 넣어두었다가 여주가 깜짝 놀라는 척이라도 할 기회를 주는 방법, 하다못해 꽃다발이라도 주며 달달한 멘트와 함께 프러포즈하는 방법. 식상하지만 막상 당사자가 되면 기분 좋고 가슴 떨릴 프러포즈는 쌔고 쌨다. 



J도 나도 취직을 했고 우리는 서로 직장이 멀어 일주일에 한 번은 하던 데이트가 한 달에 한두 번으로 줄어있던 때였다. 계절도 기억이 안 나고 어딘가로 가던 좌석버스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저기 가려면 몇 번 버스 타야 하냐고 묻는 듯한 심상한 말투로  “우리 언제 결혼할래?” J가 내게 물었다. 이거 프러포즌가? 그의 뇌구조에 결혼 전 프러포즈를 해야 한다는 건 들어있지 않나 보다. 나는 하이라이트에서도 드라마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프러포즈도 없이 결혼했다며 결혼 후에도 같이 보던 드라마에 멋진 프러포즈가 나오면 J를 구박했다. 그러면 그는 몹시 난처한 표정을 짓곤 했고 그래도 난 분이 풀리지 않았다.    



결혼 후 아들 하나를 낳고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냈다. 졸업 후 2011년부터 어린이집 엄마들과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경제적 발전은 우리를 풍요롭게 하는가>로 시작해서 <빨래하는 페미니즘>, <젠더와 사회> 등 다양하게 읽고 토론했다. 책에 나온 내용을 내 생활과 견주어 보면서 과거의 경험들을 재해석하게 되었다. 올해 2월부터는 ‘감응의 글쓰기’와 ‘메타포라’라는 글쓰기 강좌에서 페미니즘 책을 여러 권 읽었다. 학인들과 읽은 책에 대해 같이 이야기 나누면서 자기 경험을 글로 썼다.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19호실로 가다>, <여자 전쟁> 등이 여운이 큰 책이다. 글로 쓰려다 보니 더 분명하고 적극적으로 내 생각과 행동과 말을 해석해보게 되었다.



삼십 년이 다 되어가는 연애사 중에 J에게 불만인 점만 한 데 모아놓고 보니 의문이 생겼다. 평소 자유롭고 독립적인 사람이기를 원한 내가 J에게 기대한 행동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중고 시절 체력장 특급으로 달리기도 잘하는데 데모하러 나갔다가 최루탄 터지면 잽싸게 뛰면 되지 왜 애인이 내 손 붙잡고 뛰어주길 바란 걸까? 남자 선후배들은 데모가 있던 다음날 학과실에 모여 ‘너 어제 어디로 튀었냐? 나는 종 3쪽으로 갔지. 저는 시장 쪽으로요.’ 하며 서로 어떻게 무사히 집에 갔는지 무용담을 나눴는데 그러면 충분하지 않은가? 데이트 코스 짜기는 잘하는 사람이 하면 되는데 왜 남자가 이끌어주길 바란 걸까? 프러포즈도 왜 여자는 남자에게 받는 거라고만 생각했을까? 밤이라도 집 앞까지 등이 훤한데 데이트 후에 꼭 남자가 데려다줘야 할 이유는 뭔가? ‘남자는 여자를 적극적으로 이끌어주고, 지켜주며 뭐든 나서서 척척 해야 한다.’는 생각이 나도 몰래 내 속에 들어와 있음을 발견했다. 뒤집으면 ‘여자는 수동적이고 약한 존재다.’라는 생각이 아닌가. 그동안 J를 구박했던 일이 좀 미안하다. 드라마를 보면서 키웠던 판타지라고 애꿎은 드라마 탓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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