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살 Apr 30. 2020

<아무튼, 메모>를 읽고

정혜윤을 알게 된 것은 이슬아의 <깨끗한 존경>을 읽고서다. 내가 좋아하는 이슬아가 정혜윤을 너무나 좋아하고 있구나 느껴지는 인터뷰를 썼다.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는 '다시'이다. 정혜윤은 사람들이 '다시'라고 말하는 마음을 사랑스럽게 느끼는 것 같았고 나도 동의했다. 사람들이 다시 잘해보려고 마음을 내는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다. 특히 배우는 학생이 낙담했다가도 다시 한번 해보겠다고 말하는 의지는 멋지고 키워주고 싶은 능력이다.


정혜윤이 쓴 책이 예상보다 많았다. <사생활의 천재들>을 제목이 맘에 들어 골라 읽었는데 예상을 뛰어넘게 글에 나온 사람들의 매력에 감탄했고 정혜윤의 철학적 사유가 좋았다. 문장도 너무 내 맘을 끌었다. 알고 보니 <사생활의 천재들>을 좋다고 하는 선생님이 많았다. 나는 선택을 잘했다는 으쓱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 책은 직접 구입해서 여러 번 곱씹어 읽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읽다가 너무 좋아서 중간에 서평을 썼을 정도다.  


<아무튼, 메모>는 최신작이다. 올해 3월에 나왔다. 선배의 일화로 시작하는 앞부분은 <사생활의 천재들>과는 달리 경쾌하고 재밌었다. '메모해둘걸' 편은 메모의 중요성을 말하는 내용이지만 주제와는 상관없이 나는 글에 나온 선배처럼 듣는 사람이 빠져들도록 이야기를 시작하는 재주를 가진 사람이 부럽고 관심이 갔다.

선배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었고 읽다가 정혜윤은 상당한 이야기꾼 면모가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이 언급된 부분을 읽고 '아, 내가 들었던 그 팟캐스트 얘기네' 반가운 마음에 정혜윤 편을 찾아 들었다. 목소리는 내가 그렸던 이미지와는 다르게 더 카랑하고 높고 빨랐다.


<아무튼, 메모>도 좋았지만 아직 나의 베스트 '아무튼'을 넘어서진 못했다. <아무튼, 술>과 <아무튼, 피트니스>, <아무튼, 떡볶이> 가 베스트 3인데 하나만 꼽으라고 하면 괴롭다.


다음은 인덱스 테이프를 붙인 부분을 옮겨 적겠다.   


삶을 즐기라고 하지만 아주 많은 사람들이 삶을 견디고 있지 않은가? (51)


-삶이 즐길 만한 것이라면 아마 즐기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너무 당연한 말을 굳이 꺼내어 발화하는 게 더 이상한 법이다. 그렇다면 삶을 즐기기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나는 무엇을 할 때 삶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할까?



나는 이 사회와 닮지 않은 사람이 좋고 그런 사람을 만나고 알게 되는 것이 가장 재미있다.(51)


돈이면 다 된다가 야기한 나쁜 결과를 수없이 알고 보았다. 한국 사회에 널린 수많은 죽음을 생각하면 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 정도로 강도 높은 자본 중심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굴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53)



나는 재미, 이해관계, 돈이 독재적인 힘을 갖는 사회에서 살고 싶지 않아서, 우리 사이의 빈 공간을 아무렇게나 채우고 싶지 않아서, 아무렇게나 살고 싶지 않아서, 좋은 친구가 생기면 좋겠어서, 외롭기 싫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의 힘과 생각을 키우는 최초의 공간, 작은 세계, 메모장을 가지길 바라 마지 않는다.(55)



괴로움 속에서 말없이 메모하는 기분은 얼음 밑을 흐르는 물소리를 듣는 것과도 같다. 곧 봄이 올 것이다.(57)



놀라운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 그 충격으로 감전되는 것이 좋다.(69)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라는 말은 심오한 깨달음의 표현이라기보다는 꿈을 꺾는 데 악용된다.(88)


읽기는 읽기를 불러온다. 다음에 읽을 정혜윤 책으로 <인생의 일요일들>과 <마술 라디오> <침대와 책>을 골랐다. 가운데 책은 인터뷰집이고 나머지는 에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단순한 진심> 전가하기로 기억의재구성 해내기의 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