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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 May 14. 2019

<웅크린 말들>을 읽고

한 시간 수업에 발췌독 하여 이야기하기 좋은 꼭 같이 읽고 싶은 책

웅크린 말들, 이문영.


 내가 가진 신뢰가 있다면 총동원해서 '나를 믿는다면 꼭 읽어봐.'라고 하고 싶은, 몸으로 들이밀고 싶은 책이다.


내가 모르던 세상.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노동이 있고 그걸로 밥을 먹고 가족을 이루고 살고 죽고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 이야기라서 읽기 시작하면 눈을 뗄 수가 없다.

게다가 최근 글 '쓰지 않는 일을 하는' 난쏘공의 조세희가 추천사를 쓴 책이다.
 

'들어가며'에서부터 작가의 표현력에 매료됐다.



언어는 거울이면서 거짓이다.
삶을 비추기도 하지만, 삶을 비틀기도 한다.
삶과 조응하기도 하지만, 삶을 조롱하기도 한다. 


이런 말을 하려면 깊은 사유를 통한 통찰이 필요하다. 그 통찰을 대구와 대조의 구조 속에서 라임까지 맞추었다. 이렇게 하려면 그가 갖고 있어야 할 능력은 얼마만 한 것이며 그가 담아내는 세계의 밀도를 보면 얼마나 자기 마음을 단련해왔을까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첫 편 '석탄'을 읽고 우연히 '나오며'를 읽었다.(나는 책을 읽을 때 목차, 들어가며, 나오며를 읽고 다시 앞으로 가서 처음부터 읽곤 한다. 그러면 작가와 결이 맞추어져 공감이 훨씬 잘 된다.) 그러다가 소름이 돋았다. 안산이 계획도시여서 초기 40퍼센트는 강원도 이주민으로 채워졌다고 한다. 탄광에서 막장보다 더한 젠장의 삶을 살다가 이대론 죽게 생겨 옮긴 안산. 거기서 저임금 노동자로 살며 아이를 학교에 보냈는데 수학여행에서 세월호를 타고 돌아오지 못했다? 아, 너무 충격적인 아픔이다. 어떻게 이런 삶이 있지?


'어떻게 이런 삶이 있지?'하고 생각하며 첫 편을 읽고 나면 그보다 더하다거나 덜하다거나 자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닌 새로운 충격과 비참, 참담, 분노와 슬픔의 사연들이 나오고 나오고 또 나온다.

하지만 이 책은 읽어야 한다는 사명감까지 불러일으킨다. '애써 말해야 하는 삶들'이기 때문이다.



애써 말해야 하는 삶들이 있다. 말해질 필요를 판단하는 것이 권력이고, 말해질 기회를 차지하는 것이 권력이다. 말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권력과 거리가 먼 존재일수록 말해지지 않는다. 말해지지 않는 것들이 말해지도록 길을 내는 언어가 절박하다.(478쪽)



세기적 사건의 충격보다 끊어 낼 수 없는 그저 그런 일상이 쌓아 온 이야기의 전복성을 믿는다. '우리'의 편안한 일상을 지탱하는 '우리'의 가혹한 현실을 발견하는 것이 이 시대 언어와 문자의 최전선이다.(480쪽)

작가의 말대로 우리의 일상을 편안하게 흘러가도록 지탱하는 가혹한 현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언어가 있다면 읽어주는 눈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겨레 기자로 이문영이 르포에 담아낸 세계는 '우리가 집(시멘트)을 짓고 그 집을 덥혀(석탄, 전기) 온기를 얻을 때, 도시를 밝히고(전기) 그 편리(서비스) 아래서 먹고(밀) 사랑(표준국어대사전)할 때, 더러움(얼룩)을 지워 깨끗함을 얻고 병균을 가둬 청정(천국)을 보장받을 때, 우리의 편안한 일상은 우리 밖의 가혹한 현실 위에 서있다. 우리의 무탈을 위해 위험해지는 땅(섬)과 우리가 외면한 일을 대신하는 사람들(한국). 그들을 몰아넣고 밀어내며 유지되는 나라(우리나라). 안과 밖의 경계가 흐려지는 그 순환(세월)의 끝엔 결국 우리가 있다.'라고 할 때 괄호 안의 것들이다.

 

문체에는 긴장시키며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다. 비참하다거나 슬프다거나 잔인하다거나 분노가 치민다거나 하는 단어를 전혀 쓰지 않으면서 그것들을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글에 나오는 사람들의 삶으로부터 비정한 세계의 차가움을 서늘하고 냉정한 문장으로 섬뜩하게 알게 한다.
  


사람이 의지해 살 수 있는 모든 조건이 제거됐다. 사람이 살 수 없는 조건에서도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현실만 끝내 제거되지 않았다.(12쪽)

-제거되어야 할 것이 남아 끈질기게 남아 있고 제거되면 안 되는 것이 제거되는 현실의 차가움을 '제거'라는 선뜩한 단어로 대조적으로 표현하였다.




언어는 때로 선동이었고, 자주 기만이었다.
과거 그를 '산업 전사'라고 칭했던 언어는 현재의 그를 '노가다'라고 불렀다. 석탄 증산을 '애국'이라며 독려했던 언어는 어느 순간부터 감산과 폐광이 '합리화'라며 말을 바꿨다. 언어를 정의하는 권력은 그와 동료들의 정체성을 극단으로 뒤바꾸며 언어를 감염시켰다.(14쪽)

-언어를 정의하는 권력에 대한 시니컬한 비판의 칼날이 느껴진다. 말을 바꾸는 권력자가 얼굴 없이 오염된 언어로 나타난 현실을 실감 나게 표현하였다.




일의 명칭은 우아했고, 일의 내용은 거칠었다.(29쪽)

- 명칭을 우아하게 붙여 놓고 힘든 일을 시키는 기만적인 권력에 대한 통찰과 대구 대조를 효과적으로 사용하였다.


고향에선 질 좋은 굴비가 말랐다. 아버지는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으며 굴비처럼 뼈가 말랐다.(75쪽)


-팔려고 널어놓은 질 좋은 굴비가 마르는 동안 아버지는 뼈가 마르는 너무도 비참한 삶을 살았음을  '말랐다'는 서술어 하나로 표현하다니





땅바닥에 굵은 쇠고리가 하나 있었고, 쇠고리 옆에 파란 안전모가 있었고, 안전모 옆에 모래로 덮은 흔적이 있었고, (중략)
그리고 도시락이 있었다.(53, 57쪽)


- 이 문장들은 글의 시작에 나오고 끝에 다시 그대로 나온다. 보통 작가들을 같은 단어도 두 번 쓰지 않고 변주해서 쓰는데 똑같은 문장을 맨 앞과 맨 뒤에 반복하여 놓았다. 사연을 알게 되면 앞에서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사물 하나하나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아버지 김철기 씨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쇠고리, 안전모 그리고 사고시각 오후 4시가 넘도록 뚜껑도 열어 보지 못한 아버지의 '도시락'. 알아야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각자가 사는 지역과, 처한 현장과, 속한 노동과, 견디는 삶과, 흘리는 눈물과, 머금은 웃음과, 당하는 차별의 언어들이 조각을 맞추는 동안 '한국의 뒷면이자 한(恨)국의 정면'이 포착되기를 기대한다. 그 언어들로 두 한국 사이의 숨은 경계를 파악하고 이야기할 수 있을 때, 말해지지 않던 것들이 말해지며 두 세계를 분리해 온 장벽도 낮아질 것'(479쪽)이 라는 생각으로 쓴 것이다.


두 세계를 분리해 온 장벽이 낮아지는 날이 오길 간절히 바라며 선생님들이 학교에서도 학생들과 함께 읽어보면 좋겠다. 장별로 발췌 독도 가능하여 한 시간 수업에 읽고 얘기 나누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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