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살 May 29. 2019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를 읽고

내가 쓰고 다듬는 문장에게도 안부를 전하는 사람

팟캐스트 ‘책읽아웃’에서 <문장 수리공 ‘김정선 작가’의 모든 것>을 아침에 듣고 볼 일을 보러 집을 나섰다. 일을 마치고 집에 가려니 날씨가 좋아 그냥 들어가기 아까웠다. 예정에 없던 서점 나들이를 했는데 시골 작은 책방이어서 아기자기한 공간에 주인이 가려 뽑은 책들이 꽂혀 있었다. 동화책이 반 정도 됐고, 나머지는 일반 책들이었다. 책방의 입장료가 서점에서 1인 1책 구입이라는 안내문을 읽고 살 책을 둘러보았다. 무급 휴직 중인 내게 살 책이란 한번 후루룩 재미로 읽기 보다는 두고두고 읽을 만한 것이어야 했다. 마침 아침에 팟캐스트에서 들은 김정선 작가의 책이 눈에 띄었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읽다가 가기 전에 계산하면 된다는 주인의 말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읽어 내려갔다.    


지적으로 게을러 보이는 표현    


책을 읽을 때 차례를 먼저 본다. ‘적·의를 보이는 것·들’이란 제목도 재밌었지만 ‘지적으로 게을러 보이는 표현’이 뭘까 호기심이 들었다. 읽다가 쏘옥 빠져들었다. ‘표현을 더 정확히 하려고 고민할 필요 없게 만들어 주는 습관처럼 쓰는 표현’에 대한 글이었는데 예시를 보니 정말 그랬다. 분명하게 밝혀 써야 하는데 뭉뚱그려 쓰면서 대충 넘어가는 표현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중에서도 ‘-에 대한’이라는 관형형은 나도 자주 쓰는 표현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미래가 불확실해서 불안한 건지, 미래가 없을 것 같아 불안한 건지, 미래에 맞서기가 불안한 건지’ 생각을 더 벼려 써야 분명하다. 어, 이 사람 뭐지? 교정 교열자라고 해서 단순한 맞춤법과 띄어쓰기, 문맥이 어색해지는 번역투의 문장 정도 고치는 일을 하나보다 했는데 차원이 달랐다. 이 책을 사야겠어.     

김정선은 ‘한 글자라도 더 썼을 때는 문장 표현이 그만큼 더 정확해지거나 풍부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남의 문장을 다듬는 사람이다. 나도 동의하는 원칙이다. 필자는 쓰지 않는 게 좋다는 표현을 이야기 하면서도 그게 ‘반드시 제거해야 할 바이러스는 아니다. 문장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여지를 갖는 묘미를 보여준다.     

문장의 주인은 문장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필자가 꽤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걸 알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앞부분과 뒷부분에 반복하여 쓴 것이 그 증거다. 

‘문장의 주인은 문장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문장 안에 깃들여 사는 주어와 술어다.' 글쓴이가 손가락질 하는 듯 보이는 지시 대명사와 ’이렇게‘라는 말은 제한해서 쓰라고 한다. 또 문장 기준점을 내가 위치한 지점에 두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데 안 그러면 자연스럽지 않은 문장이 된다는 말.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인터뷰 글쓰기를 하다보니 중요성을 깨달았다. 인터뷰이가 보이지 않고 인터뷰어인 글쓴이가 글에 알짱거리면 안 된다는 것 말이다. 마지막 꼭지 ’문장 다듬기‘에서도 한 번 더 얘기하고 있다. 한국어 문장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계속 풀어내어 펼쳐지도록 써야 한다면서. 


여기에 나온 이야기는 너무도 동의가 되고 문장도 멋져서 필사를 했다. 시나 철학책, 수필집이 아닌 이론서를 필사하기는 처음이다. 외우고 싶을 정도다.


이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문장은     


’나는 ……‘이라고 쓰는 순간 글을 쓰는 ’나‘는 이미 자신과는 다른 ’나‘를 창조하는 셈이다. 내가 쓰는 문장의 주인에게 나 또한 적당한 거처를 마련해 주고 성격도 부여해 주고 할 일도 만들어 주어야만 한다. 그래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온전하게 펼쳐지는 글을 쓸 수 있다.    


감응의 글쓰기 합평에서 은유는 자주 말한다. 글 속 인물의 생각만 나오게 하지 말고 말하고 행동하게 하라고.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있게 하라고. 인물, 사건, 배경. 필자가 말하는 ’거처‘는 배경, ’성격‘은 인물, ’할 일‘은 사건인 것이다. 역시 기본은 교과서고, 원리는 어디서든 통하는 법.  

  

역시 20년 넘게 교정 교열 일을 한 사람의 식견은 남다르다. 흥미진진함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서브 플롯으로 펼쳐지는 ’함인주‘와의 메일 사건은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다. 처음엔 이론만 써 놓으면 독자가 지루할까봐 재미를 위해 넣었나 생각했는데 다 읽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내놓은 교정 교열의 원칙을 충실히 따른 모범 사례로서 짧은 에세이를 쓴 것은 아닐까? ’메일 스토리‘를 따로 다시 읽어봐야겠다.    


이 책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우리말답게 잘 펼쳐내고, 효과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생각을 정밀하게 밀고 나가는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 반갑게 읽을 책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