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너무나 사랑해_안 에르보

어른 그림책 추천

by 햇살


모두가 읽어봤으면 좋겠다고 소개해주신 어른의 그림책.


생활글쓰기의 마지막 주제 '다시 사랑'을 위한 책이다.


희망바로대출 서비스를 통해 책을 빌려다 읽다가 너무 멋진, 외우고 싶은 구절이 많아서 워드 작업을 해 두었다.


(간직하고 싶을 만큼 좋다는 말)


윤경희 샘이 서평에서 말했듯이 '말의 한계에 봉착하여 새로 발명하는 말'이 너무 멋졌다. 가령 이런거다. 지극히 내 취향이겠지만.






횡격막 위로 나무 세 그루가 자라고
구두는 저절로 걸어가지.
심장에 희고 맑은 의식이 파고들어 은하수를 이룬다.
몸 안에서 별들이 부서지고 태어난다.
밤을 만질 수 있을 것만 같아. 잠이 오지 않는다.
소스라치게 차가운 향기 속에 수액이 흐르고 꽃눈이 부푼다.
나는 너를 너무나 사랑해
잉걸불 타오르는 소리가 그윽하다.
지붕을 열어 흐르는 구름을 다 들이킬 수 있지.
너는 잠든다. 졸음이 나를 훔치려 한다.
하지만 나는 깨어 우리를 지켜본다.
밤은 구름 뒤로 오래 달려간다.
숲이 박쥐들에게 나지막이 말은 건다.
하늘의 가장자리는 물풀 빛,
네 손끝에 찰박이다 잦아드는 물을 헤아려 본다.
느껴져? 나는 묻는다.
너는 물의 웃음을 지녔다.
나는 너를 너무나 사랑해 계단을 두세 칸씩 뛰어오르지.
사랑밖에는 아무 것도 할 게 없어. 그거야말로 대단해.

『나는 너를 너무나 사랑해』, 안 에르보, 봄날의 책, 2025.6.

서평을 읽고 과장이란 게 이렇게 매력적일수도 있구나.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과장이 익숙지 않은터라 남의 말에 호응할 땐 종종 가능하지만, 나를 표현할 땐 정말 몸이 나가지 않는 게 과장이라서. 그리 즐겨쓰지 못하는 수사법.


"돌멩이나 공을 쥐고 온몸을 활처럼 구부려 반동력을 극대화한 다음 저 멀리 떠나보내듯, 즉 사물 본래의 무게에 던지는 자의 힘을 더해 추진력, 관통력, 파괴력을 증강시키듯, 과장은 사태에 그것을 지시하는 이상의 말을 더해 그것의 파장이 더 크게 멀리 확산되게 한다."


파장을 더 크게 멀리 확산시키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서 부풀어오를 땐, 속수무책으로, 도리 없이 과장을 하고 싶어질 거 같다.





윤경희 선생님의 서평 : 사랑의 동어반복과 변주



안 에르보의 책을 펼쳐 서너 페이지 넘기자마자 나는 단숨에 빨려들었다. 이 사람은 누구인가, 세상에 이런 예술가가 있다는 것을 나는 왜 이제껏 모르고 살았을까


1975년생 벨기에 작가. 이미 스무 권 넘게 번역된 그림책은 물론 아직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미지의 작업까지, 안 에르보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모든 것을 보고 싶다는 건강한 탐식의 욕구가 생겨난다.


책을 읽을 때 나는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민감하게 주의를 기울인다. 내게 독서는 안구와 뇌를 넘어 온몸으로 하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모든 책은 고유한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 책이 독자에게 발산하는 에너지와 독자가 책에 투영하는 상상은 상호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양자의 형상과 성질을 변화시킨다. 안 에르보의 책이 나를 빨아들이는 것 같다면, 이는 적어도 나의 상상 안에서 이 책이 강력한 흡입력, 지지력, 탄성을 지닌 구멍, 밝고 따스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마력적인 외피, 나를 걱정 없이 맡겨도 될 안전한 액체성 은신지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안 에르보가 만든 모든 것을 먹고 싶어졌다면, 이는 그의 작업이 감상자의 정신과 섭생에 이로운 자양분처럼 작용하고 심지어 향미가 아주 독특하고 탁월하다는 뜻이다. 낯모르는 타인들에게도 무작정 같이 읽자고 조르고 싶을 만큼, 그러려고 번역하고 싶을 만큼.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은가. 허풍 떠는 것 같은가.


과장이 지나친 것 같은가.



거짓이 아니며, 허풍이 아니며, 과장이라면 훨씬 더 잘하고 싶다. 왜냐하면 안 에르보의 『나는 너를 너무나 사랑해』가 내게 일깨운 가장 중요한 것은 과장의 아름다움과 힘이기 때문이다.



과장(hyperbole)은 고전적 수사법 중 하나로, 그리스어로 '너머'를 뜻하는 'huper'와 '던지다'를 뜻하는 'ballo'가 결합한 낱말이다. 돌멩이나 공을 쥐고 온몸을 활처럼 구부려 반동력을 극대화한 다음 저 멀리 떠나보내듯, 즉 사물 본래의 무게에 던지는 자의 힘을 더해 추진력, 관통력, 파괴력을 증강시키듯, 과장은 사태에 그것을 지시하는 이상의 말을 더해 그것의 파장이 더 크게 멀리 확산되게 한다.


고대 로마의 수사학자 퀸틸리아누스는 웅변술 훈련서에서 과장의 기법과 효과를 설명하는데, 정리하며 해석을 덧붙이면 다음과 같다. 과장은 무엇보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과도하게 부풀리거나 지극히 하찮게 축소하여 말하는 방식이다. 안 에르보의 예를 들면, 사랑을 증명하려 "말라카해협을 통과하는 화물선을 전부 삼킬 수" 있다거나, 사랑하는 자들은 어디든 함께여서 물질의 최소 단위인 보손과 페르미온 입자에서도 예외는 아니라고 하는 식이다. 이처럼 사실에 적절하게 부합하지 않는 말은 당연히 거짓이다. 하지만 말하는 자는 "듣는 자를 속이려는 의도가 전혀 없고"(Quint. Ind. 8.6.74), 듣는 자는 그것을 뻔히 안다. 따라서 과장은 말하는 자와 듣는 자가 함께 참여하는 언어유희이다. 허무맹랑하고 얼토당토않고 어처구니없고 터무니없고 때로는 현학적인 말장난을 부리며 재치 있게 웃기고 관대하게 웃어야 하는 것이다. 이때 말하는 자는 듣는 자가 거짓임을 알면서도 동시에 완전히 "믿을 수 없다고 거부하지는"(Quint. Ind. 8.6.74)' 않을 만큼 과장의 정도를 조절해야 한다. 거짓이지만 기꺼이 믿을 수 있는, 과장의 기술과 묘미는 이 범위를 드넓히며 작동한다. 과장에 있어서, 사태와 언어 사이에 낙차가 있어 그 언어는 사태를 정확하게 진술하지 않는 거짓이 될지라도, 사태에 대한 말하는 자의 주관적인 인식과 신념은 참이다. 달리 말하면, 내게 저절로 걷는 구두가 있다는 것은 거짓이지만, 내가 너를 너무나 사랑한다는 것은 참이고, 그저 사랑한다는 단순하고 정직한 말로는 내 사랑의 커다람을 표현할 수 없다는 것도 참이다. 말이 모자란다. 언어의 궁지에 부딪쳐, 과장하는 자는 정직하고 객관적인 언술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다른 말들을 그러잡아 멀리 저 멀리 힘차게 던져 날린다. 폭죽처럼, 묶지 않은 꽃다발처럼, 다리에 금화 한 닢씩 매단 전서구 떼처럼.


그러므로 과장은 잘못이 아니라 오히려 용서와 권장을 받아야 하는 "미덕이다. (••) 왜냐하면 사실이 너무나 막대하여 어떤 말이든 넘어설 때 우리는 크게 부풀려도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우리의 언어는 진실에 미흡하기보다 그것을 초과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Quint. Inst. 8.6.75-76)



세계와 인간의 삶에는 예기치 않은 사건이 항시 발생한다. 심장이 터질 듯한 기쁨이든, 세상이 무너지는 폭력적 고통이든, 기존의 경험과 지식에 비추어 표상할 수 없는 사건과 맞닥뜨리는 순간, 그리고 그것에 온몸으로 먼저 반응하는 순간, 일상의 언어는 무력해진다. 무력감, 궁핍감, 좌절, 얼떨떨함 같은 부정적 정동에 대응하려고, 우리는 담대함을 가장한 허세, 어릿광대의 익살, 천적이나 짝짓기 상대 앞에서 목덜미 깃털을 부풀리는 작은 새의 용기를 뒤섞어, 말을 발명한다, 사건의 진실한 서술에 합당한 말은 아닐지라도 정동의 표현에 진실하고 정직한 말을. 말의 한계에 봉착하여 새로 발명하는 말은 시와 아주 다르지 않으며, 따라서 과장하는 자는 거의 시인이 된다.


사랑은 우리가 언어의 한계와 결여를 절감하는 중대한 사건이다.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최초로 고백한 이후, 우리는 그 말을 수없이 동어반복하는 지경에 이르는데, 물론 그런 상황도 행복하지만, 그 말이 아닌 제발 다른 말로 사랑의 표현을 변주하고픈 욕구가 생겨날 수 있다.


사랑의 말을 변주하면서 사랑의 삶을 갱신하고 싶다. 내가 이렇게나 너를 사랑하는데, 사랑이 이렇게나 엄청나서 그저 사랑해 사랑한다는 서너 음절로는 모자라는데. 사랑하는 자는 사랑스러운 허풍선이 거짓말쟁이가 되기를 자처한다.


연애시에서 과장의 수사법이 남용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너를 너무나 사랑해』는 연애시 그림책이다.


이 책에서 안 에르보는 동어반복과 변주를 한꺼번에 성취하려는 사랑 고백의 욕망을 과도하게 과장하여 과잉적으로 표현한다. 나는 너를 너무나 사랑해, 나는 너를 너무나 사랑해, 나는 너를 너무나 사랑해, 끝없이 돌림노래를 부르며, 횡경막 위로 나무 세 그루가" 자라난다고, 겨우 "새 한 마리가 폴짝" 뛰었건만 수천 킬로미터 멀리 숲속 극장에 일순간 정적이 감돌았다고,


"이구아노돈이 지나가다 멈춰 서서 사진을" 찍는다고 말한다. 행위자의 능력을 초과하거나,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거나, 현실계에서 도무지 가능하지 않은 일들을 태연히 늘어놓는다. 말이 안 되는 말. 말은 현실과 격차를 벌리다 못해 아예 느슨하게 떨어져 나와, "빵 부스러기와 개미핥기를 이어 주는 것은 오직 개미뿐"이라거나 가을과 겨울이 "양말 한 짝에 단추"로 동여매 있다며, 현실의 지시물과 말이 아니라 그저 말과 말을 잇고 동여맨다.


한계를 벗어나 저 멀리 내던져진 말은, 때로는, 아마 입맞춤 때문일까, "나는 L"처럼 장력을 잃고 급작스럽게 끊기기도 하고, "틈이라는 말은 있을 수도 없이 허겁지겁 삼켜" 버린다는 것에서처럼 온데간데없이 실종된다. 한계를 확장하며 마침내 도달하는 지점에서 말은 부서지고, 끊어지고, 멈춘다. 말하는 자의 호흡도 불규칙해진다.


숨이 멎는 듯해, 사랑과 죽음이 혼융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위태롭고 황홀한.



과장은 본질적으로 언어유희이고, 언어유희는 번역에 도전한다. 말이 안 되는 말의 번역은 그 역시 말이 안 되는 말이 되는 게 최선이다. 그러니 과장의 언어유희는 번역에 도전하면서 동시에 번역의 실패를 안전하고 관대하게 면책해 준다. 더 말이 안 되게, 더 재미있게, 더 허풍스럽게, 더 사랑스럽게, 더 아름답게 번역하지 못한 것만이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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