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줄, 2546번 서랍
여덟 번째 줄, 2546번 서랍을 열다.
당신의 인생 최초의 땡땡이는 무엇인가. 나는 초등학교 1학년 시절, 짝지 남학생이 귀찮아서 무턱대고 조퇴를 했다. 그게 바로 인생 최초의 땡땡이였다. 배가 아프다고 했었나 그런 핑계였고 도착한 집에는 엄마만 있어야 했는데, 아버지와 함께 있었다. 아버지는 마침 수박을 자르고 있었고, 그 과도가 얼마나 섬뜩해 보이던지 '큰일 났다' 생각했다. 빤히 쳐다보는 두 사람 앞에서 우물쭈물하다 옆자리 친구가 괴롭혀서 집으로 왔다고 거짓말을 해버렸다. 이미 앞전에 같은 반 여자애가 나를 괴롭혔던 전적이 있어 한바탕 한 뒤였는데 분노한 아버지는 어떤 녀석이냐며 소리쳤고, 엄마는 담임 선생님과 통화를 시작했다. 당연히 통화가 끝나자마자 거짓말이 들통났고 대문 밖으로 쫓겨났다.
집 앞 비상구 계단에서 한참 울고 있을 때, 내 머리 위로 책가방이며 교과서며 온갖 물건이 던져지기 시작했고, 공포에 질린 나머지 눈물도 들어가서 코만 훌쩍거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가방에 내 물건들을 챙겨 담고 비상구 창밖만 바라보며 하염없이 앉아있었다. 문이 열리고 아버지가 나오시더니 당장 따라오라 말했다. 기어이 나를 갖다 버리겠구나 하며 사형집행수 마냥 일단은 따라나섰다. 차에 올라타서 어디론가 향했고, 침묵 속에서 아버지의 입이 떨어졌다.
"너 학교 안 가면 어떻게 되는 줄 아냐, 목에 깡통차고 돈 좀 주세요 하는 거야"
도대체 목에 깡통은 왜 차는 걸까? 지금은 이해하지만 그때의 나는 약간 말귀가 어두운 어린이였는데, 깡통의 의미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깡통의 의미를 곱씹으며 아버지는 그의 일터를 보여줬다.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으므로 그게 진짜 아버지의 일터였는지, 아니면 어디 모르는 일터를 보여줬는진 모르겠다. 학교를 제대로 다녀야 이런 어엿한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아버지와 여전히 깡통의 의미만 되짚고 있는 나. 아무튼 다행히 무사히 집에 들어갈 수 있어고, 그 뒤로 한 번도 학교를 땡땡이쳐본 적은 없다. 물론 대학교 입학 후에는 밥 먹듯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날 모든 게 웃겼다. 수박을 자르던 타이밍에 들어선 나와, 깡통, 아마도 제일 어이없었을 엄마, 아버지. 그리고 나는 이제 막 중학생이 된 막내 동생에게 말한다.
"너 공부 안 하면, 나중에 깡통차고 다녀 인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