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줄, 2389번 서랍
여덟 번째 줄, 2389번 서랍을 열다.
나는 꼬마들을 가르치는 일을 종종 한다.
4세부터 중학생까지 골고루 가르쳤지만,
모르는 걸 알려는 줬지 매를 들진 않았다.
그리고 요즘 시대엔 매를 들면 죄가 된다.
'모르는 건 죄가 아니지만, 모르는 건 매가 된다.'
한 때 우리 엄마의 신념이 아니었을까 한다.
초등학교 입학 후,
새 교과서와 시간표를 받고 처음으로 책가방을 챙기던 날
'음악' 시간에 챙겨야 할 '음악'책이 없었다.
원래도 물건 찾기는 정말 못하는 어린이라 엄마를 불러다 물었고,
그 뒤로 머리통을 여럿 맞았다.
몰랐기 때문이다.
‘음악’이라는 과목이 ‘즐거운 생활’이라는
이름의 교과서에 담겨 있다는 사실을.
교과서를 그렇게 들여다봤는데 그게 '음악' 과목인지는 몰랐다.
내 인생 첫 초등학교였고,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모든 이들이 대부분 그렇듯 초등학교 입학은 한 번이고 그건 처음일 것이다.
(혹시라도 편견이라면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
처음 한 대는 당황,
그 뒤로부터는 공포였고, 수치였다.
몰라서 맞았다는 수치였다.
나는 물음이 적었다.
더 어렸을 적엔 이것저것 묻기도 했겠지만,
언제부터 물음을 삼키기 시작했다.
왜 나를 때리는지 그게 어떤 이유인지
왜 엄마와 아버지가 그렇게 싸우는지
왜 아버지는 집에 잘 들어오지 않는지
왜 서로는 사과하지 않는지 따위를 물으면
영영 나를 어딘가 버리고 올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
음악책이 무엇이냐 묻는 우스운 질문에도 매질을 하니
우습지 않은 질문에는 내 두려움이 공포적인 현실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알아가야만 했다.
그러나 나는 두려웠어도 그때 알았어야 했다.
더 늦은 현실에 모든 걸 알게 된 순간에는
두려움이 공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이 분노가 되고 증오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분노와 증오에 사로잡혀 살아가던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