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줄, 2360번 서랍
여덟 번째 줄, 2360번 서랍을 열다.
아버지가 그렇게 떠나고,
다시 언제 돌아왔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새 집으로 이사 갈 무렵 돌아와 있었다.
이사 전까지는 여럿 일들이 있었다.
엄마의 하나뿐인 직계 가족인 외삼촌이 사고로 돌아가시고,
엄마는 삼촌의 목숨값으로 우리 남매를 키울 집을 샀다.
엄마에겐 그 집이 단순한 집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릴 땐 그저 내 방이 생겨서 좋았고,
어딘가 마음 한편에 여전히 두려움으로 남은
아버지가 그래도 돌아와 좋았다.
온전한 가족으로 지낸 몇 안 되는 시절
이상하게도 몇 안 되는 그 시절이 그렇게 기억이 안 난다.
온통 서랍 천지인 머릿속을 헤매어도, 어느 서랍을 열어도,
질 좋은 종이에 가지런히 써진 기억은 노트 한 권이 채 되지 않는다.
남들은 온전한 가족에 대한 행복한 기억이 몇 장이나 될까
두께는 어느 정도 일까, 몇 권의 분량일까
한 때는 이런 고민이 나를 마구잡이로 찌르곤 했다.
특히 행복한 가족들을 보면 더욱 나를 괴롭혔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다르다.
질 좋은 종이에 가지런히 써 둔 이유가 있었다.
내가 나를 찌를 때마다 굳은살이 박혀 무뎌질 때까지
나를 지키기 위함이었음으로
이제 나는 더는 가질 수 없는 것에 나를 찌르지 않는다.
대신, 지금 내가 지킬 수 있는 가족을 지키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