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 아빠 이혼했어"
아 맞다, 거짓말이야!

아홉 번째 줄, 2955-3025번 서랍

by 각진 동그라미

아홉 번째 줄, 2955-3025번 서랍을 열다.


"이거 비밀인데, 우리 엄마랑 아빠 이혼했어"

9살 내게 가장 무거운 비밀은 '엄마랑 아버지가 갈라섰고, 새엄마와 새언니와 다 같이 산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비밀이라기보다는 내가 죄를 지은 것 마냥 마음을 늘 불편하게 했으며 잠시 즐거웠다가도 금세 즐거움을 깨버리는, 내 9년 인생 최악의 문제였다. 어디에 털어둬야 할지, 까칠한 담임 선생님께 말하기도 곤란하고 그렇다고 가까이 지내는 친척이나 어른조차 없었던 내게 제일 만만한 상대는 친구였다.


친구의 반응은 생각과는 달랐다. "정말? 어떡해?", "그럼 아빠랑 사는 거야? 괜찮은 거야?" 비난이나 야유가 쏟아질 거라 생각했던 내게 친구의 반응은 너무나 따뜻했다. 그런 일이 있고서, 아무도 내게 안부를 묻거나 괜찮냐는 말 한마디 건네 준이가 없었다. 그 애가 최초였다. 틈만 나면 그 애와, 어제는 어땠는지 우리 엄마는 어디에서 지내고 있을지 따위 등을 말하며 며칠을 지낸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어쩐지 초조했다. 내가 그 애에게 전달했던 모든 사실이 언젠간 내게 화살이 될 것만 같은, 나중에는 반에 모든 이들이 내가 '새엄마와 산다', '아버지가 바람이 났다', '새언니가 같은 학교에 누구'라는 둥 그런 말들이 오르내리면서 결국은 혼자가 될 것만 같았다. 잠에 들기 직전까지도 이 두려움에 대한 반추는 끊이질 않았고,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으며 결론적으로는 첫 고백보다 더 큰 부담감을 안고 고백해야 했다.


"미안한데 내가 했던 말들 그건 거짓말이야! 어느 드라마에서 봤던 거야"


그 애는 재차 내게 진짜 거짓말이냐 물었고, 그렇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 애의 굳어진 표정을 보며 나는 더 이상 그 친구와 어울릴 수 없었다. 나도 그 모든 게 거짓말이길 매일 바랬다. 눈을 뜨면 모든 게 내 생생한 악몽이었길, 진짜 그런 드라마를 보고서는 실감 나게 지독하게 꾼 악몽이길 수 없이 바랬다.


이제는 이렇다 저렇다 말할 사람이 사라지고 나니, 입 안이 온통 모래 같았다. 까끌까끌함, 입을 헹궈도 씻어지지 않는 찝찝함. 늘 하교 후엔 어딜 싸다녀야 했고, 저녁 즈음에나 집에 들어갔다. 사실 일찍이 들어가도 아무도 없긴 했다만 그 집에선 내가 '딸'이라는 게 그 존재마저 부정하고 싶었다.


나를 부정하고 싶었다. 내가 없었다면 이런 고통은 느끼지 않아도 됐을 텐데, 그런 내가 안타깝고 또 불쌍했다. 내 자신에 대한 연민은 점점 깊어져, 마침내는 나를 죽음으로 놔주고 싶을 정도로 심각해졌다. 그렇게 나는 점차 땅을 보고 걷는 아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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