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일기
http://youtu.be/ni5RsbpOTPY
http://youtu.be/B4CC0Dx3Uno
( self video !)
C코스를 걷고 있다. 영덕 블루로드의 마지막길이다.
초반에는 끝도 없는 아스팔트를 걸었다. 돌아갈 곳은 없다. 그 어디에도 눈앞에는 망망대해 또는 끝없이 이어진 길뿐이다.
할 수 있는 것은 앞으로 가야하는 것이다.
중간에 한옥 전통마을을 지나쳐갔는데, 갑자기 처마끝의 풍경소리가 들린다. 바람이 분다.
걷고 걸어 대진해수욕장(?.이름도 잘 기억이 안난다) 근처마을에 도착했다.
잠시 또 정자에 앉어 쉬어간다. 정말 무덥다. 땀에 쩔어가고 양볼은 붉게 익었다.
작은 어촌마을을 가만히 둘러본다. 받아 쓰기를 하지 않아서 엄마한테 혼나 훌쩍는 아이 하나가 지나간다.
조금 지나자 엄마와 화해를 하는 듯 하다. 아이와 엄마는 부둣가에 걸터앉아 아이를 엄마 무릎에 눕히고 귀를 파준다.
갑자기 여행을 하면서 내가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느껴옴을 알게 된다.
사실 여행이 아니더라도 서울에서도, 나의 일상생활에서도 보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일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일상에서는 그것보다 신경써야할 것들이 많다. 그런 것들을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이곳에서는 신경쓸것이 없으니 온갖 신경과 눈길이 사소한 것들에게 간다. 그래서 작고 사소한것들 또한 나를 기쁘게 해주고 내 감수성을 자극한다.
시골 마을 구석구석 정경과, 사람들, 별거 아닌 이야기들, 풍경소리, 농사 짓는 모습, 논길. 이곳에서는 시간에 쫓길 필요가 없다.
나에게 시간이라는 개념이 없어진 것 같다. 빠르지 않다. 아주 느리게 흘러가는 이곳의 시간. 맑은 공기.
기분 좋은 낯섬.
걸어가면 놓치지 않고 아주 사소한 부분도 보고 느낄 수 있다.
걷는 여행의 매력은 정말이지 엄청나다.
어떤 집 대분에 그려진 벽화도, 잘 가꿔 둔 한 시골집의 마당도 좋다.
마을 버스를 기다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뒷모습. 깊게 주름페인 손등.
아, 이곳 마을 버스도 할머니할아버지를 가득 태웠을때는 매우 느리게 간다. 덜컹덜컹 천천히 달리신다.
버스기사와 손님들이 모두 웃는 모습이다. 각 자리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웃고 떠드시며 앉아 계신다. 모두가 친구인가?
뽀글파마, 그을린 얼굴, 깊게 페인 삶의 시간, 모든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같은 아침8시 마을버스이지만 서울과는 다르다. 덜컹 덜컹 버스가 달리자, 어르신들은 놀이기구를 탄 아이처럼 버스 손잡이를 꼬옥 잡으신다. 한손엔 지팡이가 있다. 어르신들이 귀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들의 세월도 느껴진다. 시골의 마을버스는 참 푸근하다.
이제 고래불 해수욕장까지 조금 더 걸으면 종주이다.
약 5km는 걸어야 할 것 같다.
아직 개장을 하지 않아서인지 해수욕장은 아주 조용하게 펼쳐져있다.
모래사장. 이곳에서는 조금 외롭다. 회색빛 바다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해수욕장을 옆에 끼고 자전거 도로를 따라서 쭉 걷는다.
뉘엿 뉘엿 해가 진다. 동그랗고 붉은 해가 지고있다.
많이 지치고 물집이 터지고 스쳐서 쓰라리고 가방이 무겁다. 양 어꺠가 계속 아래로 꺼지는 기분이다.
그래도 가끔씩 부는 바람은 정말이지 에어컨보다 훨씬 시원하다-
해수욕장 그런지 텐트를 치고 캠핑하는 사람들이 더러 보인다. 아직은 성수기가 아니라 그런지 사람도 없고, 숲길에 텐트를 치니 좋아 보인다. 부럽다.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서 텐트도 사고 백팩킹을 시작해보고 싶다.
친구들이랑 가족들도 갑자기 생각난다. 같이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걷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전거 종주를 하는 남자 두명이 지나간다. 이번에는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수고하세요" 생생 달려간다. 그래도 인사를 해줘서 고맙다.
버스에 군인들이 많이 타고 지나갔다. 그런데 비웃었다. 젠장 많이 꾀죄죄한가보다, 아님 같잖은 행군을 하고있군 이런건가.
유난히 조용하고 차분한 길이고 시간이다.
오전에 걸었던 스펙타클한 길들과는 너무 다르다. 마음이 차분하고 정리가 된다.
그냥 걷고 있는 이 시간이 너무나 행복하다.
두 다리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높은 건물이 없어 뻥뚫린 앞을 보며 걸어간다.
행복하다~ 라는 말이 입밖으로 나온다. 양팔을 벌려서 바람을 맞이한다. 들숨도 크게 한번 후 ~
아 좋다 ~
잡념도 스트레스도 모두 없다. 서울로 돌아가면 다시 갖게 될테지만, 그건 그떄고 지금은 지금 생각만.
내가 느끼고 봐온 것들, 나처럼 걸었던 또는 걸을 사람들 모두 느꼈으면,
달리 더 표현 할 방법이 없다.
행복은 사소한거구나.
드. 디. 어 종착지다.
몸이 천근 만근. 종주다 !! 성취감 !! - 이런건 없다. 그냥 다 걸었구나.
역시 사람 없고 조용한 동네다. 아직 해수욕장 개장전이라 한산하다고 하신다. 일찍 오길 잘했다.
아주 차분하고 회색빛 바다가 온 동네를 둘러싸고 있다.
잠시 바닥에 걸터 앉아 그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피로가 조금씩 풀리는 기분이다. 언제 힘들게 덥게 걸었냐는 듯이.
편의점에가서 탄산수를 샀다.
캬---------------- 맥주만큼 시원하다.
바다는, 조용한 바다는 사연있는 남자와 같이 느껴진다.
왜 사람들이 고민이 있거나 실연을 당한 사람들이(티비에서) 우울한 느낌의 바다에 오는지 알 것 같다.
나는 그런적이 없지만, 왜인지 알 것 같다.
저녁 먹을 곳이 마땅치가 않다. 식당도 몇군데 없고 숙소도 몇군데 없다.
근처 슈퍼에서 컵라면과 과자를 샀다. 아저씨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슈퍼앞 벤치에서 밤바다 공기를 느끼면서 후룩 후루룩 라면을 먹는다.
어느새 해가 져서 깜깜하고 바닷소리가 들린다. 아이들 몇명이 고래분수를 보러간다며 뛰어간다.
슈퍼아저씨는 옆에서 친구들과 없어진 술값의 행방에 관련해서 이야기인지 싸움인지를 하신다. 구분이 안간다.
그저 그마져도 즐겁다.
밤공기가 참 - 좋다. 평소에 잘 안먹는 컵라면도 맛나게 느껴진다.
가방도 벗어 던지고 슬리퍼를 끌며 기지개 한번 쭉 하고 동네를 걸어 본다.
여독이 풀린다. 이 동네도 참 좋다. 이방인은 나뿐이지만. 자연스럽게 녹아나는 기분이다.
평화로운 바다마을의 밤이 그렇게 계속되고 있다.
내일아침엔 다시 영해로 가서 서울가는 버스를 탈 예정이다.
더 길게 할 수 있지만, 일단 이번엔 영덕에서만 트레킹 일정을 마친다.
오늘은 4만원이나 주고 깨끗한 모텔방에서 잔다.
막상 혼자 자려니 강구항에서 편안하고 친근했던 찜질방에 가고싶다.
할머니들 떠드시는 소리 들으며 자던 것이 더 좋았다니,
잊지 못할 2박3일의 블루로드 트래킹 여정, 다음을 또 기약하며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