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가 끝나고 간간이 연락 오는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과 나의 대답이다.
마지막 학기였던 저번 학기는 마치 폭풍과 같이 지나갔다. 매일 매일 학교에 나가고 정신없이 수업을 듣고 여러 사람들과 팀 프로젝트를 몇 개월간 진행하고 (동시에 새롭게, 얕게 알게 된 사람이 30명은 되는 듯하다) 시간이 나는 대로 친구들과 식사를 하고 맥주를 마시고 과제를 하고 지친 몸으로 이어폰을 끼고 버스 맨 앞자리에서 한강대교를 끼고 밤을 달리는 하루가 매일 반복되었었다.
그렇게 학기가 끝나고 방학이 오자, 일상은 조용하고 단조로워졌다. 가끔씩 생기는 일탈을 제외하고는 (일탈의 기준은 그때 그때 매우 상대적임..) 꽤나 나만의 규칙적인 생활을 해나가고 있다.
자주 보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오는 연락은 "뭐하고 지내?"이다.
(아 갑자기 생각이 났다. 중학교 때 친구들이랑 한참 "문자메시지를"많이 주고받을 때, 내가 가장 싫어하는 관용적 표현은 "뭐해?"였다. 틈만 나면 "뭐해?"라고 묻는 질문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뭐해라고 물어보며 내게 문자를 보내는 친구에게는 답장을 하지 않았었다. 아주 건방지게;. 가끔도 아니고 틈 만나면 뭐해라고 물어보는 아이가 이상해 보였다. 내가 뭐하는지 뭐가 그렇게 궁금하지.. )
뭐 어쨌든, 뭐하고 지내 나는 질문에는 "그냥 있어. 그냥 살아"
이런 식으로 대답을 하게 된다.
맞다. 사실 딱히 이렇다고 말 할만한 게 없다.
뭐랄까, 나 뭐하고 있어 라고 말할 "대단한 것" 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생각해봤더니, 사실 한 달에 넘게 지나가고 있는 방학 동안 그냥 있어본 적은 한번도 없다.
240시간이 넘는 잠을 잤고
100끼가 넘는 밥을 먹었고
1리터는 족히 넘는 땀을 흘려댔고
에어컨과 선풍기로 5만 원이 넘는 전기세를 쓰고
20편이 넘는 영화를 봐댔고
10편이 넘는 글을 브런치에 써댔고
복면가왕의 숨겨진 가수가 누구일지 귀기울이고 몇 번이나 맞추고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보며 간접여행을 하고
60리터가 넘는 물을 마셨고
덥다는 말을 1000번도 넘게 말했고
꽂힌 노래를 몇십 번이고 반복해서 들으면서 칠 줄도 모르는 우쿨렐레를 튕겨가며 노래를 부르고
이해도 안 가는 영단어를 통으로 달달달 외우기도 했고
긴 머리를 묶어 올리느라 준 힘 때문에 3개가 넘는 머리끈이 끊겼고
5편이 넘는 자기소개서를 쓰느라고 50번이 넘게 고뇌를 했고
20잔이 넘는 아이스 커피와 10개의 가나초콜릿을 먹었고
밤마다 한강까지 자전거를 타고 끈적거리는 바람을 가르고 50km가 넘는 길을 달렸고
30일이 넘게 피부 알레르기약을 먹었고
친구들과 술을 먹고 자전거 음주운전을 했고
남동생을 군대에 보내기 위해 10시간을 넘게 차를 타며 진주를 오고 갔고
하루에 5시간은 넘게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이 생겼고 (나에겐 기적과 같다)
욕심이 생겼고 자꾸만 지금 현실의 내 모습과 다른 이상적인 모습을 상상하는 습관도 생겼다.
등 등 등.
그냥 있다고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 하고 그 순간마저도 끊임없이 에너지든 돈이든 체력이든 소비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싫어하는 뻔한 질문에 나는 세상에서 가장 뻔한 대답을 하고 있었다.
그냥 있다는 것은 사실 거짓말이다.
나는 왜 거짓말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