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이 여자라서 안된다고?

그럼 임신·출산 장려는 왜 하는 건데?

by 하원
오늘은 대학 수학 능력 평가, 수능일이다.


수능을 본 지도 벌써 4~5년 전 일이 됐다. 시간 참 빠르다. 입시만을 바라보고, 대학 합격 여부가 성공의 좌표가 되고, 인생의 패배의 쓴 맛을 처음으로 느꼈던 때가 벌써 그렇게나 오랜 시간이 흘렀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는다.

그 시간 동안 분명 나는 많은 것을 했는데, 잠시도 쉬지 않고 무엇인가 이루기 위해서 여러 가지 해왔던 것들이 많은데 이룬 게 없다고 생각 해왔는데 오늘에서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수시전형이었던 나는 당연히 1지망을 제외하고 나를 포함해서 내 주변 모두가 붙을 줄 알았던 2,3,4,5,6 지망에서 모두 불합격을 받았다.


나는 아직도 그 '저희 학교에 지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유정님께서는 "불합격" 하셨습니다.' 이 문구를 잊지 못한다. 특히 빨간 글씨로 뜨던 "불합격" 그 세 글자는 아직도 마음 속에 주홍글씨처럼 못 박혀 있다.


그 때 처음 생각했었다. 아, 수능 준비 할 걸.

나는 수능을 전혀 대비하지 않았었다. 대학을 가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도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부터였다.


우리 어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그 때부터.


너, 오빠처럼 너마저도 집에서 대중교통 타고 통학 할 수 있는 거리에 있는 학교 못 갈 것 같으면 대학 안 보낸다. 만약에 그런 대학교 갈 것 같으면 네가 알아서 등록금 준비해서 다녀.


이 말에 충격을 받아서 이를 악물고 공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나의 청개구리 근성, 악바리 본능을 일깨우는 포인트를 엄마가 제대로 짚으신 거다. 솔직하게 나는 오빠한테 자격지심 비슷한, 피해의식 비슷한, 그런 것이 있다.


확실히, 나는 성차별을 당해왔다.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져서 주의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차릴 수 없는 사회의식에 의한 성차별.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여자 아이'가, '아가씨'가 조신하지 못하게 그렇게 입을 하마같이 벌리고 먹니? 그럼 시집 못 가. 사람들이 흉본다."

"아가씨는 더 깔끔해야 해. 상대적으로 아가씨가 지저분하면 그렇게 흉이 될 수가 없다. 남자들은 상대적으로 그럴 수 있지."

"남자들은 보통 장가 갈 때 집을 해 가야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청약저축통장은 오빠한테만 10만원씩 계속 넣어주고 있다. 너도 있지 않니? 너 통장에도 2만원씩이라도 넣어."

남자니까 속옷만(사각팬티만) 집에서 입고 돌아다녀도 크게 꾸중을 듣지 않는 것. 그냥 그러려니 하는 것. 나는 2차 성징이 일어나면서부터 와이어로 갈비뼈를 짓눌려서 걸핏 하면 체했는데! 더워 죽겠어도 참아야만 했는데 오빠는 내 눈이 썩을 것 같은데 기분 더럽고 불쾌한데도 집이니까 편하게 속옷 차림으로 제 멋대로 돌아다녀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는 것.


엄마 말씀으로는 내가 단순히 여자라는 이유로 아빠는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어릴 적 오빠가 장난이 너무 심해서 맞서다가 싸움이 나서 오빠한테 내가 얻어 맞아서 울거나 이르면, 아빠는 내게 꼭 그런 말씀을 하셨다. "보면 니가 오빠한테 까불고 대들고 맞을 짓을 해서 맞는 거다. 오빠 있는 쪽을 안가면 되는데 굳이 니가 가서 얻어 맞는 거다."


그 말이 아직도 유리조각처럼 가슴에 못박혀 있는지 아빠는 아실까. 나는 아빠의 그 눈빛도 잊을 수가 없다. 너무도 선명하다. 다 니 탓이라는 그 눈빛. 내 아들 잘못이 아니라 니가 문제라는 그 눈빛.

오빠가 엇나갈 때에도 오빠 편을 들었다. 아빠는 언제나 오빠 편이었다. 오빠를 혼내거나, 오빠를 본인이 흉을 보시다가도 엄마나 내가 오빠 흉을 보거나 오빠를 아빠가 좀 잡아줘야 한다고 말하면, 불 같이 화를 내시면서 싫어하셨다.


지금의 내가 제일 어이없고 씁쓸한 점은, 내가 '아빠의 밥'을 차려주기 시작하면서, 음식과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되어서 맛있는 것들을 해주고 아빠를 챙겨주기 시작했던 그 무렵부터 아빠의 태도가 달라졌다. 오빠가 크면서 아빠한테 데면데면하게 굴고 아빠도 오빠를 어렵게 여기는 것부터가 황당했는데 이 시점에서는 아빠가 좋아하시니까 그 점에선 좋으면서도 오빠한테 그렇게 다 해주고 싶어하고 오빠만 예뻐하고 오빠만 좋아하고 오빠 편만 들어주고 오빠 잘못일 때도 내 잘못이라고 하면서 오빠 편을 들더니 오빠가 기대와는 다르게 거리를 두니까 이래서 딸이 있어야 된다고 한다고? 어이가 없었다.




나는 정말로 싫다. "이래서 아들 딸이 다 있어야 돼.", "딸은 '딸다운' 면이 있고, 아들은 또 '아들 만의' 매력이 있어. " 라는 말이.


그 아들 딸이 처음부터 그렇게 지금 사회가 원하는 '아들답고', '딸다운' 아이였을까?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여자여서 여자아이로서의 차별을 경험했지만 남자 아이는 또 남자아이로서 받는 차별이 있다. '~답다.'라는 말의 숨겨진 폭력성을 생각보다 사람들은 의식하지 못한다.


"남자 답다." "사내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섬세하고 꼼꼼하면서 요리를 잘하고 육아에 능숙한 육아휴직을 하고 아이를 돌보고 있는 남성의 모습? 덩치가 크고 근육이 단단하고 호탕하고 힘이 있어보이고, 아픈 것도 의연하게 아무렇지 않은 듯, 슬픈 것도 웃어넘길 줄 아는 모습?


사회화가 제대로 된 경우, 대부분 후자의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이 얼마나 폭력적인 단어인가? 단지 남자라는 이유로 울거나, 아픈 걸 티내면 '바람직'하지 않다고 평가 받는다니! 심할 경우 성적인 정체성에도 의심을 사기도 하는데, 말도 안되는 정말 비인간적인 논리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기집애가", "아줌마 다 됐나봐.", "아가씨가", "여자는 이래야 돼.", "며느리가"


같은 말도 얼마나 폭력적인가?


개인적으로 "아줌마 다 됐나봐."라는 말을 정말 싫어한다. "아줌마 같다."는 말도 굉장히 싫어한다. "아가씨, 아저씨 같다."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아줌마 다운 행동이 따로 있는가? 아저씨다운 행동은? 아가씨 다운 행동은? 그런 행동이 뭐가 있지? 그건 도대체 누가 정한 거지?



나이를 얼마를 먹던지 간에 성별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아줌마가 되었다고 들어도 아무렇지 않은 성적인 발언은 없다. 아저씨가 되었어도 수치심을 느끼는 성적인 표현이 있듯이. 그것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을 사회는 묵시한다. 암묵적으로 옳지 않다고 기만하려고 한다. 이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가 자라오면서 정확한 이유를 꼽을 수는 없지만, '나다움'을 주장할 때 자꾸만 작아지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게 되고, 내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숨기게 됐던 문화를 바꾸려는 시도를 계속해서 해야 한다. '~답다.', '~같다.'라는 말은, '나'라는 단어에만 붙을 수 있도록, 타인의 개성과 존재 자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나와 다르다고 해서 혐오하거나 차별하는 말이 없어지도록, 시각을 달리 하려는 시도는 꾸준히 해야만 한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해결책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계속해서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 모두가 옳다고 여기는 것에 과연 그럴까?라고 의문을 갖는 사람. 그리고 그런 사람이 세상에 많아지도록 장을 만드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 '쉽게'는 바뀌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쉬운 정도의 관심과 노력을 점점 더 많은 사람이 하면 바뀐다. 우리가 제각각 다른 것을 인정하고, 몰개성화시키려는 것을 주의하면,

남자라서 하지 못하는 것과 여자라서 하지 못하는 것이 그래도 조금씩은 사라지지 않을까?



나중에 엄마한테 '엄마의 그 말이 정말 가슴에 못이 박혀서 고2~고3 수험생활을 정말 잠자고 밥먹는 시간도 아껴가면서, 또 그 시간 마저도 공부에 매진했다. 오빠도 대학에 보내는데 나만 안보낸다니! 너무 화가 나고 서운하고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대학에 가고 말겠다고 다짐했다'라고 말씀드리니, 엄마는 사실 대학에는 어디든지 꼭 보낼 생각이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래도 여전히 서운함은 남아있지만, 조금이나마 서러운 마음이 덜어졌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6지망으로 썼던 지잡대 4년제 대학교 국어국문과에 예비합격으로 가게 되었다. 학교를 말할 때부터도 어디?라고 꼭 다시 되묻는 어른들과 어느 지역에 있는지, 어디 과를 갔는지 묻는 어른이 있었다. 그리고 나면 꼭 그런 말씀을 하셨다.


"국문과? 국문과 취직, 취업 안돼. 돈 못 벌어. 왜 국문과를 갔어? 요새 서울대 나와도 국문과는 취업이 안되서 힘들다던데."


안다. 틀린 말씀은 아니다. 그래서 그럴 때마다 나도 생각한다. 나도 이렇게 물어도 되나?


당신 어디 대학 무슨 과 나와서 어디 직장에 다니고 있고 지금 연봉은 얼마나 벌고 있고, 차는 자차인가요 빚더미에 앉아 있나요? 집은 있나요? 자가예요 전세? 월세? 어디 사세요? 결혼은 하셨나요? 부모님은 살아계셔요? 형제자매는 어떻게 되시나요? 사이는 좋으세요? 자녀는 있으신가요? 몇명이나요? 얼마나 성공하셨으면 아직 꿈을 꾸고 있는 청년의 꿈을 그렇게 짓밟죠?


조언과 충고랍시고 하는 말이 때로는 자신의 무례함을 뒤덮으려는 말임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런 사회로 나아가는 데 콩가루 만큼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무도 차별 받지 않고, 아무도 혐오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지잡대 국문과를 나와도 잘만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을 꼭 보여주고 싶다. 어느 대학 어느 과를 나와서 뭘로 얼마나 벌어 먹고 사는 지 말할 자신도 없으면서 본인보다 어리다는 이유로 남의 인생에 숟가락젓가락 올려 놓고 숟가락으로 먹어라 젓가락으로 먹어라 훈수 두려는 그런 어른들한테 보란 듯이 보여줄 수 있게 말이다.


어제 아침 식사와 점심식사.
어제 저녁과 오늘 아침과 점심 식사로 먹었던 감자탕.


어제는 과제를 하느라 글쓰기를 하루 쉬었다. 어제는 홍시오버나이트 오트밀과 아보카도, 오트밀브레드, 달걀을 먹었고, 저녁에 오트밀브레드와 엄마표 감자탕을 먹었다. 감자탕은 엄마표가 최고다! 이번주 컨디션이 진짜 최상이다. 잠도 잘자고 자고 일어나도 몸이 가볍고 상쾌하다! 운동 효율도 최고다! 행복한 한 주를 보내고 있다. 특히 성취감이 제대로이다. 오늘은 어제 하던 과제를 마저 끝낼 예정이다! 오늘은 오전에도 운동을 했다. 맛있는 거 먹고 싶은 만큼 먹으면서, 운동도 열심히 하며 그 어느 때보다 즐겁게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 다만 과제는 정말 싫다. 과제 빼고 다 재밌다. 얼른 종강을 했으면 좋겠다. 20일까지 과제 제출해야 하는 것이 있는데 내일이랑 모레 다 끝내버리고 16일에 종강을 할 거다. 벌써 수능이고 벌써 12월 3일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내년이면 이제 4학년!


걱정되고 불안하지만, 그래도 난 나를 믿는다. 나라도 나를 믿어줘야지 다들 내가 할 수 있겠냐며 의심하는데, 내가 나를 안믿어주면 끊임없이 흔들리다 질 것 같아서 나는 나를 믿는다.


나는 분명, 잘 될 것이다. 모든 것은 잘 풀릴 수 밖에 없다. 내 운명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고, 내가 그렇게 만들어 갈 테니까. 내가 옳다고 여기는 방향대로 끝까지 밀고 나가다 보면 어느새 그게 나만의 장점이자 강점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니까 오늘도 주의하면서 살자.


아무도 혐오하지 않도록, 아무도 차별하지 않고 차별받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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