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 문과생의 3D 디자인 입문기.
어느덧 4월이 되었다. 수업 듣고 과제하면서 모니터 앞을 벗어나지 못하고 집콕, 방콕도 아닌 모니터 앞콕을 한 지 한 달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나의 고민과 문제와 신경질적인 면모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국어국문학과와 차세대 미디어제작과를 복수 전공하고 있는 대학교 4학년이다. 주전공은 전필 1과목만 채우면 되고, 나머지는 이번 학기와 다음 학기 모두 복전으로 꽉 채워야 하는데,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나는 정말 찐문과생이었다. 아니, 지금도 그렇다. 이과적인 머리가 거의 0에 수렴한다. 수를 만나면 약해졌고, 공간적인 인지도 좋지 않았다. 정말 창피한 과거지만 고등학교 과학 시험에서 한 자리수를 받은 적도 있다. 반면 국어와 사회과학 분야는 1-3개 이내를 틀렸다. 거의 만점에 가까웠다. 그렇다. 나는 진짜 국어와 사회만 잘했다. 영어수학과학이 항상 나의 골칫거리였다.
그렇게 국어국문학과에 입학 했는데 여기도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꾸준히 글을 써왔고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국어국문학과는 '국문학'에 대해서 배우는 정말 찐으로 학문적인 과였다. 결론적으로 보면 국문과에 왔기 때문에 내 자신을 더 자주 성찰하고 내 정체성에 대해 고찰하게 된 것은 확실히 있다. 그리고 타인이 내게 하는 평가나 타인의 행동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된 긍정적인 면도 있다. 그렇지만 휴학을 하고 편입 시험을 준비했을 만큼 나는 진심으로 지금의 전공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복학 후에 차세대 미디어제작과를 복수전공으로 선택했다. 이 과에서 배우는 것들은 3D 디자인/프로그래밍, 문화콘텐츠, 1인 미디어 기획/제작, XR/VR/AR 기획/이론 등을 배우는 학과이다. 그 중에서 나는 1인 미디어 트랙을 보고 왔다. 그리고 작년 한 해 동안 1인 미디어 위주의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이번 학기에는 21학점을 꽉 채워서 들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시간표를 짤 때 3D 콘텐츠프로그래밍과 디자인을 넣었다. 그리고 전필 한 과목을 넣었다.
그런데 그게 내 발목을 잡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정말 외계어 그 자체였다. 특히 3D 디자인은 MAYA에서 갤럭시 S21 모델링하는 것을 배우는데 매주 진도 나간 데까지 과제를 제출해야 했다. 그래서 녹화본을 보고 하루 종일(8~10시간) 모니터 앞을 벗어나지 못하고 울면서 했다. 책 읽고 논문 읽고 레포트나 기획만 하던 찐문과생적 바이브를 지닌 나에게는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었는데 해내야만 했다. 그것도 매주.교수님이 웃으시는 것도 화가 났다. 모델링 어떤 것을 할 지 물으실 때 핸드폰, 그 기종을 말한 여자애한테도 화가 났고, 이 과목을 신청한 나한테도 화가 났고, 벚꽃을 보러 다니는 모든 사람들에게 분노가 일었다.
나는 지금 모니터 앞에서 울면서 과제를 하고 있는데!
라는 마음이 증폭되었다.
문제는 이 과목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과목에서 매주 과제가 샘물처럼 끝내면 다시 솟아 오른다는 거였다. 마르지 않는 샘물이란 이런 것인가 싶게.
처음부터 이 교수님만은 피하자는 마음으로 3년을 피해왔는데 졸업을 하려고 이번학기에 듣게 된 전필이 또 빌런이다.
질문을 하면 교수님은 그 질문에 대해서 맞다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는 법이 없다. 횡설수설 다른 얘기만 하신다. 팀플 과제가 있어서 보고서를 제출해야하는데 본인이 어떤 양식을 원하시는지 설명 없이 보고서의 기초도 되어있지 않다고 하신다. 다음주가 발표인데 가슴이 답답하다. 벌써부터 여름이 왔으면 좋겠다. 봄 같은 건 없었으면 좋겠다는 게 요즘 나의 심정이다.
봄을 즐기러 나들이 다니는 사람들도 싫고, 학기 중인 지금도 싫고, 중간고사도 보지 않았다는 게 소름끼친다. 여름이 오면 종강을 할 테고 방학이 올텐데 지금 이 끔찍한 상황과 함께 온 봄이 나는 너무나도 싫다.
맞다. 사실 애꿎은 봄을 미워하고 있다.
요즘 모든 게 샘이 나고 심술 궂어 진다. 내가 좋아했던 계절에게 마저 심술을 부릴 정도면 말 다 한 거다.
지난 방학 때는 집에 있는 게 좋았는데 지금은 집 밖으로, 모니터 앞을 탈출하고 싶어서 들썩거린다. 모니터 앞에서 기본 4시간-12시간을 앉아있자니 좀이 쑤셔서 못 살겠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아, 나는 사무직이 맞지 않나? 활동적인 직업을 가져야 하나? 싶은 고민도 생겨났다.
개강을 기점으로 내 성향이 한 번 더 바껴가는 것을 느끼고 있다.
더 서글픈 것은, 마음껏 부러워 할 시간 마저 없이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과제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계절을 느낄 겨를도 없이, 봄옷을 살 겨를도 없이 흘러가는 이 시간이 너무나도 아쉽고 아깝고 안타깝다. 학점에 크게 연연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졸업만 잘 하고 싶은 사람이었고, 지금도 그런데 왜 나는 이렇게 못난 생각을 하면서 노트북 앞 지박령이 되어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아, 이래서 나왔나?
봄이 그렇게도 좋냐 멍청이들아 벚꽃이 그렇게도 예쁘디 바보들아.
이 가사가 갑자기 가슴에 확 와닿았다. 멜로디는 공감됐지만 가사는 그냥 재밌다고만 생각했었는데 봄을 시샘하고, 봄을 즐기는 사람들을 시샘하고 샘을 부리다보니 갑자기 이 가사의 마음을 너무 알겠더라.
누가 옆에서 맛있는 걸 먹으면 먹고 싶듯 나도 꽃을 맘껏 즐기고, 이 계절과 이 온도를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니까 화가 났다.
이 화가 언제 가라앉을 지 모르겠다. 도전은 언제나 어렵다.
포기만 하지 않으면 지나가는 바람이라는 것을,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것을 알기에 오늘도 일단 버텨보기로 한다. 내년 봄에는 지금의 일상이 일상이 아닌 추억일 테니까.
나도 사회인일 테니까.